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도알 Jun 13. 2024

29편. 기도의 응답, 울뜨레야!

[29화] 누군가 내 생을 근사한 영화로 만들어버렸다.

두 독일 친구들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난 미리 알아둔 순례자 숙소를 찾아갔다. 이제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됐으니 더 이상 호텔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평지가 끝나고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니 드디어 도보순례 표식이 있는 대문이 보였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딸깍! 열린 대문을 통과해 숙소에 들어서니 딱 봐도 인심 좋은 푸근한 인상의 주인아저씨가 반갑게 맞아주신다. 털썩 마음이 놓인다.      

널찍한 거실과 부엌은 온화하고 편안한 느낌을 풍겼다. 안내받은 방엔 총 3개의 침대가 놓여있다. 그런데 숙소 베드에 여유가 있으니 혼자 방을 쓰란다. 아싸! 횡재했다! 흔치 않게 세면대까지 있잖아? 그러나 감동은 아직 일렀다. 글쎄 짐을 풀고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봤는데 멀리 루르드 대성당이 한눈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장관이었다! 언덕에 위치한 덕에 뷰가 정말 끝내줬다. 숙소가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 여기서 며칠 머물러보자.     

아저씨가 물으셨다. 혹시 한국사람이세요? 네. 어떻게 아셨지? 단번에 알아차리신 게 신기해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내 이마에 한국인이라고 쓰여 있는 것도 아닌데. 촉이 장난이 아니시네. 그러더니 뭔가 가져오신단다. 내게 건네신 건 다름 아닌 숙소 사용 안내문이다. 그런데 이럴 수가! 한국어다. 반가웠다. 남프랑스 아를에서부터 걷기 시작한 지 약 한 달 만에 순례자숙소에서 한국어 안내문을 만난 건 처음이다. 그만큼 이곳을 찾는 한국인이 많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내 짐작은 꽤 빨리 현실로 나타났다. 함께 순례를 하러 오신 여고 동창 세 분이 숙소에 합류하신 거다. 세 분 어찌나 즐거워  보이시는지. 대화와 눈빛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편안함이 그대로 묻어나 참 보기가 좋았다. 나도 그간 못 쓴 한국어를 원 없이 쓰며 고국에 대한 향수를 잠시 달랠 수 있었다.     


그런데 주인아저씨의 친절함. 좀 남달랐다. 머무르고 싶은 만큼 있다 가란다. 인심이 후하셨다. 그러더니 이곳 루르드가 마음에 쏙 들어 루르드 가이드를 하고 있는 한국 분이 계시다며 친히 다음 날 저녁 식사에 초대하셨다. 순전히 나 때문에. 그리고 물어보고 싶은 걸 다 물어보라며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셨다. 만나 뵈니 초대하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딱 내 또래셨다. 아저씨의 섬세함에 적잖이 놀랐다. 나의 순례 여정과 그분의 루르드 정착 스토리를 나누며 감사한 시간을 보내고, 가이드님은 그날 저녁, 촛불 행렬 기도가 있다고 귀띔해 주셨다.     

궁금했다. 루르드 성당을 내려다보니 이미 많은 분들이 하나 둘 모이셨음을 알 수 있었다. 나도 초를 사서, 수천 명의 인파 속으로 향했다. 그 숱한 촛불행렬 속에 내가 끼어 있다는 게 신기했다. 한 방향으로 이동하며 묵주기도를 하는데 언어가 계속 바뀌었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배려였다. 어? 한국어 기도도 등장했다. 나도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기도문을 낭독했다.


기도 같기도, 이미 기도가 이루어짐에 기뻐하는 축제 같기도 했다. 인종도 언어도 나이도. 모든 것이 달랐지만 각자의 기도가 하늘에 가 닿기를 바라는 간절함 만큼은 같았을 것이다. 어둠이 짙어지고 행렬의 초들과 환히 불이 밝혀진 성당 건축물의 어우러짐은 장관이었다. 저 멀리 초를 들고 있는 사람들 자체가 빛으로 보였다. 그렇게 우린 서로에게 빛이 되었고, 의지할 힘이 되었으리라. 행렬의 끝자락에 어렴풋이 느꼈다. 다시 순례길을 걸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다음 날 아침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서는 순례객들을 주인아저씨는 그냥 보내지 않으셨다. 우릴 앞마당에 세우시더니 손을 맞잡아 보란다. 우리가 원을 이루자 아저씨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처음 듣는 노래다. 느낌이 힘차다. 앞뒤로 손을 흔들며 박자를 맞춰드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순례자들을 위로하는 노래, ‘울뜨레야’였다. 그렇게 나는 다시 전진을 시작했다.     


매일 아침 길을 나서네

매일 아침 길을 나서네

매일 아침 우리는 더 멀리 간다네

하루 또 하루, 길이 우리를 부르네

그것은 성 야고보의 목소리

울뜨레야! 울뜨레야!

그리고 전진

신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네


땅의 길,

신앙의 길,

유럽 천 년의 길,

샤를마뉴의 은하수길

이것이 모든 순례자들의 길이라네.     

울뜨레야! 울뜨레야!

그리고 전진

신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네


저곳, 대륙의 끝에서

성 야고보가 우리를 기다린다

언제나 그의 한결같은 미소로

피네스테레에서 지는 태양에서, 그곳에서

울뜨레야! 울뜨레야!

그리고 전진

신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네     


<울뜨레야>

https://www.youtube.com/watch?v=wUU1a-M1Z_U

출처: cpbcTV     


<산티아고 순례길>

http://genie.co.kr/Q82BO1

울뜨레야를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한 곡

연주: 유혜흔 율리아나     

작가의 이전글 28편. 루르드(Lourde)에 운명을 맡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