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의 언어 발달
태어난 지 2년. 주위 사물의 이름을 인지하고(밥, 컵, 뽀로로, 베베핀, 물) 아빠 엄마의 대화에서 의미를 유추하며 자신이 취해야 할 행동과 피해야 할 행동을 구분한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강요한 것은 아닌, 호모사피언스의 극히 자연스러운 발달과정이다. 학생 시절부터 문과 일색이었던 나와 아내는 매일 딸의 언어 능력 향상에 놀라움을 표현하며 그 성장의 휴대폰에 영상으로 남기려 아등바등 대고 있다.
"같이 놀이터 갔다가 장 보고 올게." 딸아이는 이미 신발을 들고 현관에 앉아 있다.
"여보, 간식 좀 챙겨줘." 플라스틱 접시를 집어 들고 테이블에 앉아 있다.
"뽀로로 볼까?" 리모컨을 챙겨서 지정석에 앉아 기다린다.
"기저귀 갈자." 기저귀를 손에 들고 나에게 쥐어 준다.
특정 단어에 크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며 대견하기도 하지만, 아내와 나의 일상 대화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오늘부터 놀이터에서 공사한 데." 딸아이는 이미 신발을 들고 현관에 앉아 있다.
"오늘 회사에서 간식으로 단팥빵 주더라." 플라스틱 접시를 집어 들고 테이블에 앉아서 "빵, 빵, 빵" 외치고 있다.
"오늘 비 온데, 우산 챙겨서 출근해." 신발장에서 장화를 꺼내온다.
즉시 행동 버튼의 특정 단어를 함부로 발음해서는 안된다. 의도치 않은 딸아이의 리액션을 유발하게 되어 빼앗고 달래는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된다. 외출 혹은 산책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어버린 아빠는 신발을 들고 현관문에 기대고 있는 인생 2년 차 눈빛의 간절함에 매료되어 하루에 외출만 3번 한 적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오늘은 고우 아웃(Go out)하기에는 레인(Rain)이 걱정되니깐, 일단 집에 있자."
이지 잉글리시로 특정 단어를 감추어서 아내와 나만 알아듣게 한다.
"너무 더워서 플레이그라운드(Playground)에 나갈 수 없으니깐, 집에서 펭귄 보여줄까?"
펭귄 = 뽀로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딸아이가 먹는 둥 마는 둥 집중을 못하고 있다. 그때 아내가 사인을 보낸다.
"일부러 안 먹는 것 같은데, 아직 검은 반도체 꺼내지 마."
뭔 소리야. 여기서 반도체 얘기가 왜 나와. 하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한동안 딸아이가 밥을 잘 안 먹을 때 김을 싸주면 곧잘 먹고는 했다. 지금 딸아이는 김을 기다리면서 밥을 안 먹고 있다. 그러니 행동 유발 버튼인 '김'이라는 말을 하지 말 것.
이 밖에도 우유=소젖, 빵=브레드, 미숫가루=선식, 유산균=요구르트 등 특히 식품 쪽에 암호어가 밀집되어 있다. 이것은 아직 딸아이가 2살밖에 되지 않았음이 이유일테고, 앞으로 선호하는 것이 폭증할 것이다. 그에 따라 아내와 나의 암호어는 점점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싫지만은 않은 이유는 내 아이가 나의 말을 듣고 이해하며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양식이 늘어가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즉, 내 아이는 자라고 있다.
이쯤 되니깐, 의심이 가는 것도 있다.
"우리 딸, 이제 씻으러 가자."
"이제는 잘 시간이에요."
"채소도 먹어야지."
"이제 집에 갈 시간이야."
딴짓하거나 뒤돌아 앉거나 다른 쪽을 바라보거나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웅얼거린다.
야. 너 지금 다 알아들으면서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거 아니냐?
얘. 혹시 너 친구들이랑 있을 때는 말을 유창하게 하면서 아빠 엄마한테는 못 알아듣게 얘기하는 거 아니니?
너. 설마 인생 2회차? 아빠 엄마의 암호어를 다 알아듣고 모른 척하고 있는 거니?
이런 별것 아닌 상상을 하면서 나는 언젠가 내 딸이 문과 아빠와 논리 충만한 설전을 벌이길 바라고 있다. 아마도 역사적인 첫 논쟁 주제는 '강아지 혹은 고양이를 길러야 하는 이유' 가 될 것이다. 물론 아빠는 벌써 논쟁 준비를 마쳤단다. '내가 기를게'에 지지 않을 준비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