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생각 part1
일생을 살면서 무의식적으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적어도 한 번쯤은 상상하거나 빌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기대한다. 그 사람과의 만남을.
우리는 그 사람을 '귀인'이라 부르고 있다.
귀인 貴人
[명사] 사회적 지위가 높고 귀한 사람. - 국어사전 -
뜻을 알고 있던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다시금 잘 읽어보면 끔찍하다.
사전적 의미로만 본다면, 귀인은 사실 아무나 되기 쉽지 않다.
조건이 굉장히 까다롭지 않은가?
사회적 지위가 높으니 귀한 사람이란 뜻으로도 해석이 될 것 같다.
또는 귀한 사람은 사회적 지위가 높아야 귀한 대접을 해준다고 받아들여야 하는 두려움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권력에 기대려고 하고,
부자의 곁에 있으려 한다.
사실, 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권력과 돈을 죄악시 여기고, 염치불고라고 느낀다면 그 사람은 돈과 권력의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
유대인은 '돈'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고, 그래서 돈을 잘 버는 법을 일찍이 터득한다.
그러나 우리 동양 사상에서는 돈을 탐욕으로 놓고 금전을 탐하면 죄악시하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누가?
기득권이. 가진 자들이. 뺏기기 싫은 사람들이.
그러나 어찌 귀한 사람이 꼭 사회적 지위로 설명해 놓은 사전적 의미로만 쓸 수가 있겠는가.
내 목숨을 구해준 사람도 귀인이고,
급한 길 가는데 길 양보해 준 앞 차량의 운전자도 내게는 귀인일 수 있다.
그래서
이 모든 정의를 물리치고,
"과연 나는 누군가에게 귀인이 되어 본 적이 있는지."
이게 너무너무 궁금해졌다.
스프링 노트를 꺼내어 마구잡이로 써보기 시작했다.
너무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성인으로서 기억이 나는 모든 것을 적어 보았다.
당신도 한번 적어보시라.
머릿속으로 '해보자.' 했을 때는 꽤 많이 적을 수 있었는데
막상 구체적으로 적어보려 하니 부끄럽고, 너무 작은 일의 연속이고
결국 모든 낙서가 부끄러워졌다.
누군가에게 바라는 나이에서 멀어지고,
나를 바라보는 이들이 많아지고
내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할 나이와 위치에 와서 보니
귀인까지는 못 가더라도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어 있는지가 조급해진다.
우리가 바라는 귀인은 좋은 이야기 몇 마디 전하는 감성적인 인간상은 아닐 듯하다.
실질적으로 상대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야 그 사람에게 '내게 평생의 귀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아하,
역시 사전의 의미가 맞았네.
결국 사회적 지위가 높아 영향력이 있지 않은 한 만들어 내기 어려운 장면일 것 같다.
왜? 귀인이 되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럴 생각으로 질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싶다.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가 일생동안 내심 기다리고 있는 "행운"에 대해 과연 나는 누군가에 그런 행운의 사람이 된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더니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음을 알았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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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내가 만난 귀인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