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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JI Oct 16. 2023

다시 10개월이 지나고

2023. 09 호주 이민생활, 아직도 일은 안 하고 있어요.

10개월이 지나서 이제 자릿수가 바뀌었다.


"제가 아직 호주에 온 지 얼마 안 돼서요."라는 방패막이 많이 얇아졌다. 이제 일상은 익숙해졌지만,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일을 하는 게 아직도 두렵다. 워홀 때는 겹벌이(투잡)도 했었는데 말이다. 적응이 쉽지 않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적응 기간을 자체적으로 3년 연장했고 방패막이를 조금 더 두껍게 만들었다.


그럼, 집에서 뭐 하냐고? 돈이 안 되는 일을 한다. 주 업무인 고독한 일(집안일)을 말고는 블로그와 일기 그리고 베이킹, 제빵이다. 그저 부업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싶어서 시작했는데 방문자 수가 10명이 겨우 넘는 블로그와 글재주가 없는데 글쓰기가 어려워서 자꾸 미루는 월간 일기, 레시피대로 따라 해도 실패해서 선물로도 줄 수도 없는 디저트, 이렇게 해서는 돈은 못 벌겠다는 걸 깨닫고 계속 해야 하나 싶은데 이거라도 안 하면 정말 변명할 말도 없을 것 같아서 무겁게 이어가고 있다.


그래도 어느덧 10개월째니까 10개 이상은 뭐라도 했다고 생각하면 내가 아주 아무것도 하지는 않았다고 위안이 아주 조금은 된다. 10원도 못 버는 블로그지만, 다음에 쓸 포스팅을 위해 데이트를 할 수 있어서 배우자와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신혼 초, 쉬는 날에 아무것도 안 하는 태도에 싸웠던 사건이 있었다) 엉성하고 이상한 글이지만, 결혼과 이민 생활을 동시에 시작하면서 폭풍 같았던 나의 마음을 일기를 쓰면서 일찍이 진정시킬 수 있어서 다툼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맛이 없거나 아니면 태워서 먹기 애매한 디저트지만, 만드는 동안은 집중도 잘 되고 적성에 맞아서 수업을 한번 들어보고 싶을 만큼 관심이 생겼다.


만약 오자마자 일을 바로 했더라면 집안일은 나만 하냐고 짜증을 냈을 거다. 너만 쉬냐고 한숨을 쉬었을 거다. 나랑 맞는 게 하나도 없다고 참담했을 거다. 배우자가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가 치즈케이크라는 걸 몰랐을 거다. 돈은 못 벌었지만 돈 벌었고 돈은 벌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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