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사과는 일상과 관계의 보약
우리는 한번즘 절대 사과하지 않는 사람에게 학을 뗀 적이 있다.
한두번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기이하다 싶을 정도로 사과를 하지 않을 때
절대 사과를 하지 않는 사람의 원인을 분석하게 된다.
대체로 사과를 자기 존재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자존감이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경우 실수 인정은 정체성 부정이라고 생각하거나 회피하는 방식을 취한다.
사과를 패배로 인식하고 배운 경우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거나 화제를 돌린다.
자아 중심성으로 타인의 감정보다 자신을 우선시하는 공감 능력 부족이나 감정조절의 어려움을 보인다.
절대 사과하지 못하는 사람의 문제는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반복하게 된다는 점이다.
"내가 좀 부족한 사람입니다"와 같은 애매한 표현으로 책임을 희석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사람에게 오히려 자기가 힘든 처지인데 그렇게 말하여 더 힘들다고 하거나, 너의 그런 표현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을 수 있다며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그런데 왜 이런 특성이 생길까?
어린 시절 실수를 인정하면 혼난 경험이 많으면 사과 자체를 생존에 위험한 행동으로 인식하게 되어서이고,
권위적 환경에서 사과를 약자의 행동으로 여기고, 자기 방어를 위해 끝까지 버티는 것이 효과적이었다는 경험에 의해서일 수도 있다 .
몇 년 전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사안에서
모교원단체에 소속된 현장의 제자 선생님(우리반 실습지도학생이었는데 교사가 된)이 지원 요청을 하였다.
그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내게 있다며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일면식 없는 교사가 아동 학대 사건으로 검찰에 송치되었는데 사안의 신고자인 부모가 나와 친분이 있으니
검찰까지 간 것은 학대 혐의가 있어서일텐데 구형 정도를 가늠할 수 없을뿐 아니라, 감형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신고자의 탄원서(추후에 알게 되었지만 처벌불원서도 있음)를 받아 감형에 도움을 주라는 요청이었다.
일면식도 모르는 교사를 돕고 싶어하는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 교사인가.
당시 아이 어머니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고 안정된 상태라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그 마음 착한 교사의 요청으로 어려움에 처한 교사를 지인인 교사의 도움으로 찾아 사과 의사를 물었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내게 연락 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소통 과정에서 대면 사과는 안하겠다고 하여, 그럼 부모와의 SNS가 살아 있으니 글로 올려 사과를 하는 방식을 제안하였다.
그 제안을 수락한 교사에게서 도착한 글은 사과문이 아니라 변명문이었다.
사과의 뜻이 담겼지만 내용은 부족한 특성을 가진 아이때문이었다.
그 교사가 처한 어려움의 출발점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평소 아이의 특성과 행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투영이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지인인 교사의 간절한 부탁이 있었기에 어머니의 마음을 풀어주려면 제가 부족한 필력이지만 조금 다듬어도 되냐는 허락을 구했다. 허락을 받아 우렁각시의 마음으로 사과문으로 약간의 수정을 하여 드렸다.내게 중재를 요청했던 교사왈 검찰 송치가 되면 신고자가 철회해도 소용이 없지만, 그럼에도 부모에게 직접 선처하도록 요청하여 어려움에 처한 교사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의도였다. 교사의 허락에 의해 작성한 수정본을 사용할지 안할지는 어려움에 처한 교사가 결정하고, 그 부모가 선처한다고 해도 효력 여부는 검찰의 몫일 것이라고 한계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설명했다.
다음날 어려움에 처한 교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이 없고, 선임한 변호사가 부모에게 사과하면 교사가 잘못을 인정하는 거라고 하여 사과할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당연히 그럴 수 있고, 그 또한 선생님의 결정이니 존중한다고 하였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사과를 못한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사과를 못하는 이유는 욕심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욕심은 곧 이해타산이다. 소송이 진행 중이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어려움에 처한 교사에게 마지막으로 말씀드린 것은 세상을 살면서 함께 자녀를 키우는 부모된 마음으로 만약 학생에게 미안한 일이 있다면, 미안하다 사과하면 남은 교직 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편치 않겠냐고 전하였다.
정보나 현상을 이해하는 인지 양식을 장독립형과 장의존형으로 설명하지만 최근 장의존형은 장민감형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인지양식을 학습에 국한하지 않고 두가지 인지양식과 사과 행동을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다음의 두가지를 가정할 수 있다. 장의존형은 사회적 민감성이 높고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기 때문에, 갈등 사황에서 사과를 통해 관계를 회복하려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한편, 외부평가에 민감하고 자존감이 낮은 경우 자신이 부정당할까 두려워 사과를 회피할 수도 있다. 장독립형은 자기 중심적이고 분석적 사고를 하여 타인의 감정보다 사실과 논리에 집중한다. 실수를 인정하더라도 감정적 표현에 서툴거나 사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경우 사과를 불필요한 감정적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틀릴 수 있고,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관계를 유지하려면 사과할 일은 사과해야 한다.
내면이 단단한 사람은 사과할 일에 사과를 잘 한다. 그 이유는 관계를 잘 유지하거나 회복하겠다는 성숙한 성찰이 자리잡고 있어서다.
사과를 못하는 사람과 건강하게 소통하는 전략은 감정적 거리 유지하기, 사실 중심의 대화, 경계 설정, 감정적 지지보다 현실적 대응으로 내가 상처받지 않도록 내 감정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다.
어떤 사람은 말로만 이기려하지 그 말을 한 의도와 맥락을 보지 못한다.
어려움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일면식도 없으면서 같은 교원단체에 소속된 어려움에 처한 교사를 도와주라고 내게 연락한 교사는 자폐성장애인 조카 덕분에 특수교사가 된 선생님이다. 나에게 어려움에 처한 교사를 수소문하여 연결해 준 교사는 직업이 있지만 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다가 늦은 나이에 대학에 편입하여 특수교사가 된 선생님이다. 나는 결혼을 하면서 청각장애가 있는 조카를 얻게 되었다. 직장을 다니며 독립한 조카는 우연히 예비특수교사인 제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제자들이 어떤 특수교사가 되기를 바라는지 물어보았을 때 '학생들의 말을 경청하고, 사랑으로 대하는 선생님이 되기를 바란다'는 덕담을 하였다.
사건에는 서사(narrative)가 있다.
시간적 흐름, 인물과의 갈등, 의미와 메시지가 담겨 있다.
누군가에 의해 어려움이 기회가 되고, 어려움이 더 큰 난관이 되기도 한다.
인생살이에 답이 없지만 사과를 하려면 나를 이해해야 한다.
어릴적 나는 어떻게 자랐고,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은
나의 경험을 시간적 흐름, 감정으로 엮은 내러티브다.
그래서 나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고 주관적인 해석이 가미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