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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아나무 Sep 01. 2024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

옥타비오 파스 로사노의 <시>를 읽고


내가 보는 것과 내가 말하는 것

내가 말하는 것과 내가 침묵하는 것

내가 침묵하는 것과 내가 꿈꾸는 것

내가 꿈꾸는 것과 내가 있는 것, 그 사이

                                            -옥타비오 파스 로사노, <시>


나를 전율하게 하는 <시>를 만났다. 이토록 섬세하게 시의 존재를 말한 문장이 있던가. 

특히 마지막 말을 음미하면 '시'가 존재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그 사이'.


너무 고요해서 시인의 속이 다 들여다보일 것 같은 이 문장들을 본 순간,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다. 심호흡을 하며, 두 팔을 휘저으며 멋대로 춤을 춘다. 약간 광기 같은 이런 모습은, 닮은 생각을 만났기 때문일 것인데, 나는 이런 순간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자주 이런 광기에 들기를 기다린다. 


석양이 깃을 내리는 하늘 아래서 참 많이도 전율했었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면, 이 광기의 순간들이 얼마나 줄어들고 있는지, 나를 슬프게 한다. 그러나 이런 절창들을 만났을 때, 나는 이 감동을 함께 나눌 친구를 바로 떠올리고 옆에 있는 듯 생각을 나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친구야. 

그러면 친구가 내놓을 대답이 궁금하여 다시 안절부절못하다가, 이런 순간이 바로 '논어' 학이편 첫 줄에 나오는 그것이겠구나 생각한다. '벗이 있어 곳으로부터 오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나는 친구를 떠올리며 '그 사이'를 거닌다.

좋은 글을 만나고 좋은 풍경을 만났을 때, 그리고 가장 인간적인 어떤 삶을 만났을 때, 벗과 나눌 이야기가 한가득인 그 순간들이 나에겐 바로 시적 순간이다. 그 순간은 존재하는 것에 힘이 실리고, 그로써 마음이 환해지며, 내가 모르는 우주의 세계나 세상을 몰라도 두렵지 않고 넉넉해진다. 언제나 그리운 순간들이다. 


기다림의 친구가 없이 누군가가 혼잣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혼잣말이 아닐 것이다. 아무도 듣지 못한다 생각할지라도 듣는 대상은 사람만은 아니다. 내뱉는 순간 주위의 모든 것에게 전해지고, 또 객관화된 자기 자신에게 소통을 청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모두 '사이'에 존재하는 시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침묵하는 것과 내가 꿈꾸는 것 / 내가 꿈꾸는 것과 내가 있는 것, 그 사이'


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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