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8개월이 지나고
2023. 07. 만만하게 먹던 밀면이 이제는 소울푸드가 되다.
한국에서 지냈던 8개월이 지났다. 원래는 1년 뒤에 한국에 가기로 했는데 급하게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생겨서 혼자서만 3주 동안 한국에 갔다가 왔다.
한국 가기 2~3주 전. 사람들 만나면 나눠 줄 선물을 사고 사고, 또 사면서 지칠 정도로 샀으나 그래도 혹시라도 부족할까 봐 한국 가는 당일까지 선물을 사서 내 옷은 최소한으로 챙기고 캐리어 두 개에 선물로 가득 담았다. 한국 가기 1주 전.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배우자 걱정은 좀처럼 생각이 안 들고 기분이 자꾸만 좋아졌다. 한국 가는 당일. 공항까지 배웅해 주었고 신나게 손을 흔들면서 들어갔는데 배우자가 보이지 않는 순간이 되자 나도 모르게 갑자기 슬픈 마음이 일렁였다. 결혼 안 하고 혼자서 살 거라던 내가 이제 정말 부부가 되었다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3주 동안 지내면서 예전과 같이 모든 것이 익숙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서 해방된 것처럼 기뻤다. 집안일을 도맡아 하다가 엄마가 해주는 밥과 빨래가 이렇게나 편할 수가 없었고, 반대 방향인 운전 때문에 긴장하며 연습하다가 왼쪽 핸들을 잡자마자 능력치가 다시 생겨난 기분이 들었고, 병원에 가면 질문을 못 알아들을까 봐 긴장하며 짧게만 대답하다가 한국에서 진료받으면서 애매한 증상이라도 설명할 수 있었고 심지어 선생님이 사투리로 쓰는 단어를 쓰면서 설명해 주셨는데 무슨 느낌인지 단번에 알아서 속 시원했고, 현관문 앞에다가 택배를 두고 인증 사진까지 찍어주고 출국 전날에도 주문해서 받았던 빠른 배송에 촉박할 일이 없었고, 자전거를 한 번도 못 타다가 집에서 바닷가까지 골목길을 자유자재로 다닐 수 있어서 더운 가운데 부는 서늘한 바람에 기분 좋았고, 호주 카페는 3시 이후부터 문 닫는데 한국 카페는 늦은 시간에도 갈 수 있어서 자유로웠고 마지막으로 나를 만나기 위해 나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이 살면서 사소한 것으로도 엄마랑 다투면서 감정 소모에 완전히 지쳤었고, 부산에서 운전하면 길이 복잡하고 양보받기 어렵고(경차의 서러움) 운전하기 험해서 긴장감에 피곤해지고, 어디 놀러 갈만한 곳이 딱히 없다고 아쉬워했고, 대학병원 진료비를 결제할 때마다 금액을 보고 매번 비싸다고 생각했다. (호주 사립병원에 가보고 나서 생각이 싹 바뀌었다) 비록 겨우 몇 개월만이지만 다시 돌아가서 하던 대로 일상을 지내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나하나가 모두 감사했다. 해외에서 살지 않았으면 그동안 누려왔던 것에 대해 고마운 것도 모르고 아쉬워만 할뻔했다. 늘 그렇듯이 소중함은 언제나 돌아갈 수 없을 때 깨닫는 법인데 늦기 전에 해외에서 아쉬운 순간을 소중한 순간으로 전환해 봐야겠다. 배우자의 긴 근무 시간 때문에 자주 아쉬워하는 순간을 혼자만의 시간을 온전히 보낼 수 있는 순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