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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Apr 29. 2024

변화가 잘 보이지 않는 당사자의 삶, 어떻게 기록할까?

“왜 제가 만나는 당사자 분은 변화가 없을까요?”


사례관리* 실천으로 당사자와 6개월 혹은 1년 이상을 만나도 변화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회복지사 동료들이 있다. 그래서 기록에 담아낼 때에도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거나 후원물품 전달의 루틴한 내용들로 가득할 때가 많다. 아울러 변화가 느껴지지 않으니 여전히 내 기록에서 당사자는 부정적인 모습으로만 그려지기 십상이다.


1년 전에 만났을 때도, 만남 후 1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내 기록의 당사자가 부정적으로 그려진다면 나는 그분을 놓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만나서, 우리 기관을 만나서 여전히 변화가 없는 것인데 왜 붙잡고 있는가? 이렇게 얘기하면 1년 동안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 같아 속상할 수 있겠다.


사회복지사가 개입한다고 해서 당사자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하거나 갑자기 사람이 180도 달라지지 않는다. 변화는 시나브로 하다. 그래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당사자의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변화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함께 세운 목표를 향해 천천히 발을 떼고 있는데 그 속도가 느리고, 폭이 넓지 않다 보니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주의 깊게 관찰하면 사회복지사에게 보내는 당사자의 변화 시그널을 알아챌 수 있다.


여기 사장님은 매일 할머니들을 만져. 그래서 좋아!


이 전 글에서 K어르신께서 하신 말씀을 바탕으로 감사, 대화, 환대에 대해 이야기했다.

매일 아침 필자가 어르신들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시고 자연스럽게 나온 어르신의 말씀이다.

같은 말씀으로 이번에는 사회복지 현장에서 필수이자 가장 어려워하는 당사자의 변화를 포착하는 기록을 어떻게 쓸 수 있는지 나누고자 한다.


당사자의 변화를 포착하는 섬세함


위 내용을 말씀하신 K어르신(여, 88세, 장기요양4등급)은 3년 전 치매 진단을 받았다. 다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을 보고 내 옷을 착각해서 가져갔다는 망상이 있지만 억지로 빼앗거나 화를 내시지 않고 선생님들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챙겨달라고 말씀하시는 어르신이다. 기억력이 저하되었지만 인지활동, 회상활동에서 누구보다 집중하시는 어르신이다.

밤잠을 이루지 못해 아침과 낮에 피곤해 하시지만 장구 소리에 눈이 반짝이고 춤으로 화답하는 어르신이다.


우리 센터에서 어르신을 위한 장기요양 개입의 목표는

 " 1. 인지 영역-치매가 악화되지 않도록 인지활동에 주 5회 참여하시도록 한다.

   2. 신체 영역-주 3회 이상 근육 운동에 참여하여 스스로 보행 유지하도록 한다.

   3. 사회성 영역-모둠 활동에 20분 이상 참여하며 타인과 교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한다." 이다.

 

목표에 맞춰 다양한 활동과 대화, 관찰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 목표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평가하여 객관화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양적인 평가는 가능하겠지만(횟수, 참여율 등) 인지, 신체, 사회성 등에서 질적으로 향상되었는지 지표로 검증하기 어렵다. 어르신이 질문 척도를 이해하시지 못하거나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다든지 어르신의 상태 변수가 매일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회복지사는 다른 방법으로 어르신의 변화를 발견하고 목표의 달성 여부를 체크해야 하는데 바로 어르신이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변화의 실마리들을 찾을 수 있다.


어르신이 말씀하신 내용을 다시 살펴보자.


여기 사장님은 매일 할머니들을 만져. 그래서 좋아!

치매로 인한 가장 큰 인지 변화는 지남력의 저하이다. 지남력은 과거 및 현재를 비롯하여 시간, 장소, 사람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올바른 지남력을 갖기 위해서는 의식, 사고력, 판단력, 기억력, 주의력 등이 종합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K어르신은 바로 이 지남력에 손상이 있는데 논리성이 떨어지는 이야기, 피해망상 등으로 나타났었다. 센터 이용하신지 약 1년이 지난 현재, 말씀하신 내용을 한 단어씩 살펴보자.


1) 여기 : 기억력이 약화된 K어르신이지만 규칙적으로 센터를 이용하시면서 내가 매일 어딘가 갈 곳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셨다는 뜻이다. 비록 우리동네노인주간보호센터라는 정식 기관명을 알지 못하더라도 집을 떠나 예의를 갖춘 만남, 배움과 즐길 거리가 있는 장소에 내가 한 구성원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계시다는 반증이다.


2) 사장님 : K어르신은 필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신다. 매일이 새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다니는 이 곳의 책임자라는 것을 인지하고 계시며, 자신만의 언어인 사장님(상대방을 높이는)으로 나를 높여주고 계신다.


3) 매일 : 필자가 어르신 한 분 한 분께 인사드리는 것이 오랜 기간 매일 지속되고 있음을 관찰하셨고, 경험하셨다. 일상으로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이다.


4) 할머니들을 : 타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나를 인식하신다. 나에게만 집중된 시선이 아닌 타인을 바라보고 관찰하며, 규칙을 발견할 수 있다는 증거이다.


5) 만져 : 소통의 방법이 언어적, 비언어적으로 모두 이루어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계시다.


6) 그래서 : 자신의 기분이 어떠한지 앞 문장에 원인을 밝히고 그 결과를 언급하는 접속사

를 통해 뒷말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논리구조가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7) 좋아 : 어떠한 행위, 모습, 경험에 대해 자신의 느낌이 어떠한지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스치듯 지나가는 어르신의 말씀 속에서 K어르신의 인지 상태나 변화 등을 측정하고 살필 수 있다. 지표 또는 척도로는 어르신의 질적 변화를 측정하기 어려웠지만 표현하는 말씀 속에서 인지와 사회성의 변화, 그리고 눈빛과 웃음에서 정서적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르신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장기요양 4등급이다. 그러나 1년간 꾸준한 센터 이용과 다양한 활동으로 비록 장기요양등급과 치매의 변화는 없으나 우리를 만나기 1년 전과 분명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으로 변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복지현장에서 만나는 당사자들이 표현하는 단어, 감정, 눈빛, 옷차림 등의 변화에 주목하여 이전과 다른 모습이 보인다면 어떠한 사인을 보내는 것인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그 사인을 기록에 담아내면 된다. 그 변화는 사회복지사의 노력과 관심과 실천으로 당사자와 함께 이뤄낸 것이기에 자랑스럽게 담아내도 좋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계속 확장할 것인지 계획도 밝히면 된다.


나는 K어르신께 매일 인사와 환대를 전할 것이다. 또한 어르신이 다른 분들께도 그 환대를 전하도록 도울 것인데, 나와 인사가 끝난 후 다른 어르신들과도 즐겁게 인사를 나누시도록 하는 것으로 확장해 나가려 한다.


섬세한 기록으로 당사자의 변화와 역사를 만들어 가는 감격을 누리자


관심을 갖고 관찰하면, 당신 덕분에 목표대로 한 걸음씩 꾸준히 내딛는 당사자의 변화가 보인다. 재빨리 포착하여 당사자에게 알려드리자. 작은 성취를 맛보며 자기 효능감을 느끼게 되면 사람은 한 단계 더 높은 목표로 나아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 성취감이 쌓이는 당사자, 그런 변화를 계속 만들어 내는 사회복지사. 둘이 함께 감격의 순간을 만들어가는 즐거운 사례관리 여정이 되시길.


*사례관리란?

다양하고 복잡한 어려움을 가진 클라이언트(당사자)와 함께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상의하고 협의하며, 실천해 나가는 사회사업 실천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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