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고갱 , <춤추는 브르타뉴 소녀들, 퐁타방>
“이것 좀 봐. 이 저고리가 훨씬 이쁜 거야. 이게 더 좋은 거니까 요걸로 바꿔 입어보자.”
일곱 살 때였다. 친구 상미 엄마는 친구의 한복 저고리를 벗겨 내 앞에서 활짝 펴 보여주었다. 그리고 얼굴 가득 웃음을 짓고는 억지로 저고리를 입혔다. 나는 내 색동저고리가 아닌 상미 것을 입기 싫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바보처럼 순둥순둥 했기에 ‘싫어요. 내 옷 입을 거예요.’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거울로 보니, 내 옷이나 상미 옷이나 크게 달라 보이지도 않았다. 몇 분 후, 유치원 선생님은 우리를 무대로 데리고 나갔다.
유치원 재롱잔치를 위해 엄마와 나는 동네 한복집으로 갔다. 한복을 만드는 주인아주머니는 꼬마 손님을 위해 울긋불긋 고운 비단 옷감을 잔뜩 꺼냈다. 화려한 기품을 자랑하는 광택 가득한 옷감들이 눈앞에서 펄럭펄럭 펼쳐졌다. 고운 비단의 펄럭임이 너무도 근사해서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주인아주머니가 비단을 펼칠 때마다 입에서는 ‘후와! 후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엄마는 옷감들을 내 얼굴에 대보더니, 곱고 얇은 줄무늬가 있는 색동 옷감과 산뜻한 초록 비단을 골랐다. 색동저고리에 진 초록 치마. 유치원 무대에서 누구보다 고운 옷을 입고 꼭두각시를 추는 딸을 상상하며 엄마는 설렜을 것이다.
며칠 후, 한복이 완성되자 딸바보인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한복을 입어보라고 하셨다. 덩달아 아버지의 카메라 셔터질도 그치질 않았다. 설날도 아닌데, 한복을 차려입은 딸을 위해 내 주위를 빙빙 돌며 연신 ‘찰칵찰칵’ 소리를 냈다.
“이야! 우리 딸 너무 이쁘다. 이 사진 잘 두었다가 우리 사위 보여 줘야지.”
인화해 온 사진을 보며 아버지는 ‘호들갑만발’이셨다. 그것도 시집갈 나이가 한참 까마득한 딸 앞에서 말이다.
드디어 막이 올랐다. 객석에 앉은 엄마는 무대에서 춤을 추는 아이들 중 가장 이쁜 한복을 입은 딸을 찾고 있었다.
귀여운 딸의 춤추는 모습을 찍기 위해 아빠는 이미 카메라를 장착하고 무대 앞 가장 가까운 곳에 쪼그려 앉았다. 사랑스러운 딸의 모습을 한 컷도 놓치지 않으려는 아빠는 타고난 ‘사랑꾼’이었다.
엄마는 마침내 딸을 찾았다. 딸아이는 한눈도 팔지 않고 열심히 춤을 추고 있었다. 오늘을 위해 공들여 만들어준 예쁜 색동저고리를 입고서, 가 아닌 초라한 저고리를 입고서. ‘무슨 일이지? 왜 허름한 저고리를 입고 있지?’ 의아해진 엄마는 아이들의 ‘꼭두각시’ 군무 중에 누가 딸아이의 옷을 입었나 찾기 시작했다. 무대 한편에 한껏 귀여움을 뽐내며 춤을 추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딸아이의 친구 상미였다. 딸을 위해 만들어준 옷을 상미가 입고 있었다.
순간 턱까지 분노가 차올랐다. 엄마는 화도 나고, 속도 상하고, 재롱잔치고 뭐고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공연이 끝난 후, 엄마가 무대 뒤로 찾아왔다. 행사 진행을 위해 부모님 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유치원의 당부가 있었지만, 엄마는 참을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니? 왜 니 한복을 상미가 입고 있는 거야?”
“응. 상미 엄마가 이걸로 입혀주셨어. 이게 더 이쁜 거래.”
“얌체 같은 여편네, 어디서 이런 구질한 헌 옷을 바꿔 입혀.”
엄마는 상미엄마에게 따지기 위해 무대 뒤에서 한참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도우미로 아이들 한복을 입혀주었던 상미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그 이후로 상미랑은 절대 놀면 안 된다고 하셨다.
브르타뉴지방의 전통 복장을 입은 소녀들이 춤을 추고 있다. 그날 내가 유치원 재롱잔치에서 족두리를 쓴 것같이 소녀들은 머리에 하얀 전통 모자를 쓰고 있다. 소녀들이 입고 있는 전통복은 구김 없이 정성을 다해 다림질을 한 듯하다. 그 옛날 재롱잔치를 위해 내 색동저고리를 준비했던 엄마의 치성이 브르타뉴 소녀들의 옷에서도 보인다. 흰색의 카라가 소녀들만큼이나 싱그럽다.
소녀들은 마을을 벗어나 황금빛 들판이 있는 언덕에서 춤을 추는 중이다. 서로 손을 잡고 등을 돌린 채 둥글게 둥글게 돌고 있다.
소녀들 뒤로 멀리 마을이 보인다. 수백 년은 살았을 것 같은 아름드리나무, 소녀들이 걸어온 오솔길, 지붕이 뾰족한 고딕고딕한 성당, 오밀조밀 모여 있는 집들이 정답다. 평화로운 풍경이다.
다 같이 손을 꼬옥 쥐고 춤에 빠진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은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하며 웃음 짓게 한다. 무슨 일인지 친구랑 다투고 ‘칫! 너랑 다시는 안 놀아!’하고서는 ‘뿌엥’ 거리며 집으로 돌아오지만, 다음날 아침이 되면 친구집 대문 앞에서 ‘친구야! 노올자!’ 하던 시절. 욕심도, 지켜야 할 자존심도 무언지 몰랐던 그런 시절.
해 질 녘, 그림 속의 하늘은 분홍빛으로 물들었지만, 아이들은 집에 돌아갈 시간도 잊은 채 춤에 몰입해 있다. 소녀들 가슴에 달린 빨간 꽃이 석양의 빛을 받아 더욱 선명하다.
<춤추는 브르타뉴의 소녀들, 퐁타방>(1888)은 신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1848~1903)이 프랑스 북서부에 있는 브르타뉴 지방의 소도시 퐁다방(pont- aven)에서 완성한 작품이다.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한 브르타뉴는 같은 프랑스령이었지만 지역색이 강한 곳이었다. 브르타뉴 인들의 선조는 켈트족으로 그들만의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1886년 여름, 파리의 치솟는 생활비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젊은 화가들은 생활고를 피해 브르타뉴로 오게 된다. 그들은 시골의 풍경을 그리며 전원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그중에는 ‘일요일의 화가’ 출신인 폴 고갱도 있었다. 브르타뉴의 신비로운 듯한 이국적인 풍경에 매료된 고갱은 이곳에 터를 잡고 그림을 그렸다. 전원의 아름다움과 평온함, 그리고 브르타뉴의 낮은 생활비는 그가 화가 생활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평온하고 고요한 이곳을 고갱은 사랑했다.
그는 처음에는 퐁다방에서, 그 뒤로는 르풀뒤(Le Pouldu)에서, 1891년 타히티로 떠날 때까지 브르타뉴에 머물렀다. 이곳에서 주로 풍경화를 그리면서 자신의 화풍을 연마했다. <춤추는 브르타뉴의 소녀들>도 이때의 작품이다.
상미엄마의 얌체짓으로 엄마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두 분이 그 일로 다투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미를 보는 엄마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때, 일곱 살이었던 나의 루틴은 자로 잰 듯 일정했다. 둥근 해가 떠오르는 아침이면 자리에서 일어나 제일 먼저 윗니 아랫니 닦고, 세수하고, 꼭꼭 씹어 밥을 먹고 가방 메고 엄마께 인사하고, 씩씩하게 유치원으로 갔다. 씩씩한 일곱 살은 엄마 손을 잡지 않고 등원했다. 고딕고딕한 성당지붕을 닮아 동네사람들이 ‘뾰족집’이라고 부르는 앞집 현아를 불러 함께 유치원으로 향했다. 속도 없는 나는 엄마가 상미랑 놀지 말라고 했지만 상미 집 앞에 서서 대문을 두드렸다.
“상미야, 유치원 가자!’
《어린이의 정경, Kinderszenen》 Op.15 -슈만 Robert Schumann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른’을 위한 피아노 곡이 있습니다. 곡이름은 <어린이의 정경>이지요. 모두 13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로베르트 슈만이 1838년에 작곡한 곡으로, 당시 슈만은 클라라 비크와 사랑의 열병에 빠져 있었습니다. 달콤한 연애시절이기도 했지만 클라라 아버지의 심한 반대로, 한편으로는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요. 슈만은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며 이 곡을 연인인 클라라에게 헌정했습니다. 13곡 모두 슈만이 직접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7곡인 꿈 (Traümerei)입니다.
1곡인 미지의 나라와 사람에게서(Von fremden Ländern und Menschen)는 이제는 까마득하게 멀어진 어린 시절을 불러옵니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은 뿌연 안개가 펼쳐진, 형체를 알 수 없어 더욱 아련한 미지의 세계로 이끌어줍니다. 차분하고 서정적인 선율을 따라가면 어린 시절의 아스라한 기억들과 그리움, 매일 친구 집 앞에서 ‘친구야 노올자’를 외쳤던, 순수했기에 행복하기만 했던 어린 나와 조우하게 됩니다.
평생 피터팬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세상이 고단하고 삭막해도 아이가 보는 아름다운 시선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힘든 일이 생기면 숨어서 울지 않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주저앉아 발을 구르며 울겠노라 다짐했었습니다.
하지만 ‘어른의 삶’은 쉽지 않습니다. 너무도 많은 가면을 가지고 TPO에 맞추어 살다 보니 혼자 있을 때조차도 내 얼굴을 드러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잃어버렸던 내 모습을 찾고 싶습니다. 그동안 참 많이도 모아두었던 페르소나를 하나씩 내려놓습니다. 맨얼굴이 된 나는 마냥 해맑았던 그때로 돌아갑니다. 내 마음 한구석 벽장 속에 잠들어 있는, 말랑말랑한 마음을 가진 피터팬을 아름다운 선율로 깨웁니다. 우리는 손을 잡고 황금빛 따스한 노을 속으로 걸어갑니다.
https://youtu.be/jQ1GJC8e3nM?si=zeeQ06Z4f-XPZJO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