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의 선명성과 신뢰감에 대하여
한 2년 전부터 이가 시리고 먹먹하고 음식을 먹을 때도 한쪽으로만 씹게 되었다.
치과에 가서 검진을 해도 X-ray를 찍어보고 통증을 물어보고 나서 원장님이 별 문제가 없다고 하니
"노화인가 보다"하고 또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은근한 불편감이 위아래 턱뼈와 관자놀이를 묵직하게 누르는 것 같았다.
잠잘 때도 편치 않고 계속 인상을 쓰며 증상을 안고 지냈다.
다시 치과에 가서 불편을 호소했는데
잇몸도 좋고 치아관리도 잘 돼있다고 칭찬받으면서 또 스케일링만 했다.
내가 찜찜한 얼굴로 찡그리고 바라보니 원장님은 오른쪽 아래 어금니잇몸에 주사를 놓아주었다.
무슨 주사인지 물었더니 내가 아프다고 하니까 놓아주는 거라고 했다.
정확히 아픈데도 모르는데 주사를......
또 약을 3일분 처방해 주었다.
무슨 약인지 물었더니 그냥 일반적인 약이라고 했다.
"아, 이게 뭐지?"
"내가 정서적인 문제를 가진 걸로 보이나?"
그때부터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삼차신경통"을 의심하게 됐다.
증상도 비슷하고 예전에도 삼차신경치료(구안와사)를 받은 병력이 있었기 때문에 신경과를 찾아갔다.
신경과 원장님은 문진후 15일분 약처방을 해주셨다.
신경과 약을 먹어도 불편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걸 갖고 살아가야 하는 건가?"
우울감이 밀려왔다.
한 일주일정도 먹구름을 머금은 표정으로 일상을 반복하다가 드디어 통증이 나타났다.
엄청 감사한 통증!
정확히 오른쪽 아래 끝에서 두 번째 어금니가 아팠다.
득달같이 치과를 찾아갔다.
아픈 지점을 자랑스럽게 알려줬다.
오래전 충치치료 후 금으로 때워둔 어금니 뿌리 쪽에 염증이 생겼다고 했다.
그동안 치과에 다니면서 X-ray도 찍고 불편감도 호소했는데 왜 몰랐을까?
신경치료 후에 치아전체를 싸주는 크라우닝을 해야 한다고 그랬다.
비용은 60만 원이 든다고.
난 "아프지만 않게 해 주세요."하고 빌다시피 애원했다.
치과치료는 정말, 공포, 그 자체다.
치리리리릭, 치리리리릭......
온몸이 뻣뻣해지고, 에어컨이 빵빵한데도 맞잡은 손은 땀이 나서 축축했다.
"어어어어, 으으으으......"
마취를 여러 번 했어도 간헐적으로 찌르는 통증에 초주검이 되고 1차 치료가 끝났다.
다음 진료 예약을 잡고 돌아오면서도 찜찜한 기분이 한 자락 깔린 채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금니 통증 때문에 치과에 갔던 첫날 치료실 내부가 소란스러웠다.
할머니 한 분이 안팎으로 다니며 큰소리로
"내가 늙었다고 나를 속여먹냐? 세 개 값을 미리 받고 두 개만 치료했구먼?"
조상과 자손을 들먹이며 악담을 쉴 새 없이 반복적으로 퍼붓고 치료실과 대기실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원장님은 데스크로 나와서 경찰을 부르라고 했고 진짜로 경찰이 왔다.
할머니 환자의 사기피해호소가 전부터 수차례 반복됐었던가 보다.
경찰이 할머니를 진정시키고 원장님에게 여러 가지 묻고 진료기록부를 내보이고 어수선했다.
나는 이미 X-ray를 찍고 대기 중이었는데 시간도 넉넉지 않았기 때문에 치위생사에게 내일 와서 치료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치위생사는 금방 끝날 거라며 자리를 배정했고 나를 치과의자에 눕혔고, 나는 초록색 사각포로 얼굴이 덮였다.
원장님은 나를 치료하면서 약간 민망했는지 할머니환자의 험담을 한차례 했다.
입을 아, 벌리고 초록색 사각포에 덮인 나는
"할머니환자의 보호자는 없을까?"라고 생각했다.
3일 후에 두 번째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지난번 할머니환자의 사기피해호소를 떠올리며
"나도 그럴 수 있겠다."라는 판단이 생겼다.
의사소통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었던 거다.
두 번째 치료 중에 나를 치과의자에 누인 채로 치아 여러 곳을 살피며 X-ray를 자꾸 찍더니 원장님이 말했다.
지금 치료 중인 어금니 외에도 다섯 개의 충치가 있어서 갈아내고 레진으로 때워야겠다고.
한 개에 10만 원씩 50만 원이라고.
신경치료 중인 어금니 통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지 혼이 나갈 것 같은 나는 그냥 오케이라고 했다.
어금니에 마취를 해둔 상태에서 다섯 개의 충치를 금세 갈아내고 뚝딱 레진을 때웠다.
통증과 싸우며 치료가 다 끝나고 원장님에게 물었다.
"그동안 스케일링 할 때는 치아나 잇몸이 좋다고 했는데 충치가 이렇게 많았던가요?"
"환자와 신뢰도 없이 처음부터 치료할 게 많다고 할 수 없잖아요."
"어금니 신경치료 첫날도 X-ray 찍었는데 그날에도 말씀이 없었는데요."
"많이 아프다는 사람한테 또 치료할 게 많다고 할 수 있나요? 안 그래요?"
"하, 이게 뭐지?"
다음 예약을 잡고 나오면서 나는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여지고 마음이 심란해졌다.
치과 원장하고 환자 사이에 신뢰가 생겨야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에게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치료여부는 환자가 선택하는 거 아닌가?
나도 그 할머니처럼 레진으로 때운 치아가 정확히 어디 어디 몇 개인지 잘 모른다.
치료비는 어금니 60만 원, 레진 다섯 개 50만 원, 합이 110만 원을 벌써 지불했다.
치아보험을 청구할 거니까 부담은 덜하지만 어벙벙한 상태로 치과에 다니고 있다.
그래도 가장 큰 위로는 3차 신경통을 의심했던 증상들이 싹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턱과 관자놀이 주변의 먹먹하고 무거운 느낌이 없으니 인상을 구기지 않아도 되고 잠자리도 편해졌다.
근데 이번 치료가 다 끝나면 치과는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될 것 같다.
***사진출처 ; 네이버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