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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진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

by 유진 박성민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천륜이다.


우리나라의 엄마들은 각자의 종교가 있어도

공부 잘하던 자식이 유명 대학을 그만 두고 음악을 해서

하도 답답하여 용하다는 어디에 점을 보러 가니까

자식의 운명이 공대가 아닌 예술이어서라고 했단다.


아주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지인도

시장에 갔는데 포목집 아줌마가 관상을 잘본다며

자기 얼굴을 보고 남편복은 있는데 자식복이 없어

앞으로 자식이 잘 안되니 부부끼리 잘 살라고 했다는 말이 점점 맞는다는 등


외모상, 종교상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 부모들이

애니미즘, 토테미즘, 샤머니즘을 혼재한 듯한 인식으로

자식의 앞날을 이야기하곤 한다.


자녀가 뜻대로 되지 않는절대적 원인을 부모와 가정으로만 국한할 수는 없지만

부모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제 삼자의 입장으로 보면

수학과 음악에 재능이 많은 자식에게 기초학문인 수학과 음악 전공이 아닌,

공대를 가야 앞으로 먹고 살기 좋을 거라는 조언을 한 부모가 있었다.

삼수 끝에 국립대학에 합격하였지만 지방대학이라서 안다니고 사수, 오수를 계속하는 자식에게

어릴적 명문대학과 수도권대학이 최고라는 인식을 심어준 교수 부부가 있었다.


부모 컨설팅 과정에서 형제자매를 키울 때

전형적 발달의 자녀와 비전형 발달의 자녀를 양육하는 태도가 다른 경우

자녀에게 일치된 양육의 지향점과 양육관을 갖는 것이 왜 중요한지

부모 스스로 깨닫게 하는 과정을 담고자 노력한다.


장애가 있는 자녀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여

유아기에 형성되어야 할 기본적인 생활습관(수면, 착탈의, 용변, 식습관)이 잘못되어도 성인이 될 때까지 허용하고, 이와 대조적으로 전형적 발달의 자녀에게는 한없이 높은 기대를 요구하여심리적으로 압박과 높은 책임감으로 인해 자신의 역량과 수준에 맞지 않는 업무라는 섣부른 판단에

어렵사리 들어간 직장을 꾸준히 다니지 못하기도 한다.


살아갈 길은 수천, 수만가지의 여러 길이 있다.

단지 내가 아는 길이 제한적일 뿐이다.

부모가 경험한 길로만 자녀의 진로를 안내해서는 안된다.

자녀는 부모의 조언을 참고할 수 있지만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부모가 원하는 길이 곧 성공 보장이라는 공식도 절대적이지 않다.

이미 선택하고 결정한 진로로 살아가면서 삶이 어떻게 변화될지도 모른다.

심지어 부모 유고시 자녀가 어떻게 살아갈지도 알 수 없다.


가장이 실직하였지만, 화이트칼라라서 움직이는 택배 일은 못한다고 하는 성인들이 있다.

체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성장 과정에서 직업의 귀천에 귀속된 경우

자존감을 사회적 체면으로만 평가하여 본인의 생존뿐 아니라 가족의 생존이 위협받기도 한다.


자녀들 중에서는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본인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는데도

유학비를 꾸준히 보내줄 것을 기대하고, 부모는 그들의 노후설계가 중요하여

더 이상 자녀에게 학비를 보태줄 수 없다고 하는 상반된 의견으로 갈등을 겪기도 한다.


앞으로 자식이 어떻게 살아갈지는 알 수 없고,

나의 미래도 알 수 없지만

자녀 양육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가 이 세상에 없어도 자녀에게 살아갈 힘을 주면 될 것 같다.

심지어 그 힘이 없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낼 것이라 믿어주면 될 것 같다.

그래야 천륜의 굴레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편안하고 자유로워진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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