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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Aug 20. 2021

차가운 공감이 필요할 때

의사는 사람 아니냐? 괜찮아, 울어도 돼. 그러나 할 일은 해야지.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6회 장면,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6회의 한 장면. 오랫동안 열심히 치료한 환자. 그러나 이제 의학적 방법이 없다. 모든 치료를 중단하고 환자를 편안히 보내야 할 때. 사망 선고를 내려야 하는데 전공의 임창민(김강민 분)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눈물이 흐르고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김준완(정경호 분) 교수가 사망 선고를 대신한다. 감정을 추스른 전공의는 교수를 찾아와 죄송하다 말한다. 준완이의 조언이 이어진다.


의사는 사람 아니냐? 괜찮아, 울어도 돼.. 그러나 할 일은 해야지.
아무리 네 감정이 그래도
해야 할 건 해야 할 때가 있어.
그걸 결정해 주는 것도 의사가 할 일이고...

죽음을 앞둔 환자와 남게 되는 가족의 슬픔에 공감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하다. 그러나 의사는 의사로서의 할 일이 있다. 법에 따라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사망선고를 해야 장례절차와 사망신고를 통한 자연인으로서의 모든 권리 정지 등 이후의 과정들을 유가족이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들어하는 당사자에게 공감하되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고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 바로 비에스텍(1957)이 말한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형성 7대 원칙 중 ‘통제된 정서적 관여’이다.


비에스텍은 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가 맺는 관계의 목적을 심리 사회적인 욕구와 문제가 있는 클라이언트를 원조하는 것에 있다고 보았다. 특히 전문적 관계에서 ‘통제된 정서적 관여’란 클라이언트의 감정에 민감성을 가지며 그 의미에 대해 이해하고, 의도적이고 적절한 반응을 하는 것이다. 사회복지사의 민감성, 이에 대한 감정이입적 이해, 적절한 반응 이 모든 것은 원조 목적에 맞게 통제, 조정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흔히 사회복지사를 착한 일 하는 사람, 마음이 따뜻한 사람, 좋은 일 하는 사람이라 일컫는다. 물론 휴먼 서비스이기에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높고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권익을 위하는 우리로서는 마음이 따뜻해야 한다. 그러나 따뜻하기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차가운 가슴, 이성, 전문성 즉 김준완 교수의 말대로 ‘할 일을 해야’ 한다.


슬플 때 같이 울어주는 건 굳이 사회복지사가 아니어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 단계 넘어 그 슬픔이 삶을 견뎌갈 수 있는 힘이 되도록 바꾸고 이를 위해 필요한 자원을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이 울고 슬퍼하는 전공의(클라이언트가 충분히 이해받고 있다는 안정감을 줌)의 모습과 사망선고를 내리는 교수의 모습(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도록 클라이언트가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하려고 노력하게 됨)을 함께 갖고 있어야 한다.


정혜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자신의 저서 ‘당신이 옳다’에서 타인의 마음에 공감할 때, 상대방의 마음을 수용하되 나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분노, 슬픔, 우울함, 두려움, 불안함 등 당신이 이런 마음을 가졌다면 뭔가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50쪽) 거라 공감하지만 그 감정에 오랫동안 함께 매몰되지 않는다. 공감은 내 등골을 빼가며 누군가를 부축하는 일이 아니기(121쪽) 때문이다. 이는 우리에게 공감 과정에서 전이와 역전이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또한 내가 무너지지 않는 적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가 될 수 있고, 그것이 슬픔에 빠진 상대방을 진정으로 돕는 일임을 가르쳐 준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7회 장면,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7회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던 아기 환자의 보호자가 김준완을 찾아와 현재 에크모(ECMO 체외막형산화기) 치료 중인 2.5kg 아기에게 바드(VAD 심실보조장치)를 달아도 되는지 묻는다. 준완은 이미 아기가 저산소 뇌병증이 온 상태이기 때문에 심장 이식이 전제되지 않는 한 바드는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보호자는 눈물을 흘린 후 “냉정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다”라고 덧붙인다. 이미 아기에게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어떤 의학적인 처치도 오히려 아기를 힘들게 하고 있음을 보호자는 잘 알고 있다. 보호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헛된 희망의 공감보다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상대방의 슬픔을 공감하는 방법이 무조건적인 동의가 아니라 때로는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객관적 사실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클라이언트가 감정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하는 힘, 자기 상황을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힘,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힘은 사회복지사의 충분한 공감과 더불어 원조 목적에 맞게 통제된 정서적 반응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이다. 따뜻하게 공감하되 냉정히 우리의 ‘할 일’에 최선을 다할 때 클라이언트의 회복력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현장이 될 것이다.



*펠릭스 비에스텍(Felix Biestek, 1912 –1994) 

 - 미국 사제 겸 교수

 - 저서 '개별사회사업 관계(The Casework Relationship), 1957'에서 개별사회사업의 관계란 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 간에 이루어지는 태도와 감정에 대한 역동적 상호작용으로 클라이언트가 자신과 환경 사이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이라 하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관계론의 7대 원칙도 제시하였다(개별화, 의도적인 감정표현, 통제된 정서적 관여, 수용, 비심판적 태도, 자기결정, 비밀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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