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과거 위대한 문호들을 보면, 단순한 글재주 이상의 깊이 있는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똑같이 얘기 나눠볼 수 있는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면 말이죠.
톨스토이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톨스토이란 이름은 생소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또 톨스토이가 남긴 수많은 명언들은 굳이 전체의 책을 읽지 않더라도 가슴에 와 닿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래의 문장은 결혼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는 현시대와 어떤 매칭을 해볼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관련일 이니까요.
"결혼을 신성하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랑이며, 진정한 결혼이란 사랑으로 신성해진 결혼뿐이다."
"결혼은 자식을 갖기 위한 반대의 성(性)을 가진 두 사람 간의 특별한 의무 관계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하는 것은 거짓말과 상대방을 속이는 것과 부정(不貞)입니다."
[특별한 의무관계] 뭔가 비정한 말이긴 하지만, 솔직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 의무관계에 있어서 저의 생각은 본능에 충실한 것이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모든 생명체는 근원적으로 새끼를 낳아서 잘 키우고 싶습니다. 그런데 주변 환경이 좋지 않다면 번식하지 않습니다. 낳아봐야 다른 천적들에게 먹히거나 먹이를 못 구해 죽을 것이 뻔한 것을 본능적으로 알지요.
요즘 우리나라 청년들이 그런 본능에 충실한 게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새끼를 낳아봐야 그 새끼를 잘 키울 수 없을 것 같다.'라는 본능 말이죠.
명언과 격언은 의미를 얼마나 함축적으로 멋진 비유를 통해 문장을 만들어 냈느냐에 관계있는 것 같습니다.
불교에서 '화두'라고 표현하는 -관심을 두어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이야기할 만한 것(국어사전)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합니다.
1.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2.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바흠'의 이야기를 아시나요?
톨스토이의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소작인 바흠은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짓고 싶었습니다.
평생을 남의 땅에 농사를 지으며 소작료를 내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죠.
처음에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하며 조금씩 땅을 늘려갔습니다.
그러나, 마냥 부족하다고 생각을 했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바시키르인들이 사는 마을에 가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지체 없이 그는 전 재산을 정리하고 그 곳으로 찾아갑니다.
그 마을의 촌장의 제안은 바흠에게는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일출에서 일몰 때까지 그가 밟는 땅이 그의 몫이 된다.
다만 해지기 전까지 돌아오지 못하면 땅을 단 한평도 받지 못하고 돈만 잃게 된다는 것.'
바흠은 동이 트자마자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가면 갈수록 비옥하고 풍요로운 땅이 널려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만, 여기까지만... 앞만 보고 계속 달렸습니다.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길게 누워지고 이제는 정말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 하니까요.
초인적인 힘을 다하여 달렸습니다.
물 한 모금 마실 시간 없이 말이죠.
겨우 해가 떨어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돌아왔으나, 그는 피를 토하고 죽고 맙니다.
톨스토이는 전 세계에 많은 사람들이 존경과 애정을 갖고 있지만 러시아의 절대권력자인 차르도 불편해했다고 합니다. 20대에 톨스토이를 읽지 않으면 안 되는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물론 20대라는 상징적인 나이를 부여했지만, 저에게는 힘든 삶의 한편을 이겨내고 넘어갈 때 '니체'만큼이나 좋은 영감을 주는 인물입니다.
톨스토이는 자기 계발을 위한 구체적이며, 실행적인 노력을 했던 사람입니다.
무조건 5시 기상, 달콤한 음식을 먹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좌우되지 말자,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자, 한 번에 한 가지씩만 한다. 등등 구체적인 자기 계발 노력을 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와 좌절에는 도가 튼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세웠던 거창한 계획 대부분은 완전히 이루어내지 못했다고 스스로 생각했고,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났던 시기가 태반이었다고 자책합니다.
'이틀째 계획에 따르지 않고 늑장을 부렸다. 왜 그랬을까? .... 중략... 하지만 좌절은 금물이다.
더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강제로 나 자신을 밀어붙여야 한다.'
- 톨스토이의 일기 中
그러나 이러한 자기 성찰이 있었기에 오늘의 톨스토이가 있지 않았나 합니다.
저 역시 매번 계획을 실패했거나 작심삼일이었다고 낙담을 많이 했었는데, 이런 톨스토이의 자아 성찰을 공감하면서 그 실패가 온연히 실패만을 말하는 게 아니구나를 배웠었습니다.
바흠의 죽음이든 어떻게 살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에 끝없는 질문을 던지고 해석을 했던
톨스토이도 그리고 우리도
결국은 소유하고 갖게 되는 땅의 크기는 비슷하거나 같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다른 것은 그들에게 기억되는 '나' 는 각자 다른 존재로 남아 있을 것 입니다.
'존재의 기억' 은 사람 서로 간의 '관계'에서 출발하고, 그 관계 맺음은 많은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 전 이에 "시절 인연"이라는 이쁘고 좋은 단어를 생각해 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 하나의 비즈니스 철학을 선택하라면
'선택과 집중' 입니다.
이해하기도 쉽고, 가장 본인 편의주의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불필요한 잡동사니와 같은 불필요한 관계에 의해 정작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을 놓치거나 만족감을 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사람, 내가 선택한 장소, 내가 선택한 일, 내가 선택한 방식. 이 모든 것은 나의 만족감에서 출발하지만, 가장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논리이며, 방법입니다.
가볍게 이야기하고 듣는 '선택과 집중'은 사실은 "전략"의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우선 순위를 결정하고, 대안을 선택하고, 선택한 대안에 집중을 하는 것 입니다.
사실,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은 버려야 합니다. 명확히 해석하자면, 이 전략은 버리는 게 우선이 되는 것 입니다.
그런 다음 집중을 한다는 의미이죠.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 위대함과 안락함 둘 다를 얻을 수 없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 삶을 윤택하게(행복하게) 살 고 싶은 욕구.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이 대답은 22살에는 대답을 했었는데 지금은 답을 할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