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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바래봉(1167m) 철쭉산행

출발은 단체로, 가다 보니 홀로 산행

by 화수분

일시 ; 2025. 5. 13. 화요일

동행 ; 전주대사습 기능후원회원 11인

코스 ; 남원시 운봉읍 용산마을~삼거리~바래봉~삼거리~용산마을(10km)

소요시간 ; 3시간



작년부터 우리 단체에서 지리산 철쭉을 보러 가자고 했다가 못 가고 올해 드디어 날을 잡았다.

주말을 피해 평일로 계획을 잡아서 사람이 붐비지 않고 좋았다.

전주에서 아홉 사람이 출발했고 남원에 사는 회원 두 분이 합류해서 열한 명이 일행이다.


일행 모두 바래봉까지 다녀오는 게 목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무용선생님 한 분은 "호텔(오헤브데이) 커피숍에서 기다릴 테니 다녀와라"며 빠이빠이 했다.

그래서 열사람이 등산을 위한 길로 접어들었다.


지리산 운봉 바래봉 철쭉제는 올해로 29회, 4월 26일부터 5월 25일까지 기간이다.

가장 핫한 철쭉꽃 군락은 바래봉 <--> 팔랑치 1km 구간인데 우리는 바래봉까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가장 짧은 코스를 택해서 운봉 용산마을 주차장~바래봉 코스를 정한 것 같다.


출발한 지 1km 이내의 초입에는 대부분 장년층의 어른들이 무리 지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등산객이라기보다는 축제기간에 꽃구경 오신 모임들인가 보다.

오전 10시를 막 넘긴 시간인데 벌써 도시락을 펴고 군데군데 이야기꽃이 한창이다.


우리 팀도 오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주최 측이 준비해 주신 간식을 든든히 먹고 출발했었다.

찰밥, 떡, 과일, 맛난 김치, 커피......

모자랄 것 없이 요기를 하고, 또 산에 갈 때 점심시간을 넘길 거니까 한보퉁이씩 개인 간식을 싸 주었다.


포장임도와 숲길이 나란히 오르는데 햇빛도 피할 겸 흙길을 걸었다.

차츰 일행과 틈이 생기고 나는 앞서가면서 뒤를 돌아보진 않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올 거니까 "나만 잘 가면 되겠지"하고 내 호흡에 집중했다.


바래봉 가는 길은 땡볕으로 유명한 길이다.

길은 잘 닦여 있는데 그늘은 귀하다.

아직 경사가 시작되기 전 길 모퉁이, 망루에 앉아 염불 하는 스님(?)도 튼튼한 양산을 받치고 있다.

내가 올라갈 때나 내려올 때나 시주하는 사람을 못 봤는데, 간혹 시주를 받으니까 자리를 지키고 있겠지.

나도 시주는 안 했다.


잘 닦인 길을 국립공원 차량만이 오가면서 우리를 감시했다.

철쭉제기간에만 그러는지, 늘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산불감시가 1번이겠고, 음주단속, 임산물 채취 단속, 그런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바래봉은 둥그스럼한 봉우리다.

그래도 1167m나 되는 고산인데 어찌 발걸음이 수월키만 하겠는가.

점점 고도를 올리는데 허벅지가 뻐근해지고, 호흡은 가빠지고, 시선은 땅을 본다.


오르막 내리막 없이 일정한 경사로 계속 오르는 게 고문처럼 느껴질 때, 거기서 쉬지 않고 느린 걸음으로 호흡을 고르며 고갯마루에 다다르는 쾌감도 즐길 만한 성취다.

선채로 잠깐 호흡을 고르고, 물 한 모금 마시고, 또 걸음을 놓는다.

이것이 나만의 페이스라서 느린지 빠른지 비교는 못하고 그냥 묵묵히 가는 것뿐이다.


이런!

등산객도 몇 명 안 되는데 우리 팀은 한 명도 안 보인다.

어디서부터 헤어졌을까?

아무래도 연세가 있는 어른도 계시니까 몇 분은 완등이 어렵더라도 남자분들도 있는데......


그래도 할 수 없다.

난 가야겠다.

지난겨울에도 긴 코스로 이곳 바래봉에는 다녀갔었는데 오랜만에 꽃 핀 5월의 바래봉을 만날 생각에 뒷사람들 챙길 염사(생각)가 없다.


흐드러진 꽃밭은 아니다.

아래쪽은 꽃이 졌고 상봉은 덜 피었고, 그래도 지리산자락의 짱짱한 기운을 먹은 꽃들을 가까이서 보니 내게도 영산의 기운이 스며드는 듯 황홀해진다.


정상의 바람이 모자를 빼앗는다.

날리는 모자를 뛰어가서 겨우 붙잡고, 준엄하게 이어지는 지리산의 능선을 조망해 본다.

바래봉은 지리산 서북능선의 시작점이자 끝점이다.

성삼재에서 외로 돌아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이 능선을 나는 사랑한다.

점점 느린 걸음이 되겠지만 쉬엄쉬엄 오래오래 걷고 싶다, 이 길을.

- 2025년 1월 17일 서북능선 산행 중 바래봉


- 2025년 5월 13일 바래봉 철쭉산행


거의 휴식 없이 내 속도대로 걸어서 정상에 오른 다음 망설였다.

여기서 일행을 기다려야 하나?

바람도 많이 불고 누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또 내 속도대로 내려가자, 누구든 만나겠지.


아무도 못 만났고 전화가 왔다.

"어디세요?"

"내려가요."

"얼마나 걸려요?"

"거의 다 왔어요."

"차 있는 데로 오세요."


모두 차에 타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만 바래봉에 다녀온 것?

각자 역량껏 걷고, 쉬고, 기다리고 그런 것 같다.


한시 반이나 돼서 얼른 점심장소로 이동했다.

화장실에 들러 세수도 한 번 하고, 흑돼지 오겹살과 소맥 두 잔으로 개운하게 종아리의 젖산도 씻어냈다.

바래봉에서 찍어 온 나의 인증샷으로 일행들은 아쉬움을 달래고, 운전 잘 해준 회원 덕분에 전원 안전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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