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갑장동무랑 땀이 한 바가지
장소 ; 모악산 (793.5m)
일시 ; 2025. 7. 27
동행 ; 동호회원 1+2, 나
코스 ; 중인리 주차장~계곡길~폭포~비단길능선~정상~원점
거리 ; 왕복 8km
소요시간 ; 4시간(휴식포함)
나에게는 더 늦기 전에 완주하고 싶은 둘레길 코스가 있다.
바로 지리산 둘레길이다.
지리산 자락을 아우르는 3개도, 5개 시 군, 120여 개 마을을 이어 285km, 22개 구간으로 구성된 긴 순례길이다.
마음먹은 지가 수년이 지났지만
"누구랑 가나?"
동행연구만 하다가 최근 들어 마음이 좀 급해졌다.
더 미루다 보면 못 갈 수도 있겠다는 염려가 생겨나서 그렇다.
그래서 찾아 나서기로 했다.
당근마켓에 산행동호회를 개설한다기에 처음으로 들어가 보았다.
무슨무슨 동호회마다 나이제한이 있던데 그런 제한이 없어서 용기를 내본 것이다.
동호회 시스템을 잘 몰라서 며칠 지켜보았다.
"언제 어느 산에 갈 건데 시간 맞는 분 같이 갈까요?"
이렇게 운영되는 것 같다.
나도 톡을 올려 보았다.
"일요일 오전 8시에 모악산 중인리 계곡길로 정상에 갈 건데 함께 가실 분 오세요."
그랬더니 내 또래 여성 한 분이
"9시면 갈 수가 있겠네요."
그래서 내가 한 시간 늦춰서 함께 가기로 했다.
무더운 날씨는 각오하고 물과 간식을 준비했다.
파인애플을 자르고, 파프리카와 당근도 둘이 먹을 만큼 썰어 담았다.
주차장 화장실옆 큰 소나무 아래 빨간 스카프를 매고 서 있었다.
단내가 폴~폴~나는 복숭아를 팔고 있다, 큰 소나무 아래서.
이따가 내려갈 때 한 바구니 사 갖고 가야겠다 맘먹고 있는데
나를 향해 걸어오는 여자분이 눈에 들어온다.
통성명을 잠깐하고
"가실까요?" 곧바로 출발했다.
하늘은 색종이를 오려 붙인 듯 구름과의 경계가 선명하고 쨍쨍했다.
동행이 된 동호회원은, 나와 토끼띠 갑장이었고 시원시원 말을 잘했다.
그 사람은 계곡길 중간에 폭포까지만 가서 쉬고 되돌아올 것 같았다.
산을 오르면서 나는 내 목표를 말해줬다.
지리산 둘레길 완주를 하고 싶은데 동행팀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도란도란 걸어서 작은 폭포아래 도착했다.
물이 조금만 흘러서 아쉬웠지만 맑은 물 웅덩이에 손발을 씻고 땀을 식히고 간식을 먹었다.
생각보다 모기가 없어서 쉴만했다.
동행갑장은 아까부터 자꾸 전화기를 만졌다.
폭포 주변은 통신두절 구간인데 뒤따라오는 일행이 있다고 좀 안절부절못했다.
20분쯤 쉬었을까 남자 둘이 소란스럽게 합류했다.
나는 이제부터 혼자서 정상에 갔으면 싶은데 모두 같이 가겠다고 나선다.
이 사람들은 동창, 후배 이런 사이고 걷기 동호회 활동도 함께 하는 모양이다.
스카프가 다 젖도록 땀을 흘리면서 정상을 향해 힘겹게 발을 내디뎠다.
중간중간 목을 축였어도 정상에 가까워졌을 때 살짝 손끝에서 쥐가 나는 느낌이 왔다.
계단을 오르면서 갑장이 자주 쉬었으므로 나도 덕분에 무리하지 않고 전망대에 도착했다.
정상석까지 오르는 구간은 공사 중이라 통행금지, 차라리 잘됐다.
먼저 그늘에 들어가 앉았다.
우리 둘 다 기진맥진해서 전망대 땡볕에서 경치구경할 여유가 없었다.
두 모금 남은 물을 모두 마셨다.
한 시간 남짓 내려가야 하는데 물이 떨어져서 어쩌나 아쉬워할 때,
갑장이 "이것 좀 마셔 볼래요?" 하면서 빈 텀블러에 따라주는 톱톱한 음료!
콩, 단호박, 땅콩을 갈아서 간간하게 간을 맞춘 데다 얼음처럼 시원하기까지!
얼마나 갈급하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지 살 것만 같았다.
우리보다 먼저 전망대에 도착했던 두 남자는 산아래 경치를 둘러보느라 콩물을 못 얻어먹었다.
나는 이제 속도 든든하고 갈증도 없이, 아무 걱정 없이 하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조금 앞장서서 하산을 하는 중 가까이에서 까마귀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몸집이 작은 까마귀 한 마리가 낮은 나뭇가지에 앉은 게 보였다.
작은 소리로 우는데 나도 작게 화답해 주었다.
"까악, 까악, 쭈쭈쭈"
두세 번 주고받고 까마귀는 나무 사이를 날아갔다.
한 100미터 뒤에서 진짜 오랜만에 들어보는 "야---호" 소리가 들렸다.
아주 시원하게 내지르는 남자 목소리다.
나는 갈림길에서 좀 기다렸다.
일행들이 내려왔길래 살짝 물어봤다.
"혹시 야호 하신 분?"
"내가 했어요." 역시 우리 일행이다.
"요즘 노래방도 안 다니고 소리 지를 일이 없었는데 개운하게 한 번 질렀네요."
나는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산에서 야호는 안 하는 게 매너가 됐어요."
"아 그래요? 새들 놀랜다고 그런대요?"
"새들도 그렇지만 사람들도 안 좋아해요."
"아, 그럼 어디 가서 소리를 지른디야?"
나는 무슨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또 한 남자는 하산 길 내내 두런두런 전화 통화를 했다.
나까지 집중력이 흩어지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야호남은 또 다른 일행과 잠시 후 또다시 폭포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투덜투덜거렸다.
하산길이 거의 끝나갈 때쯤 갑장이 주차장 곁에 있는 식당에서 국수를 먹고 가자고 했다.
점심때도 지났고, 에어컨이 그리워 얼른 식당으로 들어갔다.
한 남자가 또 합류했다.
야호남과 다시 폭포로 올라가서 다른 일행을 만날 사람이었다.
나는 어질어질했다.
비빔국수와 찬 맥주 한 잔을 마셨다.
더치페이하고 복숭아는 안 사고 그냥 돌아왔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사람의 사슬이 버거웠다.
안전귀가 후, 샤워 후, 하루 일을 되짚어 봤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한 산행이 참 낯설었다.
그나마 갑장이 건네준 콩물의 기억이 크게 위로가 됐다.
나도 콩물을 만들어 보려고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