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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진 Aug 20. 2024

14.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리하르트 게르스틀, <웃는 자화상>


벨베데르에 있는 많은 관람객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앞에 모여 있었다. 관람객들을 뚫고 그림을 볼 용기가 없는 나는 옆방에 전시된 그림부터 보기로 했다. 방에 들어서 마주친 한 그림에서 돌연 젊은 남자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것도 조용필의 노래가….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작은 크기의 그림이었지만 내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묘한 광기 때문이다.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한 죄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화가 리하르트 게르스틀(Richard Gerstl, 1883~1908)은 ‘사랑하면 안 될 사람’을 사랑했다. 12 음계를 이용한 음악을 시도하여 우리 귀를 불편하게 해 준(나만 그런 것일지도!) 현대음악의 시조인 아르놀드 쇤베르크(Arnold Franz Walter Schönberg, 1874~1951)와 교류하면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음악가의 집에 드나들며 쇤베르크에게 그림을 가르쳐주며 이 두 예술가는 친구가 되었다.

형제와 같았던 음악가, 젊은 화가는 그의 가족을 그려주며 우정을 쌓아가던 중 그만 쉔베르크의 부인인 마틸데(Mathilde, 1877~1923)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나이 스물세 살 때였다. 


거칠지만 순수하게 구애하는 젊은 화가에게 끌린 마틸데는 1908년 여름, 

가족을 뒤로하고 연인과 집을 뛰쳐나온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없다고 하지만 사랑의 도피는 길지 않았다. 쇤베르크의 눈물 어린 설득으로 마틸데는 아이들이 기다리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게르스틀은 마틸데를 그리워하다가 미쳐갔다.


그녀가 떠난 지 한 달쯤 된 1908년 11월 4일 밤,  스물다섯 살의 젊디 젊은 화가는 작업실에 있던 작품들과 편지더미에 불을 붙인다. 그리고 자신의 분신인 그림 옆에서 목을 매었다. 그중에 소실되지 않고 살아남은 그림이 <웃는 자화상>이다. 마틸데에게 남겨놓은 생의 마지막 편지인 것이다.


그는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울며 보냈을까? 억지로 웃어보지만 눈은 속일 수 없다. 금방이라도 굵은 눈물방울이 쏟아질 듯하다.     

리하르트 게르스틀, <웃는 자화상>, 1908, 캔버스에 유채, 40.0x30.5cm, 빈 벨베데레미술관 소장






<함께 듣는 곡> 

그 겨울의 찻집 - 조용필 노래 (양인자 작곡, 김희갑 작사)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에 그 찻집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아 ,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이른 새벽, 문도 열지 않은 찻집 문 앞에 젊은 청년이 힘 없이 기대어 앉아있습니다. 

화가인 그는 지난밤 실연의 아픔으로 하얗게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리움과 슬픔에 잠식당하는 것이 힘겨워진 그는 새벽 찬 바람을 맞으며 연인과 즐겨 갔던 찻집으로 무작정 걸어갔습니다.

실연은 그에게서 웃음을 앗아가고 초췌한 얼굴을 남겨주었습니다. 이목구비가 큼직한 그의 얼굴은 야위어 광대뼈가 더욱 두드러져 보입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함께 차를 마셨던 이곳에 다시 그녀가 찾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로 두 눈만은 살아서 번뜩입니다.

'혹시나'했던 설렘은 '역시나'로 바뀌고,  긴 한숨을 쉬며 일어서는 젊은 화가는 실실 새어 나오는 헛웃음을 삼켜댑니다. 한 사람이 내 곁에서 떠난 것뿐인데 세상은 소리를 잃었습니다. 빛도 보이지 않습니다.

심장이 아려옵니다.

 삶과 죽음 사이를 측량하는 게 이제는 다 부질없어 보입니다. 그녀가 없는 이 세상은  허무하기만 합니다.


https://youtu.be/h-zJCGUbZoc?si=avzI9nxVR-lefQ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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