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판잣집 화실>과 렘브란트의 <작업실의 화가>
나의 태현이·태성이에게
잘 지내고 있었나요?
학교 갈 때 춥지는 않나요?
아빠는 추위에도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엄마에게 편지를 쓰고, 우리 태현이와 태성이에게는 아빠를 그려서 보내요.
아빠는 새벽부터 일어나 전등을 켜고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있답니다.
지금은 추운 밤이지만 오늘따라 그림이 잘 그려져 부지런히 작업을 했더니 온몸이 후끈후끈!
웃통을 벗고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보았어요.
따뜻한 이불속에 누워서 담배를 피우니 연기 속에 엄마랑 태현이, 그리고 태성이가 보이네요.
내가 연기라면, 바람이 되어 저 멀리 현해탄 건너 우리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있을 텐데….
늦은 밤, 문 밖에서는 강아지가 제 몸을 돌돌 말아 웅크리며 자고 있어요. 살짝 열린 방문으로 귀뚜라미와 게가 방에 들어왔답니다.
제주 바닷가에서 엄마랑 아빠랑 우리 함께 게를 잡았었지요. 태성이도 기억하지요? 먹을 것이 부족해 우리는 매일 게를 잡으러 바다고 나갔어요. 옆으로 기어 다니는 게를 좇아 갯벌을 뛰어다니는 우리 태현이와 태성이를 엄마 아빠는 흐뭇하게 바라보았죠. 배는 고팠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답니다.
그런 이유에서 일까요?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 아빠는 늘 ‘게’가 떠오르곤 하지요. 그때 너무 많이 잡아 미안한 마음에 엽서에 게를 그려 보았어요. 태현이도 마음에 드나요?
아빠의 작업실 벽에 그림으로 가득 장식해 놓은 것이 보이죠? 뿔을 세우고 싸우는 소, 엄마를 생각하고 그린 닭, 그리고 우리 가족그림이 있지요. 모두 아빠의 개인전에 전시할 작품이랍니다.
아빠의 작업실은 초라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편한 곳이에요. 창조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지요.(너무 어려운 말이지요? 엄마한테 물어보세요.)
다른 화가의 작업실은 어떨까요. 아빠의 작업실과는 아주 다르답니다. 조금 이야기해 줄게요.
저 바다 건너 멀리 네덜란드라는 나라가 있어요. 배를 타고 100 밤 정도 자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요.
300년 전 네덜란드에 유명한 화가가 살고 있었어요. 렘브란트 하르먼선 반 레인(1606~1669)이라고 하는데, 이름이 너무 길어 사람들은 그냥 ‘렘브란트’라고 불렀지요. 빛과 어둠을 훌륭하게 표현해 ‘빛의 화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답니다.
렘브란트가 스물세 살 때 그린 작품 중에 <작업실의 화가>가 있어요. 아빠는 작업실이 세상에서 제일 편한 곳인데, 이 화가는 그렇지 않았나 봐요. 잔뜩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니 말이에요.
렘브란트는 옷을 정중하게 차려입고 그림 앞에 서 있어요. 챙이 넓은 모자까지 쓰고 있네요. 흡사 교향곡을 연주하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는 지휘자같이 보이지요?
손에는 붓을 들고 있지요. 화가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듯 화실 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캔버스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어요. 화가의 몸보다 큰 캔버스는 산처럼 부담스러워 보여요. 아빠의 눈에는 ‘골리앗’이라는 거인과 싸움을 준비하는 ‘소년 다윗’ 같아요.
화가는 “어떡하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아,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같은 고민으로 더욱더 쪼그라들었어요.
커다란 캔버스에는 무엇이 그려져 있을까요? 아빠도 궁금하지만 렘브란트는 캔버스 뒷면만 그려놓았어요. 아빠는 누운 채, 캔버스에 무슨 그림이 그려 있을지 상상을 해본답니다.
‘근사한 풍경화를 그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자신의 얼굴을 그렸나? 아니, 그냥 빈 캔버스일지도 몰라….’
태성이가 렘브란트라면 무슨 그림을 그려놓았을 것 같나요?
그림으로 가득한 아빠의 화실에 비해, 렘브란트의 화실은 그림을 그리는 도구만 그려져 있어요. 칠이 다 벗겨지고 금이 간 벽, 화실 안에 커다란 이젤 하나, 가구라고는 책상뿐…. 책상 옆에는 물감을 만들 때 사용하는, 재료를 빻는 돌절구가 있네요.
렘브란트는 화가의 작업이 얼마나 고독하고 두려운 일인지 이 그림으로 표현했답니다. 작업실 그림이라기보다는 화가의 내면을 그린 작품이지요. 창조에 임하는 예술가의 자세라고나 할까요? (아빠 말이 너무 어려운가요? 친절한 엄마가 잘 설명해 줄 거예요! 하하!)
아빠는 그림 그리는 일이 참 좋아요. 가장 즐겁고 행복한 일이지요. 밥 먹을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담배를 태울 때도, 잠들기 전에도 늘 우리 가족들을 생각한답니다. 지금도 아빠는 작품에 파묻혀 화실 한구석에서 엄마와 태현이 그리고 태성이를 그리워하며 이 편지를 쓰고 있어요.
아빠가 그림을 팔아서 돈 많이 벌어서 찾아갈게요.
만나면, 우리 태현이 태성이 자전거를 꼭 사줄 거예요. 아빠가 꼭 약속해요. 우리 그때 자전거 타고 ‘새보다 비행기보다 빠르게 빠르게’ 씽씽 달려보아요. 그때까지 엄마 말씀 잘 듣고, 아빠가 보고 싶어도 ‘아빠의 작업실’ 그림을 보면서 기다려 주세요.
다시 만날 때까지 꼬옥 건강해야 해요.
뽀뽀를 가득 담아.
아빠. ㅈㅜㅇㅅㅓㅂ
(화가 이중섭이 세상을 떠난 9월,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에 잠시 그가 되어보았습니다.)
<시인 구상이 아이에게 세발자전거를 태워주는 모습. 친구를 바라보는 화가의 모습에서 부러움과 타국에 있는 가족을 그리는 마음이 느껴진다>.
Symphony no.5 in c minor, op.67 : 2nd movement - Beethoven
‘고반토, 로쿠반토, 규반토….(5번과, 6번과, 9번과)'
일본 유학시절, 이중섭은 도쿄 신주쿠에 있는 작은 음악다방을 즐겨 찾곤 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15전 짜리 차 한잔과 함께 베토벤 교향곡 5번, 6번, 9번 등 3곡을 신청곡으로 주문했다고 합니다. 조선에서 온 유학생의 주머니 사정은 넉넉지 않았지만, 맘껏 음악을 듣는 것은 그가 누릴 수 있는 달콤한 호사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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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혈혈단신 고국에 남겨진 화가는 사무친 그리움에 한순간도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변변한 작업실도 없었지만 , 만약 그림을 그리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이 비운의 화가의 작업실에는 분명 하루종일 베토벤 5번 교향곡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화가로서의 숙명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언젠가는 길이 남을 '마스터피스'를 꿈꾸었겠지요.
비록 그의 삶은 고달프고 남루했지만 그의 붓은 '운명의 선율'에 맞추어 천진하고 행복한 풍경을 힘차게 담아내었습니다.
https://youtu.be/aX5yLa0Auds?si=YY4kkzDxeZBWus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