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일의 병행이 지속되면서 식욕이 떨어지고 우울증, 무기력감 등 심리적인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저혈압 때문인지 어지러움과 잦은 피로는 날 더욱 힘들게 했다. 집에 오자마자 잠시동안은 누워서 휴식을 취해야 활동이 가능했다. (출근 -> 회사 -> 퇴근 -> 육아 -> 가사 -> 수면 -> 출근) 쳇바퀴의 연속이었다.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집이든, 회사든 해야 할 일들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
이런 불안과 조급 함들이 뭐라도 계속하도록 나를 채찍질하였고, 누적된 피로로 결국 번아웃이 왔다. 매일 같이 피곤해서 모든 일에 무기력해지고, 모든 상황이 다 우울했다.
피곤함은 나에게 다가오는 아이조차 귀찮아지게 만들었다. 아이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기면서 분노와 짜증의 감정을 느꼈다. 사소한 일에도 아이한테 짜증 내고 화내고, 심해지면 소리까지 질렀다. 아이가 내 마음대로 안되니 살기가 싫었고, 나만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 또 밥 먹을 시간이네.. 밥 하기 싫다'
'시끄러워, 달래는데도 왜 울음을 안 그치는 거야?'
'시간이 몇 신데 아직도 안 자는 거야?'
마음속으로 불평과 불만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는 날이 많아졌다. 아이는 잘못이 없었다. 아이니까 우는 거고, 졸리지 않으니 안 자는 것이고 먹기 싫으니 안 먹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는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볼 여유 따윈 없었다. 오롯이 내가 지금 힘들고, 내가 지금 짜증 나있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아이에게 화풀이를 한 날이면, 잠든 아이를 보며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다.
나는 왜 이러지? 난 왜 모성애가 없을까?
나를 탓하며, 속상한 맘에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이런저런 후회들로 불면증이 심해졌고, 이로 인한 피로는 계속 중첩되어 쌓였민 갔다.
감정기복은 심해졌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나갈지 막막했다. 혼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이 감정을 남편에게 털어놓기로 결정했다.
"나 요즘 아이랑 보내는 시간이 너무 힘들어..
1시간 넘게 밥 먹여야 하는 것도 싫고, 투정 부리고 말 안 듣는 것도 싫어..
그런데 애가 문제가 아니라 이런 내가 문제 같아.. 병원이라도 가볼까?"
내 말에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집에서 분노에 찬 내 감정을 그대로 표현했고, 그때마다 남편 또한 마음속에서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는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남편은 내가 변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런 우울증을 겪는 워킹맘들이 참 많을 거야.
그런데 그렇지 않은 워킹맘들도 있어.
그러니 그 감정을 이겨내 보려고 애써보자 도와줄게."
남편은 내가 스스로 자기 합리화하는 경향이 조금 있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일하고 와서 피곤한데 난 언제 쉬지?
'새벽이라 조금 더 자야 하는데, 얘는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결국 오늘도 못 쉬었네'
내가 자주 하는 말들이었다. 나는 일하고 왔으니 쉬어야 하는데 나만 못 쉰다는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남편도 육아와 일을 함께 하고 있는데 말이다.
"몸이 힘들면 만사가 다 귀찮은 법이야.
우선 들어가서 자. 아기 잘 때 같이 자고, 운동을 조금 해보자.
네가 체력이 부족해서 피곤할 수도 있어.'
회사를 퇴근하고 아이를 씻기고, 재우고 난 뒤에서야 우리는 저녁을 먹었다. 아이가 잠이 들어야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절대 같이 잠들지 않으려고 버텼다.
아이가 잠이 들면 졸린 눈을 비비며 기어코 일어났다. 시간이 아까워 새벽 1시까지는 무조건 깨어있으려고 했다.
불면증에 새벽 3시 4시에 잠들어도, 출근을 위해서는 6시 30분에 일어났어야 했으니 체력이 남아나나....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해서 회복되지 못한 몸은 당연히 피곤했을 것이고 그 화살이 아이로 향한 것이다.
체력 관리를 해보자고 한 그날 잠자리에 일찍 들었고,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다음날, 어제의 그 감정이 조금 나아졌다. 그렇게 내 몸을 아이 사이클에 맞추기 시작했고, 일주일정도 지나니 마음이 개운해지기 시작했다. 내 몸이 변했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은 피로가 쌓인 나의 몸에서 우울감이 생겼다고 판단했고, 아이라는 존재의 상황을 바꿀 수 없으니 내가 바뀔 수 있도록 지속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남편은 힘들었구나 하며 나의 넋두리에 공감해 주는 것 대신, 내 몸의 피로해소를 위해 홍삼이나 강제운동 10분, 적정 수면시간 확보 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정답은 한숨 자는 것이었다. 운동을 해서 체력을 키우고 아이 사이클에 내 몸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전부 다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했고, 나의 남은 체력을 안분하며 아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아이가 밥을 안 먹는데 내가 그날 체력이 20% 남았다면 굳이 더 먹이려 감정소모 하지 않았다.
내 체력을 우선시하며 육아를 한 결과, 아이는 나에게 한없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존재가 되었다. 더 이상 내 시간을 갖기 위해 피곤을 쌓으며 애쓰지 않기로 했다. 졸리면 자고, 아이가 일어나면 나도 일어났다. 정 내 시간을 갖고 싶으면 아이보다 먼저 일어나 가졌다. 내 몸의 체력을 회복시키니 육아가 달라졌다.
지금 당장 내 시간이 없으면 어떤가. 아이는 하루하루 열심히 크고 있고, 1년 뒤의 나는 내 시간을 갖고 있을 것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