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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Apr 08. 2021

너의 이름은, 나의 이름은!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불리고 있는가?

야, 아줌마, 왕초, 과장님, 사장님, 사모님, 회장님, 원장님, 혜주양


나는 한 사람인데 나를 부르는 어르신들의 호칭은 다양하다. 노인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면서 호칭 부자가 되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어르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씨 할머니는 나를 ‘야’ 라고 부르신다. 할머니는 내가 우습다. 나뿐만 아니라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등 센터 모든 직원들이 우습다. 처음부터 그렇게 부르셨던 건 아닌데 ‘야’ 라고 부르기 시작한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


센터를 이용하시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노인성질환(치매, 뇌경색, 파킨슨 등)으로 신체적 움직임이 쉽지 않다. 특히 용변 후 뒷마무리 할 때 세심한 움직임이 어려우신 분들이 많은데 그때 우리가 도와드린다. 대부분 요양보호사 분들이 하시지만 나도 하고, 사회복지사도, 간호조무사도 누구든 어르신을 보게 되면 당연히 한다. 어느 날, 큰 볼일을 마치신 한 어르신의 뒷마무리를 내가 하고 있는데 이씨 할머니가 그 장면을 보셨다. 이후로 나는 ‘야’가 되었다. 아마도 이씨 할머니에게 나는 ‘남의 뒤를 닦아주는 사람’으로 인식된 것 같았다. 그래서 우스웠을 것이고, 아무렇게나 불러도 된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장씨 할머니는 나를 ‘사장님’으로 부르신다. 그럼 나는 진짜 사장이 된다. 치매 진단을 받기 전 오랫동안 공장에서 일하셨던 장씨 할머니는 내가 여기 제일 높은 사람이니 사장이라고 생각하신다. 그리고 주간보호센터에 여전히 일하러 오신다고 여기신다. 장씨 할머니가 귀가하시기 전 ‘오늘 열심히 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리면 살짝 속삭이신다. ‘나 월급 좀 많이 챙겨줘’. 장씨 할머니가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옆에 계신 김씨 할머니가 갸우뚱하신다. 아무리 봐도 아직 젊고, 더욱이 여자인데 사장 일리 없다고 생각하신다. 그래서 김씨 할머니는 나를 ‘과장님’으로 부르신다.


금년 들어 나는 ‘회장님’으로 승진했다. 바로 최씨 할머니가 그렇게 승진시켜주셨다. 그럼 나는 다시 회장이 된다. 승진도 했겠다 그날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피자로 승진턱을 냈다.


황씨 할머니는 처음에 나를 ‘왕초’라고 부르셨다. 어르신들이 처음 주간보호센터에 오실 때 기쁜 마음으로 오시는 분들이 거의 없으시다. “내가 똥오줌 못 가리니 자식들이 여기다 갔다 버리는구나”, “여기 다 병신들만 오는 곳이잖아”라고 말씀하시며 화를 내거나 울거나, 식사를 거부하거나, 어르신들 나름의 철저한 저항을 하신다. 봉씨 할아버지도 그랬다. “여기엔 다 파지만 모였네” 둘러보니 정말 그렇다. 하루 종일 같은 말 반복하는 분, 휠체어가 없으면 이동 자체가 어려운 분, 대변을 본 줄도 모르고 하체가 범벅이 되신 분. 그래서 황씨 할머니와 봉씨 할아버지는 파지 같고, 거지 같은 사람들 속에 네가 대빵이냐 그럼 너는 ‘왕초’ 겠구나 싶으셨을 테고 그래서 나는 그분들의 ‘왕초’가 되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왕초’라 불리는 시기는 짧다.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시고, 맛있는 식사를 즐기시며, 직원들의 따뜻한 마음에 며칠 뒤 어르신들의 마음은 무장해제가 된다. “알고 보니 여기가 천국이구나” 이 고백이 나올 때쯤 나는 ‘원장님’이 되어 있다.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은 자신이 텔레비전 속 주인공이 될까 두렵다. 사실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고독사는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난다. 염씨 할머니가 사시는 아파트에서 홀로 사시는 할머니에게 사고가 생긴 날, 염씨 할머니는 아픈 다리를 끌고 한참을 걸어가 집 열쇠를 복사했다. 이튿날 나에게 쥐어 주시며 ‘혹시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와 줄 수 있는가, 그리 부탁해도 되는가’ 하셨다. 그럼요. 당연하지요. 그렇게 나는 염씨 할머니 외에 계씨 할머니, 김씨 할아버지 등 세 분의 집 열쇠를 맡게 되었고, 그 분들께 다정한 ‘혜주 양’이 되었다.


상대방이 나를 부를 때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나에 대한 그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를 무시하면 얄궂은 단어를, 나를 존중하면 사랑의 단어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가 불러주는 대로 나의 마음가짐과 행동도 달라진다. 함부로 부르면 나 역시 함부로 대하고 싶고, 사랑스럽게 부르면 더욱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면 나의 행동에 따라 호칭이 달라질 수 있겠다. 관계에 진심이 묻어나지 않을 때, 나는 ‘야’가 되거나 ‘왕초’가 된다. 그러나 당신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마음이 전해지면 나는 ‘혜주양’ 이거나 ‘회장님’으로 대우받는다.


당신은,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불리고 있는가? 어떻게 불리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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