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에 비가 왔는데 다행히 날씨가 점점 화창해지는 거예요.
'결혼하는 날 비 오면 잘 산데.'
제가 결혼하는 날도 비가 왔었어요.
그래서 저도 결혼하는 날 비 오면 잘 산다고 한 위로의 말들을 가장 많이 들었고, 가끔씩 진짜 그런가? 생각도 해요.
사실인지 확인 안 되는 이 위로의 말은, 비 오는 날 한 걱정하는 고객들에게 전하는 고정 멘트예요.
하지만, 번잡하죠. 헤어는 금방 흐트러지고, 여러모로 불편한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결혼하는 날은 되도록이면 화창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신부와 어머니는 꼭 그러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비 예보는 일주일 전부터 있었답니다.
예식 전날까지도 세차게 비가 내려서 내일 예식 고객들 어쩌나 하는 걱정이 한가득이었는데 정말 다행이지 뭐예요.
감히 말하건대 우리 숍에서 결혼한 지금까지 많은 신부들 중에 단연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이쁜 신부였어요. 왜 연예인을 안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 코, 입, 몸매 거기에 마음씨는 또 얼마나 이뻤는지 몰라요.
방문할 때마다 직원들 음료까지 꼬박 갖고 오세요. 차 대접을 하는데도 말이죠.
늘 감사하다고 인사해 주세요. 속물 같지만, 비용에 대해 왈가왈부 안 따져요.
이런 고객은요.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공감하실 텐데 절대로 함부로 서비스해드리지 않아요. 절대로 과잉 비용 생기게 안 만들어요. 알아서 더 챙겨주려고 노력해요.
아직도,
'우리나라는 진상을 떨어야 뭐라도 해줘.'라는 생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착각하시는 거예요.
음식점에서 추가 반찬을 요청할 때도 예의 바르게 말씀드려 보세요. 조금 더 담아 나오실걸요?
뭐,
이거는 고객의 입장은 아닐 수 있으니 흘려들으세요.
오늘 이야기 서두가 너무 길었네요.
신부를 소개 안 할 수 없었답니다.
이 신부의 사랑스러움이 상처받지 않게 모두의 응원을 받고 싶어서요.
"예식 날짜를 좀 당겨야 할 것 같아요."
"네 신부님. 언제로 변경하세요?"
"늦어도 이번달 안에 가능할까요?
"어머. 신부님 혹시 임신하셨을까요?"
"아니요. 다른 일 때문에요."
예정된 결혼 날을 앞당기는 경우는 비일비재하게 많답니다.
대부분의 이유는 "임신"의 경우가 많아요.
신부의 결혼 날짜 변경의 이유는 본식 드레스를 고르러 온 날 듣게 되었어요.
친정어머니가 췌장암 판정을 받은 건 올해 초.
돌아가시기 전 외동딸 결혼식 보여주려고 서둘러 결혼 준비를 시작했어요.
올 연말까지는 괜찮다고 하셔서 날 좋은 가을에 결혼을 하려고 했는데...
지난주 병원에서 급격하게 안 좋아지셔서 마음에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네요.
항상 밝은 미소로 상냥한 목소리만 들려주던 신부의 떨리는 목소리에 가슴이 먹먹해졌답니다.
우린 오늘 절대로 티 내지 말아야 해!
그날의 우리의 특명이었어요.
분위기도 잡지 말고, 평소와 똑같이.
처음 뵌 어머니는 첫눈에도 많이 힘들어 보이셨어요.
메이크업 의자에 앉아 계신 것조차 너무너무 힘드셨을 거예요.
참으시는 게, 정말 힘들게 참으시는 게 그냥 보이는데
"어머니 좀 쉬었다 할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찮아."
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끙' 소리도 안 내려고 노력합니다.
저도 자연스럽게 내는 소린데...
숨도 크게 내뱉지 않으세요.
한숨 소리로 들릴까 봐 그러시는 것 같습니다.
그냥 얼핏 보아도 너무 힘들어 보여요... 어머니...
신부는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신랑한테 이것저것 챙깁니다.
"부케 실었어?"
"액자는 확인했어?"
그렇게 온갖 일에 바쁘게 신경 쓰는데도
절대로
어머니 쪽으로
눈길을 안 보냅니다.
분명히
울 테니까요.
우리 모두 더 힘껏 떠들었어요.
"신부님 오늘 너무 이쁘세요~"
"저기서도 사진 한번 더 찍어요~"
"신랑님. 진짜 복 받으시는 거예요~"
음악도 매일 틀어 놓는 클래식 말고 경쾌한 재즈 음악으로 바꿔 놓았어요.
"엄마. 이쁘다."
웨딩홀로 출발하기 전 우리 숍에서 들은 처음이자 유일하게 신부가 어머니한테 한 말이에요.
웨딩홀을 다녀온 드레스 헬퍼에게 예식 풍경을 전해 들었어요.
'우시는 하객도 있었고,
주변에서 안타깝다는 얘기 간간이 들리고
특히 신랑님은 계속 눈물 흘리셨어요.
그런데 신부님 하고 어머니는 안 우시더라고요.'
어쩌면,
두 분도 우리처럼 약속했겠죠?
"엄마, 내일 우리 절대 울지 않는 거야."
"엄마도 나도 제일 이쁜 모습으로 사진 찍는 거야."
비 오다가 개인 하늘은 얼마나 맑고 쾌청한지요.
모든 것에 축복이 내린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