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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JI Aug 19. 2023

다시 5개월이 지나고

2023. 5. 2. 베개에다가 고백하던 잔망스러운 사랑 어디갔나.

나의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였다고 지난달 일기 적은 말, 취소하겠다. 호기롭게 적었던 글이었는데 호주에 온 지 5개월 중 이번 달이 가장 힘들었던 날이었다. 기분이 안 좋아지고 더 나아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집안일은 일절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만 있다가 배고프면 컵라면으로 때우고 잠은 잘 수 있는 최대한으로 자며 그렇게 나흘 동안 지냈다.


20대부터 결혼에 대해 로망도 없고, 기대도 없어서 나에게 결혼은 없다고 늘 생각해 왔었다. 그래도 장거리 연애를 하다가(연애가 없다고는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호주에 와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데 신혼생활에 대한 달달함보다 결혼생활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위구심)이 더 많았지만, 그냥 빨리 적응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자고 나를 밀어붙였던 것 같다.


입맛도 없고 기운도 없던 와중에 비자에 대해 추가로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연애부터 결혼까지의 서사와 부부의 약속 등 여러 항목에 대해 글을 적는 것이었다. 서로 말도 안 하는 상황에서 나는 모든 날이 아름답다는 듯이 적기 시작했다. ‘OOO는 워홀로 호주에 가서... 그렇게 서로 처음 만나게 되었으며... 시간이 흘러 호주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앞으로 저희 부부는... 언제나 서로를 위하며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리의 관계는 사기가 아니고 무척 진실하다는 것을 듬뿍 담아 적었다. 그리고 연애했던 날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코로나 때문에 만나지 못해도 우리의 거리는 아주 가까웠고 애틋했다. 지금은 이렇게나 가까이 붙어있는데 우리의 거리는 얼마나 멀어졌길래 마음 상하는 일만 잦아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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