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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 Aug 12. 2023

아무도 울지 않았어요.

새벽녘에 비가 왔는데 다행히 날씨가 점점 화창해지는 거예요.

'결혼하는 날 비 오면 잘 산데.'

제가 결혼하는 날도 비가 왔었어요. 

그래서 저도 결혼하는 날 비 오면 잘 산다고 한 위로의 말들을 가장 많이 들었고, 가끔씩 진짜 그런가? 생각도 해요.


사실인지 확인 안 되는 이 위로의 말은, 비 오는 날 한 걱정하는 고객들에게 전하는 고정 멘트예요.

하지만, 번잡하죠. 헤어는 금방 흐트러지고, 여러모로 불편한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결혼하는 날은 되도록이면 화창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신부와 어머니는 꼭 그러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비 예보는 일주일 전부터 있었답니다.

예식 전날까지도 세차게 비가 내려서 내일 예식 고객들 어쩌나 하는 걱정이 한가득이었는데 정말 다행이지 뭐예요.





감히 말하건대 우리 숍에서 결혼한 지금까지 많은 신부들 중에 단연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이쁜 신부였어요. 왜 연예인을 안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 코, 입, 몸매 거기에 마음씨는 또 얼마나 이뻤는지 몰라요.


방문할 때마다 직원들 음료까지 꼬박 갖고 오세요. 차 대접을 하는데도 말이죠.

늘 감사하다고 인사해 주세요. 속물 같지만, 비용에 대해 왈가왈부 안 따져요. 


이런 고객은요.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공감하실 텐데 절대로 함부로 서비스해드리지 않아요. 절대로 과잉 비용 생기게 안 만들어요. 알아서 더 챙겨주려고 노력해요.


아직도, 

'우리나라는 진상을 떨어야 뭐라도 해줘.'라는 생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착각하시는 거예요. 

음식점에서 추가 반찬을 요청할 때도 예의 바르게 말씀드려 보세요. 조금 더 담아 나오실걸요?


뭐,

이거는 고객의 입장은 아닐 수 있으니 흘려들으세요.


오늘 이야기 서두가 너무 길었네요.

신부를 소개 안 할 수 없었답니다. 

이 신부의 사랑스러움이 상처받지 않게 모두의 응원을 받고 싶어서요.




"예식 날짜를 좀 당겨야 할 것 같아요."

"네 신부님. 언제로 변경하세요?"

"늦어도 이번달 안에 가능할까요?

"어머. 신부님 혹시 임신하셨을까요?"

"아니요. 다른 일 때문에요."


예정된 결혼 날을 앞당기는 경우는 비일비재하게 많답니다. 

대부분의 이유는 "임신"의 경우가 많아요.

신부의 결혼 날짜 변경의 이유는 본식 드레스를 고르러 온 날 듣게 되었어요.


친정어머니가 췌장암 판정을 받은 건 올해 초.

돌아가시기 전 외동딸 결혼식 보여주려고 서둘러 결혼 준비를 시작했어요.

올 연말까지는 괜찮다고 하셔서 날 좋은 가을에 결혼을 하려고 했는데...

지난주 병원에서 급격하게 안 좋아지셔서 마음에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네요.


항상 밝은 미소로 상냥한 목소리만 들려주던 신부의 떨리는 목소리에 가슴이 먹먹해졌답니다.






우린 오늘 절대로 티 내지 말아야 해!



그날의 우리의 특명이었어요.

분위기도 잡지 말고, 평소와 똑같이.


처음 뵌 어머니는 첫눈에도 많이 힘들어 보이셨어요.

메이크업 의자에 앉아 계신 것조차 너무너무 힘드셨을 거예요.

참으시는 게, 정말 힘들게 참으시는 게 그냥 보이는데


"어머니 좀 쉬었다 할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찮아."


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끙' 소리도 안 내려고 노력합니다.

저도 자연스럽게 내는 소린데... 

숨도 크게 내뱉지 않으세요.

한숨 소리로 들릴까 봐 그러시는 것 같습니다.


그냥 얼핏 보아도 너무 힘들어 보여요... 어머니...


신부는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신랑한테 이것저것 챙깁니다.

"부케 실었어?"

"액자는  확인했어?"

그렇게 온갖 일에 바쁘게 신경 쓰는데도


절대로


어머니 쪽으로


눈길을 안 보냅니다.


분명히


울 테니까요.





우리 모두 더 힘껏 떠들었어요.


"신부님 오늘 너무 이쁘세요~"

"저기서도 사진 한번 더 찍어요~"

"신랑님. 진짜 복 받으시는 거예요~"

음악도 매일 틀어 놓는 클래식 말고 경쾌한 재즈 음악으로 바꿔 놓았어요.


"엄마. 이쁘다."


웨딩홀로 출발하기 전 우리 숍에서 들은 처음이자 유일하게 신부가 어머니한테 한 말이에요.


웨딩홀을 다녀온 드레스 헬퍼에게 예식 풍경을 전해 들었어요.

'우시는 하객도 있었고, 

주변에서 안타깝다는 얘기 간간이 들리고

특히 신랑님은 계속 눈물 흘리셨어요.


그런데 신부님 하고 어머니는 안 우시더라고요.'


어쩌면, 

두 분도 우리처럼 약속했겠죠?


"엄마, 내일 우리 절대 울지 않는 거야."

"엄마도 나도 제일 이쁜 모습으로 사진 찍는 거야."


비 오다가 개인 하늘은 얼마나 맑고 쾌청한지요.

모든 것에 축복이 내린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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