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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MIT 왔는데 집에 갈래? (1)

MIT 기계공학과 박사자격시험 (Qual) 후기 (1)

by 묵돌선우


이번 주 화요일에 박사자격시험(Qualifying Exam, 이하 퀄)이 끝났다. 가장 기억이 생생할 때 (1) MIT 기계공학과 퀄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리고 (2) 어떻게 퀄을 준비했는지 글로써 남겨보고자 한다.


1. 악명 높은 MIT 기계공학과 퀄(Qual)


퀄은 주로 미국 대학원에서 박사 1학년에서 2학년 사이에 보게 되는 시험을 말한다. 박사과정생(Ph.D. Student)들은 이 시험을 통과해야만 Ph.D. Candidate(딱히 직역할만한 단어가 없다. 박사후보생?)이 되어 본격적으로 졸업논문을 쓰기 위한 연구를 시작할 수 있다. 만약 떨어진다면? 집에 가야 한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라. 대학원도 사람 사는 곳인데 한 번 떨어졌다고 얄짤없이 학생을 자르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학과와 지도교수님 입장에서도 내 학생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속해있는 MIT 기계공학과(MechE)는 MIT 내에서도 퀄이 빡세기로 유명하다. 전자공학 및 컴퓨터학과(EECS)나 항공우주공학과(AeroAstro)의 경우는 퀄이 사라지고 요구하는 수업들을 이수하여 기준 학점을 넘기면 된다. 다른 학과의 경우, 리서치 퀄(Research Qual)이라 하여, 본인이 해오던 연구를 해당 학과 교수님들 앞에서 발표해서 일정 기준 이상을 만족시키면 된다고 알고 있다.


반면에, MIT 기계공학과는 서브젝트 퀄(Subject Qual)리서치 퀄(Research Qual)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서브젝트 퀄에선 기계과 대학원 과목 중 3과목을 선택하여 각 과목마다 30분간 문제를 읽고 푼 다음에 해당 과목 담당 교수님들 앞에서 30분간 어떻게 문제를 풀었는지 설명해야 한다. 적어도 2과목에서 10점 만점에 7점을 받아야 통과할 수 있다. 리서치 퀄은 위에서 말했듯이 본인이 해왔던 연구를 25분간 발표하고 20분 동안 학과 교수님들이 하는 질문에 적절히 답변해야 통과할 수 있다.


(여담으로 TSMC의 창업자인 모리스 창(Morris Chang)이 MIT 기계공학과 퀄을 떨어져서 MIT에서 학업을 지속하지 못하고 스탠포드에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다는 소문이 있다. 어떤 평행세계에선 모리스 창이 MIT를 졸업해서 TSMC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ㅋㅋㅋ)


MIT 기계공학과 퀄 합격률 통계


이렇게 말하니 퀄 통과가 상당히 쉽지 않아 보이지만, 막상 까보면 그렇지는 않다. 기계공학과의 경우 첫 번째 퀄의 통과율은 약 80% 정도이고 두 번째 퀄까지 통과율을 다 합치면 총 96% 정도가 된다. 의사 국가고시 같달까. 준비를 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다 통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준비를 아예 안 할 수도 없는 그런 시험인 것이다.


2. 퀄 준비


기계공학과답게 4대 역학-고체역학, 유체역학, 열역학, 동역학-을 필두로 하여 바이오시스템, 나노공정, 제조 공정, 광학 등 다양한 과목들을 응시할 수 있었다. 나의 경우, 서브젝트 퀄에서 연구 분야와 '그나마' 관련이 있는 계산공학(Computational Engineering), 동역학(Dynamics)과 확률적 시스템(Stochastic System) 과목을 응시했고, 리서치 퀄에선 작년에 학회에서 사용한 슬라이드를 학과 교수님들의 입맛에 맞게 수정하여 발표하였다.


나는 총 한 달 반 정도 퀄 준비를 했다. 다음 편에 후술 하겠지만, 어차피 통과만 하면 되는 시험이기 때문에 여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연구에 지장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학생들의 경우 3달 이상 퀄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었다. 해당 과목들의 수업들을 수강했고 성적도 어느 정도 잘 받았다면 퀄에 2달 이상을 투자하는 것은 여러모로 손해라고 생각했다. 또한, 나를 포함한 아시아권(한국, 중국, 아시아계 미국인 등)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시험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2-1. 서브젝트 퀄 (Subject Qual)


열공의 흔적


12월 중순에 종강을 하고 나서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퀄 준비를 하기 전에 막판 스퍼트를 내기 위해서 여행도 다녀오고 각 과목들의 기본적인 개념을 복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선 서브젝트 퀄의 경우, 30분간 문제를 풀고 교수님들 앞에서 발표해야 하기 때문에 퀄을 보는 기계공학과 동기들과 함께 각 과목마다 모이는 시간을 정해서 주어진 시간 동안 기출문제를 풀고 순서대로 칠판에 어떻게 문제를 풀었는지 발표를 했다. 발표를 하지 않는 학생들은 교수처럼 자리에 앉아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연습을 했다. 문제풀이가 끝나면 서로 잘 모르는 개념이나 어떻게 답변했어야 좋았을지 복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동기들끼리 미팅이 끝나면 나는 개인적으로 연구실에 남아서 강의노트와 수업에서 다루었던 문제들을 복습하였다. 퀄 과목들의 수준이 주로 학부생 또는 대학원 1학년 수준이라 어려워서 풀 수 없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개념들을 어떻게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고 응용하는지가 중요했었다. 석사 때 나는 제어 및 예측 이론(Control and Estimation Theory)을 연구했었고 학부 시절 F.C. Park 교수님의 '동역학'과 '로봇공학입문' 수업을 수강하며 강하게 자랐기 때문에 별 걱정이 없었다.


2-2. 리서치 퀄 (Research Qual)


리서치 퀄 첫 번째 슬라이드 (민감 정보는 삭제!)


처음 리서치 퀄을 준비할 때 석사 때 했던 연구와 박사과정 때 했던 연구를 모두 합쳐서 발표를 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품고 있었다. 12월 말에 리서치 퀄 슬라이드를 미리 만들어 한국인 기계공학과 선배들 앞에서 연습할 기회가 있었는데, 25분이란 시간 안에 연구 동기부터 연구에서 사용되는 개념들을 모두 설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국 내 앞의 있는 교수님들에게 내 연구를 이해시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아야 했다. 내 연구분야를 모든 교수님이 알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학부 4학년 또는 석사 1학년 수준 정도의 관객에게 내 연구를 이해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래서 결국 작년에 했던 12분짜리 학회 발표를 수정하여 25분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여 슬라이드를 다시 만들었다. 일주일에 한두 시간씩 혼자 발표 연습을 했고, 중간에 서브젝트 퀄을 준비했던 친구들과 한국인 기계공학과 선배님들로부터 내 발표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학회에서 구두 발표(Oral Presentation)로 선정된 연구였기 때문에 연구의 퀄리티가 부족해서 떨어질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퀄 준비과정은 이 정도면 충분히 서술한 것 같다. 다음 글에서는 퀄을 준비하면서 느낀 점과 경험한 개인적인 일들에 대해서 서술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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