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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May 08. 2024

착한 거짓말이란 무엇일까?

치매 어르신 목욕기

K할머니는 목욕이 너무너무 싫다. 

도대체 왜 싫을까? 본인의 위생을 위해서도,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 위해서도 이왕이면 몸에서 향긋한 

비누 향기가 나면 좋으련만.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추측건대

1. 내 몸은 전혀 지저분하지 않다.

2. 조금 전 나는 목욕을 했다(기억력이 저하되었다). 

3. 왜 씻어야 하지?(위생에 대한 개념이 줄어들었다)

4.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어떻게 씻어?(수치심, 또는 불안감..그러나 왜 집에서도 안 하실까?)

5. 어딘가 몸이 아프다.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다. 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씻는 문제로 늘 전쟁이다.


K할머니를 위해 가족들은 방문목욕센터의 목욕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좋은 시설에서, 다정한 선생님들과 

개운하게 목욕했으리라 기대했는데 이게 웬걸 

“그년들이 나를 강제로 발가벗기고 억지로 씻겼어...이런 XXX” 목욕은 시원하게 하신 뒤, 이렇게 표현하시니 방문목욕센터 선생님들 참 억울했겠다. 평소 다정하신 분이 과격하게 말씀하셔서 ‘아, 이제 목욕을 더 안 하시겠구나.. 이렇게 포기할 수밖에 없는가’ 절망감이 몰려왔다.

 

우리 센터 한 선생님이 꾀를 내었다. 어르신을 꼬시기로 했다.

“어르신, 깨끗하게 목욕하면 나라에서 용돈 준대요. 여기 다른 할머니들도 목욕하고 용돈 받는데, 

우리 어르신만 안 받으면 손해잖아요”

역시 돈이다. 눈빛이 반짝이더니, 진짜 돈 주는 거 맞냐 여러 차례 확인 후 

철통 같았던 방어막(옷)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나라에서 주는 용돈을 받기 위해 어르신은 신나게 목욕하셨다.


그렇게 한 달이 훌쩍 넘었을 때, 이제 목욕이 완전히 습관이 되셨나 보다 싶었을 즈음, 귀가 차량을 기다리는 잠깐 여유로운 시간에 K할머니와 담소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우스개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K할머니가 뜬금없이 하신 말씀.

 “그런데 말이지~ 목욕한다고 돈 받는 게 아닌거 같어. 내 주머니에도 돈이 없고, 통장은 어디 있는지 알 수도 없고 말이지” 순간 K할머니가 다시 목욕을 안 한다고 하시면 어쩌나 불안했는데 이어서 말씀하신다.


“생각해 봤는데, 목욕을 하면 아무래도 내가 돈 받는 게 아니라 저이들이(요양보호사 선생님을 지칭한다) 

돈 버는 거 같어. 뭐 어쩌겠어, 나이 먹은 사람이 젊은 사람들 돈 벌게 해 줘야지...”


아...K할머니는 그동안 머릿속이 많이 혼란스러우셨겠다. 목욕은 했는데 왜 나에게 돈은 없지? 

계속해서 저이들은 용돈이 나올 거라고 말하는데 대체 언제 나오는 거지?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주 1회 목욕은 서비스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어르신 말씀처럼 저이들이 

돈 버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어르신은 자신이 목욕을 해야 저 착한 젊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돈을 벌겠거니 생각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셨나 보다.




나는 매일 어르신들게 거짓말을 한다. 소위 착한 거짓말. 

배회하는 어르신께는 “조금 있으면 따님이 모시러 올 거예요”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께는 “오늘 최고로 운동 잘하셨어요”

목욕을 위한 거짓말 역시 어르신을 위한 착한 거짓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어르신을 위한 것일까? 그저 얼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감에, 단순히 우리의 계획대로 

따라주지 않는 어르신을 통제하기 위해, 어차피 치매 때문에 곧 잊어버리실 테지 쉽게 생각하는 마음에, 

골치 아픈 문제를 임시변통으로 해치우고자 하는 결국 내가 편하고자 하는 검은 욕심이 아니었을까.  

어르신이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동료들과 공유했다. 동료들도 더 이상 착한 거짓말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이번 주 목욕실에선 이런 인사가 들린다.


“어르신 덕분에 저 월급 받아요. 돈 벌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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