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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알 Jan 10. 2024

12편. 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12화] 누군가 내 생을 근사한 영화로 만들어버렸다.

 프랑스 숙소 Gite vs. 스페인 숙소 Albergue


친구와 헤어지면서 갖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은 캐나다 부부를 만나면서 말끔히 사라졌다. 아저씨는 다가올 나의 미래에 항상 몇 시간 나보다 먼저 가 계셨다. ”오늘 숙소 예약은 하신 거예요? “

두 분은 미리 예약해 놓은 숙소가 있단다.

순례 길 안내 기호도 읽을 줄 모르는 순진한 왕초보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반문한다.


 ”미리 예약해도 되는 거예요? “ 답답..하셨을 거다.


아니면 너무나도 순진한 얼굴을 하고 들어온 뜻밖의 물음에 어안이 벙벙하셨을지도. 하지만 전혀 그런 내색 없이 곧장 숙소로 전화를 하시어 여유 방이 있는지 물으신다. 이렇게 감사할 데가. 자리가 있단다.

그리고 그 전화 한 통이 얼마나 현명한 선택이었는지 도착해서 금방 알 수 있었다. 예약 없이 늦게 도착한 순례객들은 방이 꽉 차 다른 숙소를 찾으러 발길을 돌려야 했으니까.      


캐나다 부부가 예약해준 Montarnaud 숙소

사실 숙소 예약과 관련해선 나도 할 말이 있었다. 순례책자들의 표준은 가장 유명한 길인 Camino Frances(생장드포드-스페인을 대부분 거치는 길)에 맞춰져 있었다. 스페인의 공립 알베르게는 따로 예약을 할 수 없고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방을 내어준다. 저렴하고 시설도 깨끗하니 대부분의 순례객들은 그 숙소를 이용하는 편이다. 그래서 남프랑스 아를길의 숙소도 비슷하게 운영될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숙소 Gite는 달랐다. 일단 성수기에도 이용하는 순례객이 많지는 않다. 특히 4월 중순은 다소 쌀쌀한 비수기여서 문을 닫는 숙소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비용도 스페인에 비해 다소 비쌌다.

그래서 미리 다음 날 내가 걸을 목적지가 정해지면

숙소 몇 군데에 미리 전화를 해 가능한 곳을

예약하는 것이 현명했던 것이다.


책과 현실이 왜 그렇게 달랐는지.

의문의 실타래가 하나하나 풀리고 있었다.      


 낯선 사람들이 가족같이 편안한  낯선 상황


Montarnaud에서 내가 묵은 방 & 거실

오후 3~4시쯤 도착한 숙소는 내 맘에 쏙 들었다.

일반 가정집을 순례숙소로 꾸며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재로 꾸며진 널찍한 거실은 집이 주는

편안한 기운을 고 있었다.


무엇보다 주인아주머니의 깔끔함이 좋았다. 배낭을 절대 침대가 있는 방으로 가져가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풀밭 아무 데나 가방을 두면서 진드기나 벌레 같은 것이 묻어왔을 수도 있고, 이전 숙소 침대에 살던 베드버그가 주인이 맘에 들어 함께 길을 따라나섰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아주머니께서는 철저히 원천봉쇄를 해 주신 것이다.     


사실 순례 전 가장 큰 걱정 중 하나가 베드버그였다.

나는 벌레라면 도리도리가 절로 나왔다. 내 몸에 꿈틀꿈틀 움직이는 뭔가가 동침하고 있다는 사실.

으악. 정말이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책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바로 베드버그에 물린 순례객이었다. 물린 후 벌겋게 번져 부풀어 오른 피부 사진은 정말 순례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한 고민에 들게 했다.


그래서 난 숙소 베드에 침낭을 펴기 전 무슨 의식처럼 베드버그 퇴치 전용 스프레이부터 아낌없이 뿌렸다. 그것도 모자라 얇은 방충 이불 커버까지 야심 차게 준비했다. 그러니 아주머니의 철저한 침실 관리가 얼마나 고마웠을까.     

숙소 마당의 쉼터

등산화를 슬리퍼로 갈아 신고 잔디가 있는 앞마당으로 나왔다. 지붕 아래에 놓인 흔들의자에 몸을 기대앉았다. 흔들의자의 적당한 흔들림은 마치 순례의 고단함에 대한 토닥임 같았다. 양말을 벗어 종일 답답했을 발가락을 해방시켜 준다.


흔들의자가 찾아 준 여유로움. 앞마당 잔디에 드리워진 석양을 향해 가는 오후 4~5시 태양의 느긋하고 따뜻한 빛깔. 꼼지락 거릴 때마다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는 시원한 바람. 거기에 순례를 이어갈 수 있다는 안도감까지. 아직도 그날 그곳으로 돌아가면 나의 온 감각은 달콤했던 행복감에 금세 젖어든다.     

Montarnaud 성당과 마을

충분히 휴식을 취했을 즈음 주인아주머니께서 마당으로 나오셨다. 시내 마트에 가는 길인데 혹시 같이 가겠냐고 물으신다. 나도 다음 날 점심으로 먹을 것들을 사두면 좋을 것 같아 흔쾌히 따라나섰다. 아주머니의 차 안에서 또 마트에서 장을 보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아주머니와 급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만난 지 불과 몇 시간 안 됐는데. 왜였을까.


물음에 대한 나의 결론은 ‘마트 동행’이 아닐까 싶었다. 일상에서 마트를 함께 가는 사람은 주로 가족이다.  식재료를 함께 고르고 같은 식탁에 앉게 될 우리.

말 그대로 식구.


낯선 땅에서 인종도 국적도 나이도 살아온 환경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한 식탁에 둘러앉아

식구가 되는 곳.

철저히 낯선 조합인데 이상하리 마치 편안한 이 느낌.

낯선 게 있다면 머리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지금 이 상황이랄까?

나는 그렇게 순례길의 묘미를 어렴풋이 느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부동의 소울 푸드 맛집 1위는 그곳


Montarnaud 숙소의 화룡점정은 아침 식사였다.

보통 아침 식사는 숙소가 제공하는 것으로, 또는 스스로 마트에서 준비해서, 혹은 조금 걷다 바Bar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순례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은 간단한 토스트와 과일, 커피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숙소의 아침 식사로 제공된 건 프렌치토스트였다( 달간 반의 순례 중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심지어 나에겐 소울 푸드.


어려서 주말에 어머니께서 잔뜩 푼 달걀물에 하얀 식빵을 담가 맛깔스런 노오란 색으로 변신시켜 주시던 그 메뉴. 그 위에 솔솔 눈 같은 설탕 가루를 뿌려 비주얼도 일품인 토스트를 베어 물면 이제 주말이구나 싶었다. 한 주의 걱정과 피로도 스르르 함께 녹여주던.      

특별했던 아침식사: 프렌치 토스트

그런데 이곳이 빵 맛집 프랑스여서였을까? 전에 내가 먹던 프렌치토스트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 났다.

빵 깊숙이까지 촉촉함이 배어 있으면서도 적당히 달콤하고 고소했던 프렌치토스트.

너무 맛있어서 그 비결이 뭐냐고 여쭤보니

식빵이 아닌 브리오슈를 사용해 오븐에 구우셨단다.

한국에 돌아와 몇 번 시도해 봤지만 그 맛이 안 났다.


아무래도 비결은 한 스푼의 따듯한 온기를 떨어뜨려 고단했을 순례객들에게 집 같은 편안함을 주고자 했던 아주머니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길 위의 가르침: 친절이란

캐나다 부부와의 인연은 짧았다. 왜냐하면 두 분은 중간 지점을 건너뛰고 다음 날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인근 마을로 가신다고 했다. 거기서 5일 정도 걸어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 있게 말이다.

그런데 아저씨는 많이 서툰 나의 앞길이 적잖이 걱정되시는 모양이다. 그래서 아침 식사 중 또 다른 순례객이었던 두 이탈리아 여자분들께 물어보신다.


”두 분은 어디까지 걸으세요?"

“저희는 뚤루즈Toulouse까지 갑니다.”

“아! 그럼 잘됐네요. 여기 한국에서 온 이 친구랑 함께 가면 되겠네요. 저희는 오늘 스페인으로 가서요.” 하고 은근슬쩍 다리를 놓아주시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도 감사했는데.

그냥 갈 길을 가셔도 되는데.

그런데 또 나보다 몇 발짝 앞선 곳에서 계셨다.


그분의 끝을 모르는 친절은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그렇게 순례의 길은 내게 물음을 던져 주고 있었다.

과연 너는 친절한 사람이었느냐고.

네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것이 친절이 맞았냐고.


순례의 길은 그렇게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겸손의 길을. 한계 없는 사랑을.


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친절함을 선택해라.


When given the choice between being right or being kind, choose kind.


소설 Wonder 명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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