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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알 May 09. 2024

26편. 출세했다. 프랑스 병원을 다 가보고.

[26화] 누군가 내 생을 근사한 영화로 만들어버렸다.

몸이 보내오는 신호가 심상치 않다. 허리를 구부린 채 연신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렸다. 메스꺼움, 구토, 혈뇨, 빈뇨, 설사에 으슬으슬 오한까지. 총체적 난국이다.


밤새 웅크린 채 “끄응끄응” 앓던 나를 두 이탈리아 친구들은 가만 두고 볼 수만은 없었나 보다. 아침부터 조안나가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알아본다. 수소문 끝에 가장 가까운 병원을 예약하고 두 친구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병원에 도착했다.      


교실 크기만 한 널찍한 진료실에 들어서니 청바지에 군청색 셔츠 차림의 젊은 백인 남자 의사 선생님이 날 맞으신다. 책상 앞이 아니라 환자를 향해 친히 걸어오시는 풍경부터 낯설다. 그런 다음 나를 45도 정도 기울어진 진료 침대로 안내하신다. 이탈리아 국적이지만 프랑스어에 능통한 조안나로부터 내 증상을 자세히 듣고 난 선생님은 내 쪽으로 다가오셨다. 그러더니 침대 옆에서 무릎을 구부려 쪼그려 앉는 자세로 누워 있는 나와 눈높이를 맞추신다.      


처음 마주하는 과분하게 친절한 의사 선생님이 난 어색하기만 하다. 하지만 선생님은 한술 더 떠 진심 어린 걱정의 눈빛을 보내시며 이제 그만 현실을 받아들이란다. 의사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와! 감내해야 하는 통증도 꽤나 컸지만,

그날 받은 문화적 충격도 못지않게 컸다.     


바쁘게 움직이는 한국병원에서와 달리 아픈 환자에게 온 신경을 오롯이 쏟아주고 있다는 느낌을 준 프랑스 병원에 대한 첫 이미지는 따스함으로 남아 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내가 한 경험이 좀 특별했던 것 같다. 프랑스에서는 의사 되는 것이 한국만큼 어렵지 않고 선망의 직업도 아니라고 한다. 간호사, 물리치료사와 수입이 비슷한데 공부하는 기간은 짧지 않으니, 젊은이들이 선호하지 않아 어딜 가나 연세 지긋한 주치의들이 태반이라는 거다. 그런데 난 친절하고 젊은 의사 선생님을 만났으니 말이다.     


의사 선생님께서 종합적으로 내리신 내 병명은 급성 신장염이었다. 신장염이라.. 한국에서는 한 번도 걸린 적이 없는 병이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커피, 와인, 땀 등으로 몸속 수분이 많이 빠져나간 것에 비해 먹는 물의 양이 적었던 걸까? 거기에 배낭을 지고 오느라 몸에 과부하가 왔을까?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지만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정확한 몸 상태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검사가 필요했다.   

  

그런데 내가 간 병원에서는 검사는 못 한단다. 그래서 다음 날 옆에 있는 별도의 검사기관에서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받아보기로 하고 일단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았다. 어제부터 아래위로 다 쏟아내 입에 뭔가를 넣기가 두려웠지만, 약을 먹으려면 일단 뭐라도 먹어야 했다. 한국이라면 어머니께서 흰 죽이라도 쒀 주셨을 텐데. 여기선 이럴 때 뭘 먹어야 하지? 스프는 버터나 크림 같은 게 들어가 안 될 것 같고. 내 고민을 털어놓으니 조안나가 조언을 해줬다.      

그럴 땐 플레인 크래커가 제격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과자를 먹으라는 거다. 한국에선 장염인데 크래커를 먹는다고 하면 분명 과자는 무슨 과자냐며 핀잔을 들었을 게 뻔했다. 하지만 지금 다른 방법이 없다.

마침 어제 마트에서 사 온 두 종류의 크래커가 있었다. 로즈마리 향이 들어간 크래커를 한 입 베어 물다 바로 뱉어 냈다. 그 좋던 허브 향이 메스껍게 느껴졌다.

 

조심스레 플레인 크래커를 녹여 먹어본다.

신기하게 그건 넘어갔다. 다행이었다.     


사실 그날은 두 친구가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는 순례 마지막 날이었다. 여유 있게 뚤루즈를 관광하며 순례의 마지막을 즐겨야 하는데 내가 발목을 잡은 것 같아 미안했다. 일정대로 라면 두 친구는 이탈리아로 떠나고 난 홀로 다음 마을로 떠나야 했다. 하지만 배낭은커녕 내 한 몸도 건사하기 힘들었다.


일단 뚤루즈에 며칠 머물며 몸을 좀 추스르기로 했다. 회복하기엔 순례자숙소보다 호텔이 나을 것 같았다.

시내에 있는 호텔을 예약해 날 눕혀 주고, 두 친구는 못다 한 뚤루즈 투어를 하러 나갔다. 호텔에 갇혀있을 날 위해 성당과 길거리 마켓 등을 둘러보고 있다며 왓츠앱으로 사진을 전송해 주는 세심한 두 친구. 늦은 오후가 되자 호텔방으로 들어오는 두 친구. 두 손을 등 뒤로 감춘 채 지긋한 미소를 띠며 내게 다가온다.     

 

짜잔! 널 위해 준비했어!”     


친구들이 왔는데도 침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이불속에서 겨우 몸만 반쯤 일으켜 세운 내게 두 친구는 노란색 튤립꽃 한 다발과 물통 캐리어를 안겨주는 것이 아닌가!


이 친구들.. 나가서도 내 생각을 한 거야?

날 감동시키는 게 목표였다면,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두 친구들의 깊은 마음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을

진한 포옹으로 대신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조안나와 마리엘라가 남기고 간 선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들의 응원 메시지가 음성지원되는 것 같았다.     


입원실이 되어버린 호텔방에서 힘들더라도 이 꽃을 보며 웃어요! 그리고 빨리 회복해서 남은 순례 여정 잘 이어나가구요! 지치고 목마를 때 우리와의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힘내서 산티아고까지 무사히 고고!! 파이팅!!”        


고마워요! 두 분과 함께 한 2주간의 시간, 정말 감사하고 행복했어요!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죽음이 끝이 아니듯, 당신들과의 인연도 여기가 끝은 아닐 것 같아요. 또 연락할게요!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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