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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태 Oct 29. 2024

마음

마음을 비우니 생각으로 가득 차 보이지 않던 모든 것들이 오롯이 보인다.

마음이 나라는 생각이 분별심으로 이어지고, 분별심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원망, 분노와 시기를 낳고, 결국은 고통으로 이어가게 되었으니...



근데, 돌아 놓고 보면 많은 의문이 든다.


'나'란게 무엇인가?

'몸뚱이'와 보이지 않는 '정신'?

그럼 '마음'은 어디 있나? '뇌'? 가슴으로 표현되는 '심장'?


몸뚱아리는 물, 불, 흙, 공기의 힘을 빌어 생성되었다가,

때가 다하면 다시 물, 불, 흙과 공기로 분해되어 돌아간다.

뇌, 심장 또한 물질적인 부분은 몸뚱이의 일부일 뿐이요, 보이지 않는 부분은 5감을 통해 센싱 된 것들에 대해 뇌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허상 또는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심장에서 펌프질을 멈춰 뇌의 작동이 멈추면 죽음이라 하고,

더 이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고깃덩이만 남게 되지 않는가?


이리 놓고 보면 나란 어디에도 없다. 처음부터 없었다.

뇌를 통한 화학반응으로 나란 특별한 존재가 있다는 착각, 허상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결국 인연, 연기에 따른 생멸을 거듭해 온 현재의 그 무엇일 뿐,

나라고 고집할 만한 특별한, 고유한 존재는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결국 윤회란, 이어져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일 뿐,

다시 되풀이될 수 있는 고유한 존재가 있음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윤회란 진화이지 원시로의 회귀를 뜻함은 아니라 보인다.


소리를 듣는 자가 나인가?

그리보면, 나란 '듣는다는 생각'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소리는 누군가가 쳐서 난 것일까? 부딪친 무엇으로 인해 생긴 걸까? 들어서 느낀 것일까?

듣는 것, 치는 것과 소리 자체는 그냥 하나의 상태일 뿐이다.

그냥 생겼다 사라지고 만 그런 하나로서의 소리.

어느 하나가 아니라 상호 상관, 인과 연에 따라 어우러져 나온 이 순간의 상태이자 비상태라고 하던가?




이렇듯 마음이 온갖 잡생각들로 가득 찼으니, 지금 내 앞에 일어나고 있는 그 어떤 것도 보일리 없다.

마음자리가 허상으로 가득 차 지금 여기 이 순간 실재하는 대상들을 알아차릴 겨를이 없다고나 할까?


마음이 내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티 없이 맑은 거울처럼, 잔잔한 호수처럼, 머무름 없이 지금 여기를 오가는 모든 존재와 느낌들이 매임 없이 오갈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알아차림이라 했다.


비워야 알아차릴 수 있음이다.

알아차려야 지금 이 순간을 바라볼 수 있음이다.

그래서 집착으로 인해 스스로를 구속하고 고통받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걸음이 바로 알아차림, 정념(正念, Mindfulness)이라 한 듯하다.


* 사진: 성파 종정스님 <선예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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