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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다'고 하는 말

과연 칭찬일까

by 유진 박성민

누군가의 성과를 보고 타인이 ‘너는 참 운이 좋다’고 하는 말은 칭찬일까.

엄격한 양과 질의 평가 기준이 마련되어 있는 평가 결과와 관련하여

타인이 “축하해! 대단해”라고 하면

누군가 밤을 지새며 골똘하고, 잠을 줄이며 노력한 높은 평가 결과이지만

당사자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라고 겸양 또는 의전용 멘트로 표현할 수 있다.


반면 누군가의 성과에 대해 타인이 매번 “너는 참 운이 좋아” 라고 하면 기분이 어떨까.

또는 “누가 뿌린 씨앗을 네가 추수 잘했네”라고 하면 기분이 어떨까.

인간은 아무리 욕망이 많은 존재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성과를 대하는 데 있어

온 마음으로 칭찬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칭찬은 아니어도 인정하는 것조차 어려운 것일까.

그것이 가족, 친인척, 직장 동료일 때조차 어려운 것은 왜일까.


이때 타인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고 사회적 맥락에 적절히 반응하는 능력을 ‘사회적 인지능력’이라고 한다. 사회적 인지 능력 중 마음이론(Theory of Mind)에서는 조망수용 능력(perspective taking)에 근거한 마음 이해 능력을 타인의 감정, 생각, 믿음, 바람 등을 인식하는 능력으로 보고 있다. 자폐성장애인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보인다고 하지만, 전형적 발달을 보이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처럼 정도의 차이일 뿐 마음 이해 능력에 차이가 있다.


상대의 잘못을 지적할 때도 마찬가지다.

모임에 온 사람들에게 70세 어른이 80세 어른을 소개할 때

예로 ‘박자 성자 민자 어른’이라고 소개할 때,

지식 사고에 갇힌 나와 갑장인 오십대 중반의 남자는

“성씨에는 박자라고 쓰지 않죠. 그럴 때는 박. 성자. 민자라고 하는 거에요”라고

20대부터 80대가 모인 자리에서

50대가 70세 어른의 실수를 지적하고 가르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렇지 않아도 치매는 아닌가 걱정하던 70세 어른의 고백을 좀 전에 같이 듣고도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을지 아연실색하게 된다. 어른의 실수를 알아차렸어도 모른척 넘어가기가 그렇게 힘들까.


고릴라 실험에서 입증된 바와 같이 인간이 눈으로 본 것이 전부가 아닌 세상에서

지식주의 사고에 갇힌 경우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틀린 것을 본인이 꼭 짚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NISE–K·ABS(적응행동검사)는 2-18세에게 적용 가능한 검사로 개념적 지능(개념적 기술), 사회적 지능(사회적 기술), 실제적 지능 (실제적 기술)을 측정하는데 검사 적용 연령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위에서 어른에게 결례를 범한 사람은 타인과의 상호작용, 사회적 책임감, 자기표현, 타인 인식, 대인관계 기술 등 사회생활에 필요한 능력인 사회적 지능이 낮을 것으로 보인다.


자녀 양육과 관련하여 솔루션에서 만나는 부모님 중 지식 만능주의에 갇힌 부모는 개념적 지능을 높이는데 지대한 관심과 열(~수학 문제집, 논술 작성 능력 등)을 올리지만, 정작 대인관계에서의 처신이나 의사소통 방법을 안내하는 것에는 소홀히 한다. 하지만 IQ는 학업 성취도와 관련이 높지 않고, 최근 학업성취도가 높아도 대인관계에 실패하는 이유가 ‘공감 능력‘의 부족에서라는 정서지능의 중요성에도 양육 과정에서 인간의 그 중요한 ‘정서’를 간과한다.


정서가 행동을 결정하고, 동기와 자발성에 관여하기 때문에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매우 중요하다.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은 정서지능을 자기 인식, 자기 관리, 사회적 인식(공감 포함), 관계 관리의 네 가지 구성 요소로 정의했으며, 공감은 '사회적 인식'의 핵심 능력이다.

사회적 인식이란 내가 이렇게 말하면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대인관계에서 상대에 대한 존중을 기초로 어느 지점에 감사 인사를 할지, 양보할지, 주장할지, 사과할지, 칭찬할지 등을 판단할 때 인간은 진화론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게 되어 있지만, 이상하게도 대인관계에서 자주 일명 ‘똥 볼’을 넣고는 자기가 한 수 가르쳐주었다는 과시욕에 매몰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격식을 차린 이름을 지칭할 때의 방식을 말하고, 지식을 넓혀주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때로는 상황에 따라서, 사실을 말하는 것이 어린 사람이 나이 든 사람을 가르치게 되는 장면이 되어 보는 이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거나 모임의 분위기를 서늘하게 만들기도 한다.

즉, 지식에 갇혀 맥락을 놓친다는 것이다.

20대는 그 장면을 어떻게 이해하고 모델링할까.


‘너는 참 운이 좋다’는 성과에 대한 칭찬이 상대의 꾸준한 노력을 폄훼하는(깍아 내리는) 말이 될 수 있다는 맥락을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을 경우, 자칫 나는 늘 상대를 평가할 권한이 있고, 상대는 평가를 당하는 입장에만 놓일 수 있다는 자기 권위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양육 컨설팅에서 자주 언급되는 자녀의 행동 지원과 관련하여

부모들은 간혹 자기 방식대로 자녀를 통제하려고 하지만

자녀가 행동 통제를 당하는 것인지, 자녀 스스로 행동 통제해야 하는 것인지의 관점에서 보면

자녀가 아닌, 부모의 자기 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한 삶의 과제가 된다.


칭찬도 사회인지 능력과 관련이 있다.

칭찬도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회․정서적 공감 능력과 상호 반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자녀에게 ‘진심을 다해서 디테일하게, 때로는 과하게, 매번 다른 표현으로 칭찬하라’고 전한다.

칭찬도 고도의 사회적 인지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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