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키우며 부모 됨을 배운다.
아이 둘이 초등학교 1학년과 3학년일 때 직장일로 분주하던 나는 학교를 마치고 피아노 학원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퇴근하였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큰 아이가 물어본다.
엄마 꿈은 무엇이었냐고.
초등학교 저학년의 꿈은 미래 직업을 의미하기에 ‘선생님’이라고 대답하였다.
교사에서 교육행정 업무를 하는 교육전문직으로 전직을 한터라 아이가 “그럼 꿈을 이룬거네요.” 라고 하며 “그럼 그다음 꿈은 뭐에요?”라고 묻는다. 아이의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나도 모르게 당황하였다. 열심히 살아오며 교육 현장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자고 막연히 생각하였지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사 공부를 하며 교사로서 교육현장을 변화시켜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큰아이 덕분에 새로운 꿈을 생각해 봐야겠다는 다짐이 생겨 그날 이후로 나는 꿈 너머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큰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 하루는 열심히 발표 자료를 만들고 있었다.
모둠이 발표하는 과제인데 혼자서 다 만들고 있어서
공동의 과제인데 친구들과 협의하지 않고 만들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친구들이랑 협의를 했고, 발표 자료 만들기에 참여를 못해서 혼자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큰 아이가 박사과정 때 독박 발표 준비를 하는 나랑 똑같을까.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발표는 친구가 하는 것으로 표지에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발표의 기본은 자신만의 논리(logic)를 기반으로 설명해야 하기에
발표자가 자료를 함께 만들어야 발표할 때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설명할 수 있지 않겠냐는 나의 질문에 친구는 발표를 잘하고, 자신은 발표 자료(ppt)를 잘 만들어서 하는 일이란다.
각자 잘하는 장점으로 서로의 역할을 분담한 것이라는 것이다.
큰아이를 통해 오히려 덕을 배웠다.
나는 부끄러웠다. 아이보다도 마음 그릇이 더 작으니 말이다.
문득 마음밭이 한없이 작던 박사과정생 시절이 떠올랐다.
박사과정 수업에서 조별 발표 과제를 준비하면서 발표 주제와 관련 없는 논문 10편을 찾아서 던져주고(정말로 내게 던져주다 싶이 했다)는 자기 할 일을 다 했다고 치부하는 박사과정생, 바쁘다는 핑계로 무임 승차하는 박사과정생인 어른들도 있었는데 중학생들의 세계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당시 나는 직장을 다니며 공부하는 파트 타임 대학원생이었기에 밤새워 발표 자료를 만들고 발표도 내가 하였다. 조별 발표라서 점수는 당연히 조원 모두 96점을 받았다. 그 당시는 이 핑계, 저핑계로 발표 자료를 함께 준비하지 않는 조원들에게 많이 화가 나서 그럴 거면 박사 공부는 왜 하냐며 속으로 푸념했지만, 주제 발표를 기획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발표를 준비하는 전 과정을 통해 해당 주제에 대한 이해는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것으로 내 머릿 속에 정리되었다는 것을 세월이 흐른 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깨우침이 있으면서도 큰아이가 준비한 자료의 발표를 누가 하는가에 목숨 걸고 있는 나를 돌아보니 모순 그 자체였다. 15년밖에 살지 않은 맑고 담대한 아이의 마음을 통해 사람을 덕으로 품는 지혜를 자녀에게 배우며 부모는 부모 됨을 갖추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