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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타리나 Dec 27. 2024

산타할아버지, 똑똑하게 해주세요.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특수학급에 보조인력으로 사회복무요원 1명이 배치되어 있다. 예술대 디자인과에 재학하다가 군복무를 위해 지금은 휴학을 하고 우리 학교에 공익으로 배치된 사람이다. 전공이 디자인이어서 그런지 옷도 간지나게 잘 입고 얼굴도 잘생겼다. 이름은 박선규. 아이들은 ‘선규샘’이라고 부른다.

 우리 반의 유일한 여학생인 은서가 선규샘을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 선규샘이 우리 반에 처음 배치된 것은 지난 4월 초였고 그렇지 않아도 사춘기에 접어든 은서가 핑크빛 감정을 느낄까봐서 내가 선규샘한테 행동을 각별하게 조심하도록 주의를 주었던 터였다. 잘생긴 얼굴 못지않게 인성도 잘생긴 선규샘은 올바르게 행동하려고 조심하는 것 같았고 나도 매우 세심하게 관찰하고 관리해 오던 중이었다.

 우리 반에서 다소 과격한 성향을 가진 현준이가 은서를 넘어뜨리려고 하거나 책상을 세게 미는 등의 행동을 선규샘이 지도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은서는 자기를 보호해주는 선규샘을 보고 듬직하게 느끼는 것 같더니 그만 반해 버린 것이다. 은서의 그런 감정을 은서 어머니께서도 알아채시고 걱정하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은서가 제대로 된 생애주기 발달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말씀을 드렸고 주의 깊게 살펴보고 지도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점심식사를 할 때 은서는 자꾸만 선규샘 옆자리를 고집하였고 선규샘이 다른 일로 그냥 웃기만 하여도 자기를 보고 웃는다면서 좋아하였다. 그러다가 한 번은 무슨 대화 끝에 선규샘이 “나는 똑똑한 사람이 좋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은서를 두고 한 말이 전혀 아니었고 그저 자기의 가치관을 말했을 뿐임을 나도 알고 선규샘 본인도 안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발생해 버렸다. 그 후로 은서는 교실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똑똑’하고 노크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은서의 의도를 모르고 “은서야, 갑자기 왜 노크를 하는 거야? 우리 교실이니까 맘대로 들어오고 나가도 돼.”라고 했더니 “선규샘은 똑똑하면 좋대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은서는 ‘똑똑’을 그 ‘똑똑’으로 이해해 버린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똑똑의 개념을 설명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교실에 들어올 때, 나갈 때 노크를 열심히 하면서 내 걱정을 키우는 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화요일 2교시에 크리스마스 트리에 소원을 적는 카드를 만들어 붙이는 활동을 하게 되었다. 글씨를 쓸 줄 아는 학생은 메리크리스마스 등의 글자를 쓰고, 글씨 쓰는 것이 어려운 학생은 눈사람 그림을 그리는 등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하였다.

 은서는 글씨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는 만능 재주꾼이다. 색종이를 접어 카드를 꾸미고, 색칠을 하고, 글씨도 써서 내게 가져왔다. 각지게 접어진 카드를 펴자 참으로 은서다운 멋지고 구체적인 소원이 드러나 있다.

 “산타 할아버지 똑똑하게 해주세요.”라는 문장과 함께 손가락으로 문을 두드리는 그림!

 아이는 자기 소원을 참으로 절실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담아 내었다,

 그래, 은서야! 사춘기라는 아름다우면서도 아프고 혹독한 시간을 잘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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