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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JI Sep 18. 2023

다시 9개월이 지나고

2023. 08 호주 이민생활, 내가 처음으로 다쳤을 때.

다시 멜버른으로 돌아온 9개월이 지났다.


멜버른으로 가는 날인 아침, 팔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거울을 보니 왼쪽 팔이 부어 있었다. 며칠 전에 무리했던 팔을 전날에 화장실을 수리하느라 또 무리하게 쓴 바람에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인 건 통증이 없었고 불행인 건 나는 왼손잡이다.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 파스만 덕지덕지 붙인 채 백팩 하나를 메고 여행용 가방 두 개를 끌고 집을 나섰다. 힘겹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응급센터 가서 비행기를 타면 더 부을 수 있다는 무서운 말을 듣고 주사를 맞고 나와 진통제를 사 먹고 기내에서는 얼음을 받아 냉찜질하면서 출·입국하는 전날은 절대로 몸조심하리라며 하루를 버텼다.


멜버른 공항에 도착해서 배우자를 만나자마자 오는 길까지 너무 힘들었는데 씩씩하게 잘 왔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듯이 팔을 자랑스럽게 내밀어 보였다. 그동안은 나보다 더 다치거나 아플 때가 잦아 매번 내가 신경을 썼는데 이번에 심하게 다친 나를 잘 간호해 줄 수 있으려나 궁금해졌다.


늦은 밤, 잘 때 붙일 파스가 없어 사달라고 부탁하고 기다렸는데 뭘 잔뜩 사 왔다. 팔걸이 보호대, 파스, 쿨링 크림, 압박붕대까지 다채롭게 사 왔다. 본능적으로 가격을 먼저 보고 왜 이렇게 많이 샀냐고 말하니까 그런 나를 파악한 듯 비싼 건 안 샀다며 상황별로 제품을 설명해 주었다. 물건을 구매해도 환불을 대비해서 사용하는 편인데 매장 안에서 무척 고심했을 마음이 고마워 하나씩 뜯어서 모두 사용해 보았다.


다음날부터 내가 하던 청소와 설거지, 빨래를 하고 병원에 갈 때는 매번 같이 가고 퇴근 후에는 내가 씻는 것 때문에 도와주느라 바로 쉬지 못했다. 이게 바로 워킹대디라는 매운맛을 살짝 맛봤을 거다. 특별히 머리카락을 말려주고 옷도 입혀주고 자동차 문도 열어준다. 이 정도라면 계속 아프고 싶었다. 조금씩 가라앉는 부기에 안도감을 감추고 여전히 팔을 잘 못 쓰겠다고 발연기도 해보았다. 부기가 전부 빠지면서 병간호는 그렇게 끝이 났다.


결혼해야겠다고 결정했을 때가 떠올랐다. 해외 장거리 커플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직접 만나지는 해도 어느 정도의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부부생활을 시작하면서 역시 내가 섣불렀나 싶었다. 그러나  믿음은 아주 작은 씨앗이었다. 이제껏 가족의 병간호를 받다가 혈연이 아닌 사람에게 사랑이란 단어 하나로 정성스러운 간호를 받으면서  씨앗은  마음속에 자라서 뿌리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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