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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어빵 Apr 11. 2024

아기가 가장 예쁠 때?

잘 때

    봄꽃이 만발한 지금. 근처 공원, 거리, 골목, 백화점, 키즈카페 등 어딘가에서 유아차를 밀고 있는 그 누군가를 찾는다. 엄마든 아빠든 상관없다. 무례하지 않은 정도의 힘배분과 우주의 원리를 깨치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오른손으로 어깨를 두드려 내쪽으로 관심을 돌린다. 그리고 정중하고 진중하게 물어본다.


    "아기가 가장 예쁠 때?"


    10명 중 9명, 100명 중 95명, 1000명 중 968명 정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잘 때."


    육아란, 스포츠로 따지자면 UFC 종합격투기요. 노동으로 따지자면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절묘한 조화요. 운동으로 따지자면 전신운동이요. 영화로 따지자면 로맨스 호러 액션 논픽션 스펙터클 블록버스터쯤 되겠다. 아무리 기다려도 스탭롤이 올라가지 않는 그런 영화.

    그런 육아의 꽃은 무려 '재우기'이다. 먹이고 입히고 달리고 똥 치우고 씻고 울고 달래고 재운다. 그러면 꽃이 핀다. 아기가 잠든 뒤에야 '아기가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성스러운 기운을 담아 '육퇴'라고 한다.


    1시간 전에 배달 와서 다 식어버려 물엿이 들러붙어 한 덩이가 되어버린 양념통닭을 이로 해체하며 냉장고에서 갓 꺼내어 차가운 땀을 흘리고 있는 아사히 수퍼 드라이 한 캔을 한다. TV의 볼륨을 낮추고 넷플릭스의 피지컬100을 보며 우락부락한 몸에 감탄한다.

    수개월째 가동이 멈춰버려서 자신이 공기청정기인 줄 착각하고 있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에 전류를 공급하고 패드를 잡고 있는 나의 손가락에 용사의 피를 흘려보낼 수도 있다.

    유튜브의 쇼츠를 보며 아무 생각 없이 낄낄거리며 또 뭐 볼 거 없나 하고 휴대폰 화면 위에 위치한 엄지만 돌돌 굴린다.

    반려자와 밤을 보내며 '아, 우리가 부부였지.'라는 사실을 다시금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겠지.

    수면 따위에게 시간을 줄 수 없다. 내일 수면 부족으로 정신이 혼미할 수 있지만, 그까짓게 대수냐. 어차피 수면 부족은 육아인들에게 만성질환이다. 아기가 잠든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졸면서 엄지만 데굴데굴 돌리다가 휴대폰이 미간에 두세 번 떨어져야 수면 의욕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처럼 육아인들은 재우는 행위에 진심이다. 취침 시도부터 성공까지 한순간도 방심을 늦출 수 없다. 아기가 렘수면에 돌입하여 얕은 수면을 거쳐 깊은 수면에 이르기까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쪽쪽이, 바디 필로우, 속싸개, 아로마 향 등 각종 아이템을 던져 시도해 본다. 효과는 굉장했다!라는 것은 환상 속의 이야기다. 백색 소음, 물 떨어지는 소리, 빗소리 등 휴대폰으로 재생할 수 있는 어플도 다양하다. 자장가 및 토닥토닥 등 노동력이 요구되기도 한다. 이 모든 방법은 아기 개인에게 전부 다르게 적용되며 남이 성공한 방법이 나에게 적용될 리 만무하다. 지인의 경우, 싱크대 물 떨어지는 소리에 아기가 잠들었다고 한다. 워낙에 섬세하여 녹음도 안되고 무조건 라이브로 들어야 눈꺼풀을 내렸다고 한다. 똑... 똑... 똑... 똑...


    빠른 취침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만인 공통이다. 실패의 여지는 없다. 몸을 써서 피로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놀이터, 키즈카페, 동네 공원. 어느 곳이든 상관없다. 햇살 아래서 비타민A를 받으며 뛰고 던지고 달리고 넘어지고 소리 지르면서 흥분도를 높이면 피로도가 쌓여서 빠르게 입면 할 수 있다. 부작용이 있다. 나도 같이 해야 한다. 나도 피로도가 쌓인다. 같이 뛰었는데 이상하게 내가 먼저 지친다.


    19개월이 된 나의 딸은 아빠가 재우는 것보다 엄마가 재우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내가 딸을 재우는 동안 나는 집안일을 한다. 보통은 설거지 및 청소가 끝나기 전에 아내가 재우는 데 성공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는 아내의 심기 건강을 위하여 재우기 선수 교체가 이루어진다.

    그렇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아내는 가장 예쁜 모습의 딸을 보기 위하여 슬픈 가락으로 노래를 부른다. 엄마아가 서엄그늘에 구울따러어 가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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