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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809m)

월출산~ 천황봉에~ 보름달이 뜬다~

by 화수분

일시 ; 2025. 5. 19

동행 ; 우정, 나

코스 ; 월출산국립공원사무소~천황사삼거리~바람폭포~통천문삼거리~천황봉~사자봉~구름다리~천황사~원점

거리 / 소요시간 ; 6km / 6시간




오동나무 꽃이 좋았다.

도로가 산자락에 무더기로 피어서 환하게 눈을 밝혀주는 보라꽃.

이른 아침부터 월출산이 있는 영암으로 달려가는 길에 싱싱한 오동꽃을 실컷 구경했더니 내 마음이 흡족해졌다.

사진출처 horim tv


4월 말부터 6월 초 까지 피는 오동나무 흰꽃, 보라꽃.

옛날에는 딸을 낳으면 집 가까운 곳에 오동나무를 심어 키워서 시집보낼 때 혼수로 장롱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가볍고 단단하고 벌레가 슬지 않아 전통 가구나 악기로 만들기 좋은 목재라고 한다.

꽃말은 고상함, 품격이라니 은은한 향기와도 잘 어울린다.


내가 어릴 적 살던 우리 집 대문간에도 벽오동, 참오동나무가 한 그루씩 크게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엄마가 병석에 누워, 다섯 딸들에게 한벌씩 해 입히려고 준비했던 한복감 색깔이 딱 오동꽃색이었다.

결국은 딸들이 옷 해 입는 걸 못 보고 먼 세상으로 떠나신 엄마에 대한 추억 때문에, 내가 유달리 저 오동꽃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것 일 수도 있겠다.




산행, 여행, 공연, 술친구 젊은 우정이하고 이른 아침 만나서 월출산에 간다.

흰구름이 점점이 박힌 하늘이 쾌청해서 자꾸만 올려다보았다.

9시 반에 월출산 국립공원 사무소에 도착했다.

마침 산중행사가 있다고 주변동네 주민들과 국립공원 직원분들과 가야금 선생님이 한자리에 모여있다.


'월출산'하면 원로 가수 하춘화가 부른 민요 '영암아리랑'이 생각난다.

흑백티비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와서, 마이크를 멋지게 잡고, 큰 눈을 크게 뜨고 그녀가 부르던 노래.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황봉에 둥근 달이 뜬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에헤야 데헤야 어사화데야

달을 보는 아리랑~

님 보는 아~리~랑~


가야금 연주까지 들었으면 좋았으련만 우리는 등산코스만 확인하고 서둘러 입산했다.

아니나 달라?

몇 걸음 안 가서 영암아리랑 노래비와 고산윤선도 시비가 떡하니 우리를 맞아주었다.


맑은 계곡물을 따라 걷는다.

청신한 기운 따라 햇살도 퍼지고 눈앞이 환해진다.

바람폭포 쪽으로 먼저 방향을 잡았다.

역시 초반부터 바위가 일품이다.

지난봄에 다녀간 해남 달마산도 바위로 산등성이를 치장했더구먼, 이 일대 높은 산들은 바위로 병풍을 친 듯 웅장한 모습이다.


기기묘묘한 바위를 보면서, 감탄사를 무수히 날리면서, 사진을 찍어대면서, 오손도손 고도를 높여간다.

꽃색도 유난히 곱고 나무들의 새잎도 반짝거린다.

새소리도 풍경이 되는 이 계절, 산에 아니 가고 무엇하리......

숨 가쁘게 오르면서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곳곳에 눈을 맞춘다.

생생한 모습 그대로를 철마다 보여주시는 자연에 감사드린다.


월요일이라 등산객이 많지는 않다.

두 시간 반 만에 천황봉에 도착했으니 그리 고단한 산행은 아니네.

정상에는 바람이 휘몰아쳐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가 없다.

사진을 찍으려고 폼을 잡았더니 퉁퉁한 몸이 휘청거린다.

서둘러 내려와 점심 먹을 자리를 물색하고 좌정했다.


먼 산에 갈 때는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싼다.

도시락 준비에도 은근히 시간이 걸려서 아침에 제법 부산을 떨어야 했다.

오늘 두 아주머니의 도시락 구성은 이랬다.

밥, 김치, 마늘쫑 조림, 오이김치, 파스타, 딸기, 수박, 참외, 토마토, 맥주 한 캔!


하산길은 고난의 길이었다.

사자암 방향으로 내려오던 초입에는 경치가 좋아서 희색이 만면하였다.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이맘때 산의 색깔은 불 켜진 초록과 같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얼마나 여리고 싱싱한 지, 한주먹 따서 쌈 싸 먹고 싶을 만치 먹음직도스럽다.


좁은 산길에 웬 대문이 달렸을까?

꽃이 하도 예쁘니까 전원주택 정원처럼 꾸민 건가?

근사한 경치로고!

사진으로 남기리!


곤두박질치는 내리막, 두 손 두 발 다 써도 황망한 오르막, 가도 가도 거리가 줄지 않는다.

구름다리는 언제 나올 건가.

바위들의 장관이 우리들의 혼을 쏙 빼놓고 홀린 듯 음험한 골짜기로 들어서게 만든다.


수많은 고개를 넘고, 천신만고 끝에 구름다리에 다다랐다.

여기에도 하산 초입에 보았던 대문이 달려있다.

안내문을 보고서야 그 용도를 알게 됐다.

워낙 위험한 코스라서 겨울철이나, 일기가 좋지 않을 때 닫는 '통행금지'용 문이었던 것.

어쩐지 가도 가도 거리가 줄지 않는 것 같아 갸웃갸웃했더니 그만큼 험한 길이었구나.

천황사를 거쳐 3시 반에 하산을 마쳤다.


한 시간에 1km를 간 산행은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산행기록도 마찬가지라고, 참 특이한 산이라고, 우리 둘이 마주 보고 웃었다.

주차장 화장실에 들러서 얼굴에 서글서글한 소금기를 씻어내고 개운한 기분으로 우리 동네로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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