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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알 May 15. 2024

27편. 남프랑스 뚤루즈에 발이 묶였다!

[27화] 누군가 내 생을 근사한 영화로 만들어버렸다.

Day 23,24,25,26,27,28 : Toulouse (04/05~09/05/2018)     


생각보다 고통이 컸다. 여러 증상들 중 날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오한이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이런 오한은 처음이었다. 윗니와 아랫니가 자동으로 부딪힐 정도로 온 몸이 떨려 왔다. 처방받은 약 중 진통제는 6시간에 한 알씩 복용하라고 하셨지만, 잠이 든 새벽엔 건너뛸 수밖에 없겠거니 했다.


그런데 웬걸. 통증이 알람이었다. 정확히 6시간이 지나면 한 밤중에도 바로 참지 못할 오한이 시작됐다. 어두운 호텔방에서 주섬주섬 탁자로 기어가 진통제를 털어 넣고 홀로 내뱉았다. “살려주세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약효가 돌기 전까지 견디기 위해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기도 같기도 절규 같기도 했다.      


안 되겠다. 날이 밝자마자 한국에 있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들은 여동생은 그냥 빨리 한국으로 돌아오란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이 상태로 열몇 시간의 비행은 무리였다. 갈 때 가더라도 증상이 좀 가라앉고 생각해 볼 일이었다. 대신 동생에게 프랑스 시각으로 아침 7시쯤 내게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타지에서 혼자 밤새 어떻게 될까 무서웠던 나.

내가 마주하고 있던 고통의 무게는 딱 그만큼이었다.     

꼼짝없이 호텔방에서 이틀쯤 보내고 나니 다행히 차츰 약효가 돌았다. 음식을 먹을 수도 조금 걸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몸이 원했다. 기를 보충할 수 있는 영양가 높은 음식을.


사실 순례를 하면서 간단한 빵이나 파스타로 끼니를 때우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기력을 회복할 수 있는 음식을 먹어두면 좋을 것 같았다. 시내로 나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프랑스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왕 먹는 거 맛있다면 금상첨화일 테니까.


나의 촉은 제법 좋았다.

그 집 찐 생선 요리가 신선하고 맛도 일품이었다. 좋았어! 앞으로 며칠간 점심은 이곳에서 해결하자!      

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나온 뚤루즈의 햇살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럼 오늘은 좀 걸어볼까? 햇살을 즐기며 천천히 걷는데 10분쯤 걸으니 힘이 부친다. 마침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볕이 잘 드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잠시 숨을 돌려본다.

행인들이 분주히 지나가는 모습이 꿈결 같다.

아직 약 기운에 취해 몽롱한 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몸이 추스러지면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야 할까? 아님 계속 순례를 이어가야 할까? 최선의 선택지를 찾기 위한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다 문득 비슷한 시기에 스페인 도보순례를 하고 계시던 나의 대녀이자 전전 학교 동료인 안젤라샘이 생각나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젤라님, 저 지금 많이 아파요. 너무 아파서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도 없어요. 순례를 멈추고 뚤루즈에서 몸이 괜찮아 지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내 말을 들은 안젤라님의 반응은 날 놀라게 했다.


어떻게 해..많이 아파요? 제가 지금 그리로 갈까요?”     


와! 이분이 항상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시는 마음씨 고운 분이란 건 알았지만 적잖이 놀랐다. 왜냐면 나였으면 아무리 상대가 걱정되더라도 내 순례 계획을 다 놔버리고 단번에 그렇게 말하지는 못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누가 지어 주셨는지 세례명이 정말 찰떡이다.


천사인 안젤라님의 말에 큰 감동을 받은 난,

그녀에게 그 감동을 돌려주고 싶었다.     


사실 두 달 반 순례를 준비하면서 난 가까운 지인들 15분 정도의 주소를 미리 노트에 적어왔다.

순례 중 그분들이 생각날 때 현지 엽서로 깜짝 안부를 전해드리면 그것도 추억일 것 같았다.


빠른 소통수단이 손안에 있었지만,  

버스로 1시간이면 갈 거리를 5~6시간 걸려

두 발로 걸어 보겠노라 떠나온 도보순례객에겐

디지털 보단 아날로그 갬성이 더 잘 어울리지 않겠는가. 


그렇게라도 난 잠시 낭만여행객을 자처하고 싶었다.


뚤루즈의 풍광이 담긴 엽서를 사

한국의 안젤라샘 댁으로 부치며 혼자 즐겁다.      

“안젤라님, 저 그날 정말 감동받았잖아요. 저라면 두 번 고민 않고 곧바로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건 안젤라님만이 갖고 계신 고유한 달란트인 것 같아요. 덕분에 잘 회복할 수 있었어요! 그 마음 잊지 않을게요. 정말 감사했어요~”  

   

안젤라님이 순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갔을 때 생각지도 못한 내 엽서에 감동받는 즐거운 장면을 상상하며.


그리고 그런 나의 바람은 적중했다. 안젤라샘..

글쎄 귀국해서 내 엽서를 읽고 오열하셨단다.


역시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순례길에서 6일이라는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렀던 뚤루즈. 그럼에도 불구하고 뚤루즈는 꼭 다시 가고 싶은 도시 중 하나다.


아프고 무거웠던 시간. 어둔 호텔방에서 머물던 시간이 많았던 곳. 하지만 뚤루즈는 프랑스의 파리, , 마르세유와 더불어 프랑스의 4대 도시라고 한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가론(Garonne) 강을 따라 걸으며 고즈넉하고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하고, 건강한 몸으로 구시가지와 시내 구석구석을 누비며 뚤루즈의 진면목을 느껴보고도 싶다.


호텔방에서 내 안의 아픔만 바라보느라 놓친

뚤루즈의 장밋빛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아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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