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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두품 직장인] 1. 나는 6두품 직장인이다.

성골, 진골, 그리고 6두품 직장인

by 은하철도의 밤

매일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은 출근길을 걷는다. 1시간 20분 동안 지하철에서 부대끼고 난 이후에 도착하는 직장에서 누구나 같은 모습으로 매일 출근을 하고, 인사하고, 사무실에 들어가서 출근체크를 하고 난 이후, 막간을 이용해서 커피를 마신다. 그러면 이제 직장인으로서의 자아 세팅이 완료된다.


대부분, 나와 마주치는 같은 공간의 직장인들이 나와 비슷한 패턴을 유지하면서 일한다. 얼핏 보면 모두가 같은 직장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놀랍게도 같은 직장인이 아니다! 신라시대에서 볼 수 있는, 신분에 따라서 성골, 진골, 그리고 6두품으로 갈리게 된다.


(우리 회사의) 성골, 진골, 6두품은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1. 성골: 본사 직원 중 학부 기준으로 특정대학교를 졸업해야 한다. 과거에는 여기에 '남자'라는 추가 조건도 있었던 모양인데, 10년 전 인사팀의 피나는 노력으로 해당 조건은 (암묵적으로) 사라진 모양이다. 성골의 경우, 너무나 당연하게도 본사의 메인 부서에서 지속적으로 일하게 된다. 물론 일은 잘해야 하고, 이런 기회도 상당히 많이 주어진다. 성골은 어느 시점에 따라서 계열사나, 아니면 지방으로 발령을 받을 수 있는데 이후에 다시 메인 스테이지로 복귀한다.


2. 진골: 본사 직원 중 일반 대학교를 졸업하는 나머지 직원이 그 기준이다. 진골의 경우 핵심 부서로 진입하기보다는 외곽 부서에서 업무를 진행한다. 본인의 능력이 송곳처럼 반짝이거나, 아니면 정말 특별한 프로젝트에 해당 진골 직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하지만 성골에 비해서 메인 무대로 가는 기회는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3. 6두품: 계열사 직원들이 바로 6두품이다. 성골-진골과 6두품은 사실상 임금체계도 다르고 직급도 차이가 있어서 완전히 다른 세계인데 우리 회사의 경우, 기묘하게 본사에서는 계열사와 협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러면 성골-진골-6두품이 본사나 계열사에서 같은 부서에서 활동하는, 정말 기묘한 관계가 형성이 되기도 한다.


물론, 대한민국은 평등한 사회이기 때문에 우리 회사는 이런 기묘한 층위를 문서화하거나 법제화하지 않는다(세상 어느 회사가 그러겠냐만은). 하지만 이러한 관계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발생하는 관계의 층위, 내부 공기들은 본인의 소속이 어디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조향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나는 6두품 직장인이다.

그리고 나는 성골-진골-6두품으로 구성되어 있는 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의 부서에서 6두품으로 일하는 것은 참으로 공기를 잘 읽어내야 하는, 기묘한 부분이 있다. 물론 부서 내부적으로 화목하고 친하게 지내지만, 그 미묘한 관계들 - 업무 분배, 업무 대표 등 - 에서 차이가 상당히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심지어 본사 출입을 위해서 6두품들은 출입권한을 개별적으로 신청하고, 본사의 심사허가를 받아서 승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마음속으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니, 이렇게 행정처리 할 거면 애초에 우리를 본사 업무에 끼게 하지 말던가!"라는 푸념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드라마 '대행사' 8회에서 이보영이 본사 데스크 직원에게 '계열사 임원에게 본사 출입을 허가받고 하라는 게 말이 되냐'는 항의 씬이 절로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이 기묘한 관계들에 대해서 조금씩 풀어내는 게 목표이다. 나는 고려시대 반란을 일으킨 망이, 망소도 아니라서 절대 반란 따위를 일으킬 생각은 전혀 없다. 그냥 6두품 직장인으로 이 기묘한 공기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이 흔적을 기록하고 싶을 뿐이다.


p.s. 6두품 중의 6두품에게 이 이론을 장황하게 설명한 적이 있다. 결론은? 그 리더는 우리는 ‘서얼’이라는 것이었다. 한바탕 웃긴 했지만, ‘서얼’이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었고, 입 안에 쓴 맛이 나기 시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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