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강>, 황인숙

by 소설 쓰는 라떼

<강>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사돈의 팔촌까지 험담을 즐기던 사람에게 시달린 적이 있다. 카톡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갖 가십거리를 섭렵한 후 퍼다 나르는 것은 기본에다, 본인 판단하에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는 정당한 대우를 받은 상대를 골라 하소연하기 일쑤였고, 남에 말을 전하지 않는 척하며 결국 전하는 교묘함으로 이 이야기를 듣는 너는 이미 나와 한 배를 탄 '우리'가 되었다. 플러스, 상처받은 자신의 마음을 먼저 내어놓고서 자리에 없는 사람을 같이 씹어달라고 은근하게 종용한다.


너, 이래도 동참 안 할래?

하는 강요의 눈빛과 함께.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존중하는 마음으로 경청을 자처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카톡 폭탄으로 흠씬 두들겨 맞아 넝마가 되어가던 나의 영혼- 예전에 비슷한 어디에서 살았었군요, 의 인연으로 시작하여 푸근한 언니 같은 그분께 많이 배우고 싶었는데, 이런 뒤통수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아마 그 트라우마인 듯하다. 단톡방이나 콜 포비아가 생긴 시기가 말이다.


가진 것 없는 나에게 뭐라도 하나 더 보이는 날엔 왜 그렇게 끌어내리려고 했는지, 지금 다시 만나면 하나도 무섭지는 않다만 그때는 용기가 없었다. 단호하게 뿌리치지 못하고 달달 볶여야만 했던 시간도 직접 겪으면서 배워야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즈음 서점에서 '에너지 뱀파이어'라는 문구를 보고(오죽했으면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은 맘으로 심리 서적들을 뒤적이던 때) 이 인간을 진짜 내 인생에서 빼버려야 하는구나 깨닫는 순간이 다가왔는데(스테판 클레르제, 기운 빼앗는 사람, 내 인생에서 빼버리세요 제목에서 차용) 아마 인연이 정리되어 가던 수순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흘렀다. 황인숙 시인의 '강'을 읽었다. 넌덜머리가 나고, 지긋지긋한 관계에 놓여있던 때가 떠올랐다. 그런데 동시에 새로운 질문도 함께 따라왔다.


나는 누군가에게 에너지 뱀파이어로 살았던 적이 없는가?


있다. 있었다. 이 순간에도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

또한, 현재도 나도 모르게 그러는 중은 아닐지 두려운 마음이다.




해가 지날수록 주변에 사람이 귀하다. 나이를 먹어가니, 언제 만나도 편안한 친구를 만나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다 커가는 딸래미 붙잡고 미주알고주알 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친구가 되고, 친밀감을 쌓는 일이 이토록 '드물고', 귀중하여 자꾸 관계에 조심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내적 친밀감은 자주 만나야 하는 사이가 아니다. 자주 만나서 나는 알지도 못하는 타인들의 이야기까지 털어놓으며 신세 한탄만 하는 시간은 아깝다. 가끔 생각이 나서 안부를 묻고, 그러다 만나서 한동안 지난 이야기를 들으면 상대를 향한 마음이 더 깊어진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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