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계획
지난주 저도 오래간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집사람이랑 동네 벚꽃 구경 다녀왔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몇 가지 취미 중에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있습니다.
사진에 '사람'이 없으면 왠지 모를 공허함과 완성되지 않은 듯한 느낌 때문에 풍경 사진은 거의 찍는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 일부러 DSLR 갖고 나가봤습니다.
저는 단렌즈 마니아입니다. 사진이 왜곡되는 느낌을 싫어해서 50mm, 85mm 렌즈만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에 감정을 싣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굳건한 생각이 있었는데 찍어놓고 보니, 벚나무도 거기에 달린 꽃잎도 뒤에 배경이 되어준 숲도 하늘도 각자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풍경도 찍어봐야겠다. 는 생각을 이번에야 처음 해봅니다.
결국 무언가 계속 바뀌네요. 살아오면서 늘 그랬듯이 말이죠.
보통의 꼰대들은 고집이라는 걸 알면서도 포기하기 힘들어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결정을 바꾸면 지는 것 같고, 잘못되는 거라는 고집 안에 고집이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알고 있는 나름의 삶에 대한 정답은 경험 속에 얻은 나의 방어기제 때문에 만들어 놓은 정답이지 보편타당한 올바름은 아닐 수 있는데도 확정을 지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퇴의 이야기를 제목으로 지어놓고 그저 그런 사진에 개똥 같은 넋두리를 하고 있느냐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제가 이번에 은퇴를 결정하면서 느꼈던 고뇌, 고통, 그리고 두려움을 넘어서는데 과거 어떤 경험을 말하기 위하여 사족을 서두에 많이 넣어버렸네요.
처음 사진을 접할 때 유명한 사진작가가 저의 사진을 보며,
"보는 시각이 좋습니다."
그냥 의례 하는 칭찬이겠지만, 내심 기쁜 마음을 숨기고 다시 되물었었답니다.
"사진을 배운 적도 없고, 제가 찍은 게 진짜 프로들이 봤을 때 흠잡을게 많을 것 같아 계속 불안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학창 시절,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수학과목 때문에 정말 고생했었는데 그때 기초가 탄탄하지 못했던 앞선 어느 부분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로 무슨 일이든 규칙, 법칙, 공식 등등 이런 규범적인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강박이 생겼었습니다.
그래서 취미일지언정 그건 답이 아닐 수 있다는 강한 의심 때문에 편하게 즐기지 못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러나 그다음의 말이 저에게 큰 용기를 주었답니다.
"사진은 창작입니다.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엔 분명히 남들과 다른 시선이 있어요."
그때 그 사진은 덕수궁 처마 끝을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몇 년 지나 사진을 좀 더 알게 된 후 다시 그 사진을 봤을 때 허접하기 이를 데가 없어서 삭제해 버렸습니다.
그 포토그래퍼가 제게 해준
'당신은 좋은 눈을 갖고 있다.'
는 의견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사진을 접하고 사랑하게 만들어 준 '용기'라는 최고의 선물이 되었답니다.
분명한 것은,
처마 끝만 찍은 그 사진이 허접한 사진임을 그 역시 모를 리가 없었다는 겁니다.
제가 갖고 있는 사진 철학은 "밝음"입니다.
누군가를 웃거나, 울거나, 슬프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게 사진이다. - 에디 애덤스가 사진에 관하여 남긴 말입니다.
거기에 구도가 좋고, 나쁘고는 없습니다. 황금분할이니 허리를 자르지 말고 찍으라는 둥의 이야기는 그간의 통계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다음부터 나의 시선을 믿었습니다.
내가 구상하는 프레임을 믿었고, 내가 뷰파인더로 보는 그 장면에 대한 확신을 갖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족히 반년은 고민하고 고심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내려놓아도 될까?
은퇴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맞나?
너무 빨리 주류에서 빠져나오는 건 아닐까?
고민거리만 정리해도 50줄은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득
사진을 처음 취미로 갖게 되었던 그때의 이야기가 생각이 나면서,
비로소 은퇴에 용기가 생겼습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내일을 위해 살았고, 그때마다 선택했던 결정과 시선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는 과거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자꾸 찍고 연습하다 보니 나의 만족감이 높아졌습니다.
제가 사진을 잘 찍는 게 아닙니다.
나 스스로의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게 올바른 표현입니다.
인생 역시 그러합니다.
과거에는 1억만 수중에 있었으면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덧 그 금액보다는 꽤 괜찮은 자산이 있음에도 지금까지도 불안함에 갇혀 있는 저 자신을 보며, 스로의 객관화가 부족하고 정의를 내릴 줄 모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메타인지를 해보았습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건
'쉬고 싶다.'
그러면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가치라고 판단한다면?
'일단. 쉬자!'
이 결심을 하고 나니, 너무 평온해졌습니다.
은퇴의 두려움은
실제 일어날지 일어날지 모르는 막연함에 관한 두려움.
다시 도전하기 어렵다는 선제적 정의로 발생한 두려움.
지금까지 해놓은 게 없다는 후회를 동반한 두려움.
결국 이 모든 것을 넘어설 수 있는 파훼법은 결국 내가 결정하는 순간입니다.
뷰파인더로 보이는 그 풍경이 이쁘다고 생각하여 셔터를 누르는 바로 그 순간처럼 말이죠.
과거 내게 용기를 주었던 사실과 아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돌아보니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그 믿음이 결정을 도와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또 바뀔 수 있겠죠?
제가 인물 사진만 찍다가 풍경 사진도 해보고 싶은 것처럼 말이죠.
그 역시. 전 올바른 결정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