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1]해석의 기준은 대중들이 듣기에도 명쾌하게 구별할 수 있어야 했기에, 음악적 해석을 보여주기보다는 어떤 기술적인 테크닉에 의해 구분되어야 했다. 강약을 표현할 수 있고 페달로 음을 지속시킬 수 있는 피아노(피아노 포르테)라는 악기가 발명되기 이전의 바로크시대에는 하프시코드나 클라비코드, 오르간이 사용되던 시대였다. 그래서 현시대 연주자들은 바로크 곡들을 피아노로 연주할 때 어느 정도의 페달을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늘 하는지라 페달테크닉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연출되었다. 그 장면에 필요한 선곡부터 배우들의 대사, 피아노 치는 연기, 페달을 밟지 않는 발과 연주하는 모습등 여러 각도에서 잡는 카메라연출, 음악연주, 정교한 편집 작업들 까지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융합을 이뤄야 한다
반면, 한 번도 정식 교육을 받아보지 못했던 남자 주인공에게 여 주인공은 피아노 선생님이 되어 아주 엄하게 기본기를 잡아 나간다.
[Episode2]예체능을 배우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은 자세이다. 자세에서부터 모든 테크닉을 배워나가고 덧붙여 나갈 수 있기에 가장 중요한 앉는 자세에 대해 스토리를 입혀 연출되었다. 막대기를 뒷 춤에 꽂는 방법은 작가님이 어디선가 자문을 받으시고 각본에 넣었는데, 그런 막대기는 소품팀이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제작해서 준비했는지 아주 재밌어했던 기억이 있다.
어린 학생에게는 자세가 비뚤고 앞으로 기울면 어깨와 팔에 힘이 들어가니 허리를 펴게 하는 용도로 한번 사용해 보고 싶기는 하다.
백 점짜리 예술
나의 아주 어릴 적 피아노 악보를 꺼내 보았다. 각 마디마디마다 빼곡히 쓰인 선생님의 음악적 해석 기호들로 가득 차서 그 정신 산란함에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
'이걸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다 지켜서 칠 수 있었을까?'
요즘은 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잘 교육받은 훌륭한 선생님이나 교수님들이 아주 좋은 양질의 레슨을 하시지만
나때만 해도 외국에서 잘 공부하신 선생님은 참 드물었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에 대해 논하다 보면 도제식 교육을 하는 예술분야도 다르지 않다는 현실을 보게 된다.
'여기는 작게, 여기는 가볍게, 이 음은 크게, 여기는 줄어들고... 여기 왜 안 줄어들었니? 까먹은 거야!?...'
물론 정확한 지시가 필요한 영역이 분명히 필요하다.
기본 연주자세나 정확한 테크닉을 가르칠 때, 그 시대 음악적 해석에 따른 연주 기법-특히 바로크 음악에서- 이러한 것들에 있어서 철저히 기본기를 다져 놓아야 하는 것은 훗날의 음악적 완성을 위해서 제일 중요한 반석이 된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콩쿨이나 입시의 결과가 너무나 중요한 우리나라의 실정을 들여다보면 음악이나 그림이 아이의 수준을 넘어서서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되어 완벽하게 그 역할을 수행해 내는 모습들을 심심챦게 볼 수 있다.
문화충격
내가 처음 오스트리아에서 레슨이란 걸 받았을 때의 문화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소형! 너는 이 곡이 어떤 느낌이 드니?... 그럼 그렇게 연주해 볼래?
왜 그렇게 연주했지?... 하하하 그것도 재밌는 생각이구나. 아주 재밌어!
이렇게 여기까지 끌고 온 해석이라면 그다음은 어떻게 마무리 지으면 좋겠나?..."
선생님의 말씀이라면 완벽히 지키는 연습만을 해 왔던 나에게 그야말로 경계는 있되 한계는 없는 완전히 탈바꿈된 레슨의 형태였다. 어린 나이에 맞닥뜨렸던 문화적 충격은 좋기보다는 참 난감할 따름이었다.
그것이 익숙해질 즈음, 나의 생각을 묻고 표현해 내는 시간이 기다려졌고, 예술활동의 참 즐거움을 그렇게 알아갔다.
단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과 생각들이 모여 나의 상상력과 창의력의 근원이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