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방가사를 아시나요?
지난주 토요일 오전 이른 시간 중년의 한량 두 사람이 만났다.
우리는 오래전 잠깐 업무적으로 만났었고, 10년 이상 모르고 지내다가 최근 도립국악원에서 우연히 만났다.
장구장단에 민요를 배우는 반에서 만나고 보니 둘 다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풍류객이었다.
Y는 나보다 열 살이나 젊은 동생이지만 민요를 배우며 이젠 동무가 된 것 같다.
Y가 내게 함께 가 볼 데가 있다고 김제에 있는 <학성서원>을 소개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에 동반 나들이를 다녀오게 된 거다.
가을이면 지평선이 아름다운 곳,
벼가 익어 황금양탄자처럼 온 들판을 뒤덮는 곳,
코스모스와 은행나무와 메타세쿼이아가 직선도로를 몽글몽글 꽃길로 장식하는 곳,
내 머릿속의 김제는 그런 곳이다.
가을에만 한두 번 드라이브 가는 곳.
낯선 길을 40분쯤 달려 도착한 서원 앞은 번번한 논밭이 시원하게 펼쳐져있었다.
훤칠한 2층 누각형태의 세 칸 대문은 마치 규모를 갖춘 사찰의 만세루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약속시간이 넉넉히 남아서 서원 주변을 한 바퀴 돌며 구경했다.
이웃에는 구한말의 독립운동가이며 문장가인 '해학 이기선생'의 유적도 남아 있어서
이 지역문화에 대한 관심이 새로 생겨났다.
<학성서원>은,
본래 유학자 화석 김수연(1926~2019) 선생이 1954년에 세운 서당 "학성강당"이었는데
2024년 5월에 승격되어 학성서원으로 재탄생 한 전통 성리학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지금은 화석 선생의 아들 김종회(전 국회의원) 선생이 부친의 사당을 모시고 서원을 운영 중에 있다.
우리가 학성서원에 간 이유는
"규방가사를 함께 공부할 사람?"
권유를 받고 첫 번째 모임에 동참한 길이었다.
화석 선생의 며느리, 김종회 선생의 부인인 이당선생님이 가사문학에 관심을 갖고
그 맥을 잇는데 뜻을 두었다.
가사문학은 시조와 함께 조선시대 문학의 한 장르다.
정극인의 <상춘곡>,
정철의 <관동별곡> <성산별곡>,
송순의 <면앙정가>,
학교 다닐 때 외우던 가사문학의 대표작들이 새삼 떠오른다.
조선전기에는 사대부계층이 중심이었으나 점차 양반 부녀도 접하게 되어 규방가사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허난설헌(1563~1589)의 규원가(閨怨歌)가 대표적 규방가사로 전해지고 있다.
27세에 요절한 천재 여류문인이 자신의 비극적 삶을 고스란히 시로 엮어 남겨두었다.
오늘 그 가사를 읽어 보아도 그녀 일생의 원망과 허무가 내게도 깊이 공감되어 몇백 년 세월의 간극이 무색하기만 하다.
규방가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문학의 위상으로 2022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 태평양지역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전통적 시가형식의 문학장르지만 지금도 안동지역에서 '내방가사보존회'등이 활동하며 그 가치를 전승하고 있다.
우리 근방에서는 끊어지다시피 한 가사문학의 명맥이 아쉬워 이당선생님이 뜻있는 사람을 모아 소규모그룹이나마 이끌어 주시려는가 보다.
가사문학의 산실은 전남 담양을 꼽을 수 있다.
담양은 2000년도에 가사문학관을 건립하여 송순의 면앙집, 정철의 송강집, 작가의 친필, 유묵등을 전시하고 있다.
문학관 주변에는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 송강정, 면앙정등 가사작품 집필의 무대가 즐비하다.
담양 지자체는 아예 이 지역을 가사문학면(歌詞文學面-2019년 남면에서 개칭)이라고 이름 붙였다.
자랑스러운 유산이니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가꾸고 전승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나도 몇 곳은 관광 삼아 구경했었는데, 이젠 관심을 갖고 다시 보러 가야겠다.
학성서원의 건물배치를 보면서 절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산행을 좋아하는 나는 자연스럽게 산 속의 절구경을 많이 했었다.
이 곳 서원의 기와지붕과 목재기둥과 주련들이 절집의 구성과 흡사하게 닮았다.
어쨌거나 안팎으로 사람 손이 안 갈 수 없는데 이 큰 살림을 어찌 해 내시는지......
또 이 댁의 가양주 '백화주'는 명품술로 유명하다.
백가지 꽃을 따서 직접 빚은 누룩으로 술을 담근다고 하신다.
나도 예전에 지역 TV방송에서 이 댁의 백화주에 대해서 본 기억이 난다.
교자상위에 줄지어 누운 채 몸을 말리는,
하얗고 둥근 누룩들을 보자니 백화주 향긋한 술맛이 그리워졌다.
언제고 한 번은 맛볼 수 있겠지.
누각에 딸린 작은 방에 네 사람이 찻상을 두고 둘러앉았다.
이당 선생님이 두루마리를 펼치고 가지런히 쓰인 단정한 세필을 보여주셨다.
이당 선생님의 가사작품이다.
선생님의 성독(聲讀) 시범을 보고 한 사람씩 따라 해 보기로 했다.
Y는 낭랑한 목소리로 반복되는 멜로디를 노래하듯 잘 읽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학생답게 부족하게 읽었다.
예전 언젠가 목청 높이던 "부생아신하시고~ 모국오신 하시다~"가 갑자기 떠올랐다.
앞장서 이 모임에 정성을 들이는 교수님 한 분도 호흡을 가다듬고 차분히 잘 읽었다.
모두 박수를 치고 선생님이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한 차례씩 더 읽어 보자고 했다.
'늦은 장마'라는 긴 작품을 Y가 또 낭랑하게 읊어 내려갔다.
김제의 역사적 내력과, 지평선들녘의 사시사철을 애달픈 농부의 마음으로 표현한 글이었다.
사람의 음성으로 불려져 내 귀로 들어온 시가 내 마음에 쌓였다.
나도 농부의 마음이 되고 아직은 푸른, 콩과 벼가 무탈하게 익어 풍년이 되기를 소망했다.
성독은 참 특별한 감각을 일깨우는 경험이 되었다.
평면의 종이 위에 나란히 누웠던 글자들이 허공으로 일어나 나의 오감 속으로 스며들었다.
눈으로 하던 독서가 그랬던가?
가사를 짓는 데는 소재도 제한이 없고 길이도 제한이 없다.
한글로만 지어도 좋고 한자를 섞어도 좋다.
다만 3.4자 또는 4.4자로 음절을 맞추는 것이라니 성독하기에 맞춤일 듯하다.
목청의 높낮이를 조절하려면 저절로 복식호흡도 되겠다.
그것도 좋다.
**규방가사! 나도 한번 지어 볼까?
나를 위해 쓸 시간이
쇠털같이 넉넉하니
장구치고 노래하고
이보다 더 좋을 손가
나이 듦을 한탄 마라
오만재미 이제 온다
젊은 시절 어찌 알리
주름 따라 지혜 오네
돈을 써서 막을 손가
눈물로써 막을 손가
세월 두고 놀아보세
문자향이 죽단말가
**이렇게 쓰는 거 맞나요?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