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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세무민(惑世誣民)

답정너

by 유진 박성민

국가의 어떤 정책이든 타당하고 합리적 데이터에 근거하여 국가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국책 연구에서 ‘답정너’로 연구 결과를 요구하거나 정부의 입맛에 맞는 연구를 해주어 탈이 난 사례는 세월이 지난 후 밝혀진 관련 기사들을 통해 자주 접할 수 있다. 석박사 과정생으로 공부할 때 계속 벗어나려고 했던 한계는 연구자는 연구 결과를 궁금해하며 탐구하는 것이지, 답을 정해 놓고 연구를 해서는 안된다는 꾸준한 훈련이었다.


그럼에도 간혹 어떤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 담당자는 포함되어야 할 연구의 답을 넌지시 제안하거나, 전체 연구 결과에서 해당 정부의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이해관계 당사자 대상 의견 조사 결과를 무시하고 정책과 반대 방향으로 나온 연구 결과를 넘어선 상상력을 보태라는 의중(궤변?)을 내비치는 경우도 있다. 부처에서 정책으로 정해진 결론을 연구에 반영하도록 종용하는 것이다.


연구의 진행 상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이견이 있을 경우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이해당사자가 그럴거면 연구를 그만해야 한다고 하면, 해당 부처에 소속된 공무원은 해당 부처 수장의 안위까지 걱정하기도 한다. 세상에 이런 코미디가 어디있나? 그럼 내 인생의 여름 방학까지 반납하며 연구한 나는 해당 부처의 수장이 아웃되지 않도록 막기 위해 버퍼로 쓰였다는 것인가? 인생의 반백을 넘어서 느끼는 것은 순리를 어긋난 결정은 세상을 어지럽히거나 타인을 해롭게 할 수 있기에 늘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인간이 되자는 다짐으로 연구 수행 결과 그대로의 가치를 존중하고 준수한다. 이건 내 삶의 기준이고 나와의 약속이다.



교사 시절 여름방학을 반납하고 특수학교 유치원 교육과정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작업을 거의 마칠즈음에서야 알게 된 사실에 동료 교사들이 모두 분개한 적이 있다. 교장선생님이 참여하시는 연구에 대해 유치원 부장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었는데 유치원 부장은 방학 내내 유치원 교사들을 불러서 자신이 혼자 만들어내기 어려운 작업을 마치 교장선생님의 지시인 것처럼 지어내어 경험을 기반으로 아이디어를 짜내도록 일을 시킨 것이었다.


이 일의 선후나 자잘못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여러달 후 연구기관에 방문하였을 때 직원에게 해당 연구물이 보이지 않아 어디 있는지 물어보니 오히려 내게 상황을 몰랐냐면서 그 연구보고서가 나왔지만 이견이 있는 교수들의 반발로 전국 배포는 안하기로 하였단다. 그럼 그렇지 순수한 방법으로 교사들에게 부탁을 한 것도 아니고, 그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 교장선생님이 그 연구를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했는데 역시 결과는 자명하였다. 무엇보다 분명한 사실은 거짓으로 교장의 위계에 의한 지시이며 팀으로 이루어야 할 과제라고 꾸며내어 방학에 부장이 출근하기 편한 날에 동료교사들을 나오도록 것이었다. 방학을 반납하고 열심히 만든 개미들이 있었지만 선한 의도로 행한 일이 아니기에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본다.


이처럼 때로는 누군가의 사익을 돕기 위해 개미들은 영문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뛴다. 그것도 방학을 반납하면서까지 말이다. 그 부장교사는 진실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일종의 리플리증후군 같이 행동했었는데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서 결국 자기 꾀에 넘어가 야반도주나 다름없이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한참 후에 전해들었다.


대통령 공약으로 수행하는 정책을 진행할 때 연구기관은 정부 산하 기관이 아닌 독립된 기관에서 수행하는 것이 보다 객관적인 연구 결과를 담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색깔론과 관계 없는 입장에서 보면 정부 산하 기관의 연구물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답정너이고, 나를 포함하여 누구나 자유롭지 않겠지만 일단 자신의 연구물에 대해서는 궤변에 능통하다.


유수한 국내외 대학에서 박사를 받은 연구진들이 소신도 객관적 데이터도 무시하는 하수인으로 전락한 실체를 마주할 때 애처롭기만 한 건 나의 만용일까. 그들의 지혜로운 생존방식일까. 연구데이터를 결과 그대로 보고서로 내겠다고 하였을 때 별쇄본으로 가서 혼자 이름을 내라고 했던 국책 기관과 공동연구진의 집단 린치를 당했지만 그래도 연구자라고 자부하는 집단의 연구 윤리나 도적적 해이는 세간에 알려진 지명도와 한참 멀어 보였다.


이런 곳에서 합세해야 출세하는 것인데 나는 쓸데 없이 올곧은 척하는 사회 부적응자인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간혹 진실된 연구 경험이 없어서 연구를 형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부처간 또는 부처 내 부서간 장벽으로 교류와 협력이 없는 이유인지, 부처 수장의 성과를 통해 후광효과를 보려는 승진 대상자들의 과잉 충성과 승진 기대때문으로 답정너를 넌지시 종용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연구자로써 윤리 지침을 지키는 것이 심신이 편안하다는 점에서 오늘도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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