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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어빵 Jun 05. 2024

내 딸의 감정이 성장하는 중

몸이 성장하는 것보다 더 흥미롭다

    딸이 이제 막 태어났을 신생아 시기에 표현방법은 한가지, 우는 것이다. 불편하면 울고, 배고프면 울고, 졸리면 운다. '운다'라는 동사 하나로 모든 것을 표현한다. 그러니 아빠와의 커뮤니케이션 오류가 많았다. 배가 고픈가 싶으면 졸리다는 뜻이었고, 졸린가 싶으면 자세가 불편하다는 뜻이었다.

    조금 지나서 하나 더 추가되었으니, 웃기 시작했을 때다. 아빠와 엄마는 딸아이의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동요 무한 재생과 율동 스킬을 익힐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 밤중에 14평 집이 흔들리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의 데시벨로 울기 시작하면 도대체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


    아이가 태어난지 16개월 즈음의 이야기다. 아내는 라섹 수술로 인하여 육아에서 강제 퇴장을 받은 상태였고, 후보 선수였던 내가 단숨에 주전자리를 꿰찼다. 먹이고 치우고 버리고 놀아주고 씻기고 재우는 기본 스킬은 이미 장착한 나였지만, 그 능력치가 엄마를 이길 수는 없는 법. 오후 들어서 부쩍 칭얼거림의 레벨이 높아진 딸을 데리고 외출을 결심했다. 집에 있어봤자 레퍼토리도 한정되어 있고, 답답하기도 해서 아예 오후 전부를 바깥에서 보내기로 했고 당시 차가 없던 나는 걸어서 40분 거리의 홈플러스로 유아차를 끌고 갔다.


    마트에 입장하자 텐션이 한껏 높아진 아이를 보며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내도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요양하기 좋을 거다. 그러고 보니 마트에 딸을 데리고 나 혼자 나온 적은 처음이다. 평소 아내와 했던 시나리오대로 식당 층에서 아이를 내려놓고 아장아장 걷게 한다. 이렇게 3~4바퀴 돌면 만족했던 그녀는 그날만큼은 예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딸아이의 관심은 카트 에스컬레이터에 박혀 있었다. 아무래도 위험했기에 안아 올려서 안전한 곳에 두어도 또다시 에스컬레이터에 돌진, 다시 안아 올리길 서너 번. 드디어 울기 시작했다. 아, 내가 울고 싶다. 집에 계시는 주전 공격수가 보고 싶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아이를 유아차에 태워서 1층에 있는 커피숍에 간다. 그곳에는 아기의자도 있고, 빵도 있다. 이렇게 한 템포 쉬어가자.

    딸아이를 아기 의자에 앉히고 우유팩에 빨대를 꽂아서 손에 쥐어준 뒤, 나는 주문하러 간다. 전에 잘 먹었던 소금빵과 내가 마실 생명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받아서 아이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돌아왔다. 


    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장면에서 위화감을 느낀다.


    옹골차게 말아 올린 윗머리. 미간을 중심으로 안쪽 끝이 살짝 올라간 눈썹. 나를 바라보지 않고 창밖만 주시하는 눈동자. 지지 않겠다는 고집스러운 코. 처진 양쪽 입꼬리. 거기에 이미 뭔가 먹은 것 마냥 잔뜩 부푼 발그레한 볼때기. 툭 튀어나온 입술. 나는 내 눈앞에 있는 내가 알던, 하지만 내가 지금 처음 보는 작은 생명체 앞에서 멈춰 섰다.


    혹시, 삐쳤어?

    나는 혼란스럽다. 삐쳤다고? 맞아? 내 아이가 이런 표현을 한 적이 있나? 잠깐만, 그럼 내가 뭘 해야 하지?


    "미안해."


    뭔 소리야 이게. '뭐가 미안한데?' 이런 대답을 기대한 게 아니잖아. 나는 일단 휴대폰을 들었다. 삐쳤는지 안 삐쳤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내 직감이 말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할 의무가 나한테 있어.'

    차분히 앉아서 빵을 뜯어 아이의 눈앞에 내밀며 한 손에는 휴대폰으로 영상기록을 한다.


    "미안해. 삐쳤어? 삐친 거야? 아빠 안 봐? 여기 빵. 네가 좋아하는 빵."


    미동도 없다. 눈동자만 나한테 잠깐 들렀다 갔다. 여전히 고개는 창밖을 향해 있다.

    확실하다. 삐쳤다. 옆테이블의 젊은 커플도 우리 부녀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과연 아빠에게 마음을 풀 것인가.

    그녀의 반응과는 반대로 나의 감정은 뭐라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찼다. 내 딸이 나한테 삐쳤다. 내 딸이 나에게 감정을 표현했다. 이것은 딸바보 아빠의 흔한 착각이 아니다. 옆테이블 커플의 반응이 그 증거다.

    웃는 얼굴로 계속 사과하며 빵을 내밀자 그녀도 마음을 풀고 웃으면서 맛있게 빵을 받아먹었다. 미리 쥐어준 우유도 마시면서 나에게 웃었다.


    내 딸아이의 감정이 크게 성장했다. 그 현장을 직관했다. 이 상황을 나는 집에 갈때까지 참을 수 없어 바로 아내에게 사진과 영상을 날렸고, 아내도 크게 놀랐다.

    이후부터 눈에 띄게 감정을 표현하는 빈도가 높아졌고,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벌어지면 앞으로 고꾸라지며 크게 소리 질렀다. 나는 이때조차도 기쁨의 사일런트 샤우팅을 외치면서 촬영했다. 딸아이가 특공무술에서 볼 법한 전방낙법을 시전 하면서 고꾸라지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픈 건 싫은 거구나. 기특한지고.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놀라움과 즐거움이다. 기록한 것을 하나하나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다 지난다. 특히 감정의 성장은 나를 소름 돋게 만든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싫은 것을 표현하고 떼를 쓰는 그 모습이 정말로 소중하다.

    오늘은 아빠가 해준 어묵볶음이 맛이 없다며 숟가락을 던진다. 소중한 순간이라는 것은 한두 번까지 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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