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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fe allonge Oct 15. 2023

이직할 결심

공무원에서 국제기구 연구자로

처음 국제기구로 오기로 하였을 때, 안정된 공무원의 길을 왜 떠나게 되었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꽤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도 같은 질문을 받게 될 때마다 여전히 머뭇거리지만, 오늘은 차분히 기억을 더듬어 생각을 정리해 본다.


어떻게 이직할 결심을 하였나요?

국제기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국제사회에 대한 이슈를 다루며, 외국 사람들과 함께 업무를 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멋진 일이었다. 그 후 정부부처에서 국제기구와 교류하며 간접적으로 그들의 업무를 경험했다. 국제회의에도 종종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가까이서 국제기구 직원들을 바라보며 언젠가 나도 직접 그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유학과정을 마무리할 즈음 우연한 기회에 국제기구에 경험 삼아 지원했다. 감사하게도 인터뷰 기회를 얻었고, 인터뷰와 논문 발표를 하였다. 최종 연락을 받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어떤 고민을 하였나요?


솔직히 처음엔 이직할 마음이 없었다. 첫 직장이자, 젊음의 대부분을 보냈던 그곳은 나에게는 단순한 일하는 곳 이상의 큰 의미가 있었다. 또한 국제기구는 계약직으로 선발되었기에, 고용 불안정성과 기약 없는 외국 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또한 선택을 주저하게 하였다. 아내와 특히 많은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양가 부모님과 여러 지인분들께도 조언을 구하였다. 인생에 있어 나름 중요한 결정이었기에 보다 신중하려고 노력했다. 다음날 일어나면 마음이 뒤바뀐 적도 수차례 있을 만큼 선택은 쉽지 않았다.



이직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싶다. 첫째는 가족과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을 살고 싶어서다. 중앙부처 공무원의 삶은 여간 녹록하지가 않다. 업무를 제때 제대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야근과 주말 출근이 일상이 되곤 한다. 업무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 뒤에는 가족에 대한 소홀함과 미안함이 항상 남아있다. 유학생활 동안 가족과 시간을 함께 보내며,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부모로서 경험한다는 것이 아이와 나와 아내의 인생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뒤늦게 깨달았다. 둘째는 꿈꿔왔던 국제기구에서 직접 업무를 해보고 싶어서다. 보다 큰 무대에서 외국인들과 직접 부딪히며 그 속에서 성장하고 싶었다. 부족한 영어와 실력임에도 이곳에서 어떻게든 시간을 보낸다면 조금이나마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어쩌면 마지막이 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선택에 후회가 없으신가요?


누구보다 오랜 고민을 통해 선택하는 대신에, 결정한 선택에 대해서는 후회를 하지 않는 편이다. 또한 그 선택이 옳은 결정임을 스스로 보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편이다. 이직에 대해 아직 후회를 한 적은 없다.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간혹 힘들 때는 있다. 우선 불어를 못하면서 프랑스에 산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내향적인 성격으로 외향적인 외국인들과 사교모임에서 어울린다는 것도 어색한 일이다.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갑자기 찾아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주말에 종종 아이와 축구를 하며, 가끔은 교외로 여행을 떠나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만족한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영어로 소통하고 업무 하는 것이 예전보다는 수월해지고 자신감이 생겼다. 국제기구에 와서 그간 몰랐던 커다란 세계가 있음을 느낀다. 미국인과는 사뭇 다른 유럽인들. 아시아만큼이나 하나로 묶기 어려운 다채로운 유럽 국가들. 해외에 살면서 더 크게 느껴지는 한국에 대한 소속감. 여느 때보다 한국의 위상과 역할이 보다 커졌다는 인식. 국제기구에서 다루는 다양하고 포괄적인 이슈들과 수많은 회의들. 국제기구의 운영이 생각보다 효율적이지 않다는 약간의 실망감과 그래도 업무가 재미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어쨌거나 파리는 아름다운 도시라는 감상 등등...



마지막으로

국제기구에서 첫 일 년을 보낸 시점에서, 이직을 결심하던 때를 되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할지는 모르겠다. 만약 영화 <인터스텔라> 속 5차원의 시공간 테서렉트로 들어간다면, 선택의 기로에 선 과거의 나에게 지금의 나는 "STAY"를 외칠 것인가. 현실은 영화와 다르지만, 쿠퍼가 먼 길을 떠나기로 결정했기에 결국 그의 딸이 인류를 구원하지 않았나 싶다. 어떤 작은 결정이 때로는 완전히 새로운 문을 열기도 한다. 물론 인류의 구원과는 아주 거리가 먼, 지극히 평범한 개인적인 이유에 따라 나는 이직을 결정했다. 우주의 관점에서 볼 때 아주 작은 존재로서 찰나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제법 많은 고민을 통해 선택하고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간다.




프랑스 출국을 앞둔 하루 전 날, 우연히 발견한 포춘쿠키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Be strong. 

You never know who you're inspiring.


선택의 순간에서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이 글이 작지만 약간의 힘을 보태기를 바란다.



마르스 광장에서 에펠탑을 바라보며
프랑스 출국 전 날, 포춘쿠키 속에서 발견한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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