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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타리나 Jan 02. 2025

펭귄 걸음 소동


 어젯밤에 살짝 내린 눈으로 오늘은 하루 종일 길이 미끄러웠다.

 내가 담임교사로 있는 특수학급 학생들은 중학생답게 언제나 기운이 넘친다. 교내 이곳저곳을 마구 뛰어다니면서 신나게, 때론 위험하게 활동한다. 그래서 오늘 1교시에는 맘먹고 안전교육을 실시했다. 겨울철 빙판길을 걸을 때엔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지난 주말에 미리 PPT를 만들어 두었던 터라서 바로 안전교육을 실시할 수 있었다.

 먼저 빙판길에서 조심해야 할 점을 동영상 자료로 보여준 다음에 슬라이드를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자세히 설명하고 시범을 보여주었다. 우리 아이들은 짧고 굵게 하나의 이미지로 설명해 주면 이해를 빨리 해서 교육적 효과가 좋다. 더욱이 안전과 관련 있는 내용이기에 어떻게 하면 머리에 쏙쏙 들어가게 할까 고민하다가 ‘펭귄 걸음’이라고 명명한 빙판길에서의 안전 걸음을 시범으로 보여 주었다.

 펭귄처럼 양손을 옆에 둔 채로(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함.) 발 앞꿈치에 힘을 주고 보폭을 줄여가면서 종종걸음으로 걸어야 한다는 것을 여러 번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아이들은 우스꽝스러운 선생님 모습을 보고 웃기에 바빠서 왜 그렇게 걸어야 하는지 설명은 잘 듣지도 않는 것 같아서 조바심이 났다. 어쨌든 빙판길에서 펭귄 걸음으로 걸어야 한다는 것은 인지하였기에 마음 놓고 수업을 마쳤다.

 6교시를 마치고 하교 시간이 되었다. 재원이 어머니께서 아이를 데리러 오셨다. 재원이는 말을 잘하지 못하고 몸짓과 표정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친구이다. 알림장을 가방에 넣고 겉옷을 입으려던 재원이는 교실 창문 밖으로 엄마가 보이자 입던 옷을 팽개치고 엄마에게 달려간다. 엄마의 손을 잡더니 양옆으로 차렷 자세를 시키고 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라는 듯이 엄마 다리를 잡고 자꾸 모양을 바꾼다. 영문을 모르시는 재원 어머니께서는 “얘가 왜 이래요?”하고 물어보신다. 나는 수업 내용을 설명하면서 “재원이가 수업을 제대로 들었네요. 아주 기특하네요.”라고 칭찬하였다. 재원 어머님과 나는 서로 좋은 오후 보내시라면서 인사를 하고 재원이는 엄마를 따라 나갔다.

 잠시 후에 걸려 온 재원 어머니의 전화.

 “선생님, 도와주세요. 재원이가 길을 걷는 내내 펭귄 걸음으로 걸으라고 해요. 다른 사람들 보기에 민망해 죽겠어요.” 전화기 너머로 재원 어머님의 유쾌하면서도 황당해하시는 모습이 그려졌다. 얼른 밖으로 나가 학부모 주차장 쪽으로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재원이는 다른 사람이 보든지 말든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엄마에게 펭귄 걸음을 고집하고 있는 중이다.

 “재원아, 이쪽은 빙판길이 아니야. 이쪽은 햇빛이 많이 비쳐서 눈이 다 녹았어. 봐봐. 하나도 안 얼었지? 펭귄 걸음은 미끄러운 길에서만 하는 걸음이야.”

 그제야 재원이는 엄마를 펭귄 걸음으로부터 놓아주고는 차에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상하게 아이들은 엄마 말씀보다 선생님 말씀을 더 잘 들을 때가 가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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