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테러 삼가 주세요!
"칙, 칙, 치--익"
바로 옆자리 젊은 여인이 좌석에 앉자마자 가방에서 꺼낸 향수를 자신의 목덜미에 분사해 버렸다.
나의 왼쪽 얼굴에도 몇 방울이 떨어져 난 흠칫하며 왼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향기는 둘째치고
"이 괴이한 상황이 뭔가?"
저녁시간 실내악 공연관람을 위해 식사도 간단히 하고 양치도 꼼꼼히 하고 조신하게 앉아 무대조명이 켜지기를 기다리던 참에 이런 낭패라니......
난 호흡을 멈춘 채 옆자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옆자리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와 수다를 떠느라고 고개를 외로 꼬고 어깨가 들썩거렸다.
이제 곧 공연이 시작될 텐데 이 자리에서는 제대로 감상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운데 통로 쪽 한자리 남은 걸 예매했었는데 이 아까운 자리를......
서둘러 로비로 나가 아무 자리나 빈좌석으로 교환했다.
한참 뒤쪽으로 가서 "실례합니다."를 연발하고 한자리를 차지했다.
짙은 향기에서 벗어난 것만으로 감사하며 감상에 집중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던 그 여자는 어째서 공연장 좌석에 앉아 향수를 뿌렸을까?
그렇게 해도 괜찮은 행동인가?
향수니까 누구나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싫었다.
향수는 외출하기 전 집에서 뿌리고 나오는 거 아닌가?
자기 차 안에서 뿌리든가,
아니면 화장실에서 남몰래 살짝 뿌리는 거 아닌가?
공연장 좌석에서 향수뿌리는 걸 이해 못 하는 내가 문제인가?
며칠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의문과 불쾌감이 가시지를 않는다.
향기가 몹시 불쾌할 때, 또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향수의 악취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던 경험이 나만 있는 건 아닐 것 같다.
남녀 불문하고, 상대가 그 향기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고 뿌린 것일까?
때론 안타까운 마음에 "이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도 있다.
차마 말은 못 하고, 숨을 참고, 어서 이 화생방(?)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만 고대할 뿐.
향기가 몹시 불쾌할 때, 또 있다.
난 산행을 좋아해서 계절 없이 산에 간다.
높은 산이나 낮은 산이나 힘들지 않은 산은 없다.
거친 호흡으로 오르막을 오를 때
"헉, 숨 막히는 향기"가 나를 덮친다.
누구네 집 섬유유연제의 짙은 향기를 대책 없이 마시게 되는 난감한 나의 호흡기!
산을 내려가는 사람과 교행 하면서 훅--, 끼쳐오는 화공약품의 습격!
하루산행에 두어 번은 겪게 되는 낭패다.
낯선 이의, 땀에 절은 독한 향기에도, 숨을 참을 수가 없다.
나도 숨차게 오르던 참이라 저절로 인상만 찌푸리고 지나칠 뿐이다.
섬유유연제를 얼마큼 쓰면 저렇게 찐한 향기가 날까?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면 무턱대고 쓸 일은 아닌데......
아이들한테서도 짙은 섬유린스의 향기가 날 때면 좀 걱정스럽기도 하다.
나무에게서, 꽃에게서 맡는 향기는 나를 환한 감동으로 가득 채워준다.
그래서 직접 자연의 체취를 맡으러 자꾸 산으로 간다.
일주일에 한 번은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수고를 기꺼이 실천하려고 한다.
산책길에도 만나는 생울타리 쥐똥나무꽃향,
너무 흔해서 꽃이 피는 줄도 모르는 회양목 꽃향,
멀리서도 은은하게 풍겨오는 더덕향,
반짝이는 잎에서 스며 나오는 상산나무향,
덩굴져 타고 올라가다 줄기를 내려뜨린 눈꽃 같은 사위질빵꽃향......
생물, 자연의 향기를 맡아보면 그 순간만큼은 명품향수의 향기도 고개를 돌리게 될 것이다.
아무리 비싼 향수라도 살짝만, 상큼하게만 뿌려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향수로 치장한 남의 향기를 좋아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향기테러로 불특정 다수를 괴롭히기 없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