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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Mar 01. 2022

아들과 딸을 팝니다.

아들 딸을 자신의 피로, 살로, 심장으로 오래도록 기억하셨으면 좋겠다..

마스크에 건강과 불안을 맡기고 산 지 3년 차. 입을 가리면 필요 없는 말을 줄일 수 있을까, 상처 주는 말을 덜 하게 될까, 삐쭉거리는 입을 들키지 않게 될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 귀가 어둡고 눈이 흐릿한 어르신들이 잘 들리지 않고 입 모양도 보이지 않으니 더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천천히 말해야 한다. 어르신을 위로할 때도, 부탁을 드릴 때도, 설득을 할 때도, 맞장구를 칠 때도 이전보다 몇 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마스크만 벗으면 난 다시 젊어질 것 같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스크를 쓴 채 종일 주간보호센터에서 지내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이게 뭐 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짠한 어르신이지만 가끔 고집을 부리실 땐 그 마음이 재빨리 도망간다. 유씨 할머니 덕에 오늘 그 마음이 진작에 도망가 버렸다.


점심을 드셔야 하는데 꽁꽁 숨어 버렸다. 흰머리와 가느다란 발목은 삐쭉 보이는데 이불로 몸만 가렸다. 

“나 오늘 밥 안 먹어요. 목구멍에서 안 받아줘” 점심을 건너뛰려는 유씨 할머니는 원장님 피해 숨었는데 어찌 찾았냐며 볼멘소리를 하신다. 심장질환이 있어 항상 내 마음을 두근두근하게 하시는 분이다. 알츠하이머 치매로 사그라져 가는 기억을 붙들기 위해 매일 도를 닦게 하는 분이다. 최근 요로감염에다 위궤양까지 온갖 질병을 몸에 이고 사느라 유난히 좁은 유씨 할머니의 어깨가 사라질 듯하다.


“할머니 안 드시면 저도 안 먹을래요” 평소 존경하는 원장이 나 때문에 밥을 굶는다는데 벌떡 일어나실 줄 알았지만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더 확실한 설득이 필요하다. 어르신들은 치매 외에도 고혈압, 당뇨, 관절염, 시력과 청력 저하는 기본이다. 넘어짐으로 인한 골절, 심장질환 등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질병을 연세만큼 이고 살아오셨다. 그래서 드시는 약도 종류와 그 양이 대단하다. 약만으로도 배가 부를 것 같다. 약 빨로 산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약 없이 하루 버티기가 힘드시다.


유씨 할머니도 약빨로 산다. 특히 심장질환이 있어 하루라도 약을 거르면 안 된다. 빈 속에 약을 먹으면 속이 뒤집어진다. 얼마 전에도 유씨 할머니는 속이 뒤집어져서 2주간 고생했다. 그런 할머니가 밥을 안 드신다니 내 속이 먼저 뒤집혔다. 달램도 부탁도 엄포도 안 통하니 이제 최후의 방법, 아들을 팔 때가 왔다.


“엄마가 밥 안 드시고 약도 못 드시면 아들 마음이 어떨까요?”

지금 네가 사랑하는 아들을 꺼내부렀냐... 그니까 역린을 건드렸다 이거지... 이불로 꽁꽁 싸맨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나를 쳐다보신다. 센터 어르신들은 아들들을 특히 사랑하신다. 딸들처럼 살뜰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투박하게나마 사랑 표현도 못하는 아들이지만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눈가에 생기가, 얼굴에 화색이 돈다. 여기서는 아들 없으면 서러워서 못 산다.


“우리 할머니가 그렇게 사랑하는 아들, 속상하고 걱정되어서 회사도 못 나가면 어떡해요”

결정타를 날려버린다. 아들이 나 때문에 속상하다고? 돈 벌러도 못 간다고? 안되지. 그건 안되고 말고. 내가 돈은 못 줄망정 돈 못 벌게 하면 안 되지. 이불이 허리까지 내려왔다.

“아유~원장님 미워” 그래도 아들 이야기에 생기를 찾은 눈을 흘기신다. 그깟 하루 밥 안 먹어도 안 죽는데 어쩌고 저쩌고 하며 이제 이불을 개신다. 식사를 마치신 유씨 할머니를 격려하고, 잘 드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면 상황 끝이다.


가끔 어르신들이 고집을 부리실 때가 있다. 그 고집은 자신을 해하고 나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밥 안 먹는다, 안 씻는다, 운동 안 한다, 마스크 하기 싫다. 저 년이 내 욕 했다... 이럴 땐 나만의 4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실컷 고집을 부리고 욕을 할 수 있도록 해우소 역할을 하는 1단계, 차근차근한 설명으로 오해를 풀어 드리는 2단계, 당사자 어르신과 친한 다른 어르신께 상황을 설명드리고 지원군을 부탁드리는 3단계. 보통 2단계 혹은 3단계에서 마무리가 된다.


3단계까지 왔는데 문제 해결이 되지 않으면 마지막 4단계 필살기 등장이다. 아들과 딸을 판다. 자녀들 중 유독 어르신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아들, 딸 이름을 외운다. 한 번도 본 적 없어도 그 아들이나 딸과 나는 친구다. 그것도 가장 친한 친구. 유씨 할머니에게 한 것처럼 엄마 걱정으로 아들의 마음이 얼마나 속상할지 내 얼굴의 온갖 주름을 끌어 모아 시위를 당긴다. 아들 없으면 죽는 줄 아시는 우리 어르신들한테는 백발백중이다. 아들을 팔면 밥도 드시고, 약도 드시고, 목욕도 하고, 운동도 하고, 마스크도 올린다. 싸웠던 친구에게 먼저 용서를 구한다.


마스크가 답답해서 자꾸 내리는 김씨 할머니에게도 아들을 팔았다.

“oo이가 엄마 전염병 걸리지 말라고 비싸게 마스크 사서 해드린 거예요”

우리 아들이 사준 거야? 질문에 답하기도 전에 마스크가 올라간다.


1시간 일찍 집에 가고 싶다는 또 다른 김씨 할머니. 센터는 보호자들과 계약한 시간이 있기에 그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의 보호를 벗어나 사고가 생기면, 슬프지만 그 책임은 오롯이 내 거다. 이땐 대전 딸을 팔아야 한다.

“대전에 사는 막내딸 **이가 엄마를 엄청 사랑하죠? 그래서 저한테 부탁했어요. 5시까지 우리 엄마 아무 사고 없이 잘 모셔달라고. 그런데 우리 김씨 할머니가 일찍 집에 가셔서 혼자 계시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딸 마음이 어떨까요? 제가 우리 효녀 딸과 약속 잘 지킬 수 있게 도와주세요

언제나 보고 싶은 막내딸이 엄마를 늘 걱정하는데 이까짓 부탁 못 들어주랴. 우리 딸이 효녀야 효녀. 하며 상담이 끝난다.


이렇게 아들과 딸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방법을 해결중심 상담에서는 ‘관계성 질문’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상담치료가 내담자 문제의 근원을 탐색하는 과거지향이었다면 해결중심 상담은 지금 여기를 중심으로, 문제의 해결과 미래의 모습에 집중하는 차이가 있다. 이를 위해 예외질문, 기적질문, 척도질문 등 다양한 질문 기법을 사용하는데 그중 관계성 질문은 자기중심적 생각에서 벗어나 중요한 타인의 시각으로 나를 보면서 문제 해결에 관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데 도움이 되는 방법이다. 즉, 나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 내가 친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아이들이라면 친구, 어르신이라면 아들 또는 딸)이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지,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나를 보고 뭐라 말할지 예측하게 해 본다. 제삼자의 시각을 예상하고 그 관계를 고려한 문제 해결의 방법을 스스로 찾아간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관계로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역으로 관계를 생각하며 문제를 풀 수 있다. 어르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는 내 살과 피 같은 아들이고 딸이다. 당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는 고집을 부리던 어르신도 아들 딸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면 그렇게 무섭던 고집들을 슬며시 내려놓으신다. 이렇게 다양한 상담 기법들을 배운 대로 잘 활용해 보도록 나를 훈련시키시는 어르신들이 감사하다.


정말 감사한 건 기억이 조금씩 사그라져도 아들, 딸만큼은 기억하는 어르신이다. 아들 딸을 팔고 싶어도 누군지 모르면 팔 수 없다. 팔아도 돈도 나오지 않지만 아들 딸을 계속 팔았으면 좋겠다(물론 그런 상황이 생기기 않으면 더욱 좋겠지만). 아들 딸을 자신의 피로, 살로, 심장으로 오래도록 기억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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