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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어빵 May 03. 2024

아빠는 우리 딸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불러

내 아이 먹는 이야기

    "내 아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라는 전래동화 대사 같이 오래된 구절이 있다. 실제로 배가 부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밥을 안 먹으면 배가 고픈 것은 인간의 기본이요 생존을 위한 본능이다. 내 새끼 밥 먹는 모습을 보면서 내 끼니를 거르는데 배가 부를 리가 없다. 그런데 내 딸아이가 입을 아앙하고 크게 벌리고 입속 가득 숟가락을 넣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냥 기쁘고, 우물우물 볼을 움찔거리며 음식물을 분해하는 모습을 마주하자면 내가 먹은 것 마냥 충족해진다. 이 장면을 보기 위해 나는 돈을 벌고 있는가 싶다.


    젖 먹는 힘이란 어마어마하다.

    신생아 때 분유를 먹이는 자세는 요람이다. 다리로 아기의 등과 엉덩이를 받치고 왼쪽 팔에 아기 머리를 지지한 상태로 최대한 편하게 눕게 한다. 기대에 찬 가늘게 뜬 눈은 나를 바라본다. 준비된 젖병을 잡고 아기 입에 갖다 대면 젖꼭지를 찾아 머리를 흔들며 아앙하고 입을 벌린다. 젖꼭지를 입에 문 순간부터 사르르 눈을 감고 쪽쪽 빨기 시작한다.

    전신에 힘이 들어간 것이 보인다. 모든 근육을 분유를 흡입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살이 오동통하게 오른손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면 다섯 손가락이 제 손바닥보다 큰 아빠의 손을 꼬옥 쥔다. 그 힘이 어찌나 대단한지 내 가슴마저 떨린다. 그 힘에 눌리면 나는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쌕쌕하면서 공기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순식간에 분유는 사라졌고, 아기의 눈에 만족이 떠오른다. 아기를 바로 세워 나의 가슴에 안는다. 등을 쓸어 넘기거나 톡톡 두드리며 신호를 기다린다. 끄윽. 신호가 왔다. 아기가 소화를 하고 있다. 나는 조그만 내 딸의 체온이 좋아 한동안 더 안고 있는다. 따뜻하다. 어깨가 제일 따뜻하다. 아, 토했구나.

    "아기는 우유 냄새가 나서 좋아"라고 말했던 친구가 있다. 이 녀석은 분유를 안 먹여 봤나 보다. 아기한테는 보통 토냄새가 난다.


    이유식의 시작은 전쟁이었다.

    분유에서 이유식으로 넘어갈 시기. 아내가 정성스레 미음을 만든다. 유아용 식기와 스푼을 다 준비해 두었다. 알리에서 식탁 의자도 미리 구매해 두었다. 모든 것은 이때를 위한 것이다. 내 딸의 입에 처음으로 숟가락을 넣는 그 순간을 위한 모든 것. 손수 만든 첫 이유식.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도 마쳤다. 숟가락을 입에 넣어주면 아기가 받아먹고, 그 모습에 아빠 엄마는 칭찬할 것이다. "아유 우리 아기 잘 먹네~" 그렇게 두 번째 숟가락, 세 번째 숟가락. 식기가 다 비면 "끝~" 하고 손뼉 칠 거다.

    나는 미리 준비해 둔 식탁 의자에 아기를 앉히고 벨트를 채운다. 아내는 아까부터 미음의 온도에 민감하다. 이미 충분히 식혔건만 두 번 세 번 확인한다. 이제 미음을 살짝 떠서 아기 입 앞으로 미루어놓고 약속된 한 글자를 소리 내어 말한다. "아~"


    안 먹는다. 운다. 진저리 친다. 얼굴로 피가 몰리면서 빨개진다.


    이렇게 첫 이유식은 우리의 순진한 시뮬레이션과는 크게 다른 시나리오를 타며 '역시 육아'를 다시금 새기게 되었다.


    호불호가 생겼다.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기업의 힘을 빌렸다. 적어도 우리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아는 곳일 것이다.라는 믿음이다. 각종 반찬을 데워서 식기에 올리고 너무 큰 것은 가위로 잘라서 밥과 함께 올려놓았다. 질리지 않게 매일 반찬을 다른 종류로 2가지씩 플레이팅 한다. 유아 숟가락으로 밥을 살포시 떠서 그 위에 조각낸 계란말이를 올린다. 필요 이상으로 크게 입을 벌린 뒤 숟가락까지 먹어버릴 기세로 덤벼든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응응 소리를 낸다. 이렇게 잘 먹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풍족해진다. 다음은 포크로 미역무침을 꼬아서 입에 가져다준다. "아~." 안 먹는다.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돌리고 있다. 방금까지 웃고 있던 입술은 가로로 굳게 닫힌 채 제아빠를 모르는 사람인양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설마? 싶어서 다시 계란말이를 찍어서 입가에 들이밀었더니 필요 이상으로 크게 입을 벌렸다 싶더니 이미 씹으면서 응응 소리 내고 머리를 살짝 흔들고 있다. 나는 이때, 충격과 함께 큰 행복을 느꼈다. "내 딸에게 호불호가 생겼어!" 감동적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양육자에게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고 있다. 내 딸아이가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피로해진다.


    아빠는 묵을 싫어해

    얼굴이 빨개지며 눈을 꼭 감는다. 꼭 감은 눈 끝에서 눈물이 뒹구르르 흐른다. 네모지게 벌린 입으로 한 껏 기를 모은다. 약 5초의 침묵 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것은 비명인가 사이렌인가. 성인의 고함인가 아기의 외침인가. 서러움인가 분노인가. 뭔지 모를 괴성과 함께 아기는 온몸을 쭉 펴고 뒤로 넘어간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가? 원인은 다양하다. 포크질이 잘 되지 않는다. 어묵을 자꾸 먹이려 한다. 밥은 싫다. 좋아하는 메추리알이 입에 들어가기 직전에 떨어졌다. 물컵으로 짠~해주지 않았다. 그냥 아빠가 싫다.

    밥상에서 성질이 늘었다.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숟가락, 젓가락, 포크를 집어던진다. 그 전조로 손에 들고 있는 도구로 테이블을 쳐댄다. 엄마와 딸의 기싸움이 시작된다. 버릇을 잡겠다는 엄마. 엄마를 잡겠다는 딸. 불안한 눈빛의 아빠. 나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이 포지션에 있어야 하는구나.


    물론 잘 먹는 날도 많다. 동그랑땡을 프라이팬에 부쳐서 4 등분하여 조그맣게 만든 뒤, 식기 위에 올려둔다. 양파와 간장 등으로 만든 묵무침을 작게 조각하여 같이 올린다. 밥은 탁구공 크기로 떠서 얇게 편다. 물컵과 함께 테이블 위에 올려두면 아이는 지정석에 앉아서 포크를 든다. 묵 한 조각을 쿡 찔러서 입에 넣고 만족의 미소를 띠며 응응 소리 낸다.

    '아, 나는 이 순간을 위해서 앞치마를 맸구나' 싶을 정도로 만족감과 성취감이 나를 때린다. 내가 만든 음식으로 내 딸이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내가 주방일을 시작한 이래 최고의 고양감이다. 아이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내가 묵을 먹을 수 없다. 너 다 먹어. 아빠는 묵을 싫어해. 이때 깨달음이 왔다.

    "내 새끼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불러."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요리에 드는 품이 늘었다. 아이가 같이 먹는 것은 간을 싱겁게 해야 한다. 레시피를 검색하고 재료를 타진하며 연구하는 시간이 늘었다. 행여나 고추장불고기 같이 아이가 먹지 못하는 음식을 할 때는 고기를 따로 떼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들었다. 아이의 반응을 살피며 잘 먹는 음식과 안 먹는 음식을 메모하고 휴대폰의 장보기 리스트에 업데이트해둔다. 이 모든 것은 나를 위한 행위이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 만화, 소설보다 더욱 극적이고 감동적인 장면을 위한 나의 필수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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