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빌라가 우리의 신혼집이라고?
매서운 한파 속에 이 집 저 집을 헤매다 아내에게 당첨된 대강빌라 201호는 우리의 첫 보금자리였다. 비어있는 대강빌라 201호에 들어선 아내는 내 손을 꾹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지금까지 본 집중에 가장 형편없었기 때문에 그만 나가자고 할 참이었는데 아내가 나를 잡았다. 여기야, 여기. 여기로 하겠어요. 이 집으로 계약할게요.
경제활동을 하면서도 은행에서 빌려줄 수 있는 최대치와 내가 가진 약간의 저축액을 더한 금액이면 근사하진 않아도 신혼부부를 위한 아기자기한 전셋집이 있을 거라 여겼다. 뉴스와 주변에서 들은 대로 현실은 살벌했다. 결혼이라는 제도로 들어서기 전, 계약서에 대충 사인을 하고-중개업자를 끼지도 않은 채-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55만 원을 내는 것과는 사뭇 다른, 은행과 나와 집주인과의 계약이 성사되면서 은행은 집주인에게 내가 빌리는 돈을 대신 주고, 대출 계약자에겐 세상 무거운 책임감과 의무감까지 더한 이자와 원금을 짊어주는 혼돈의 세계로 들어왔건만, 아기자기나 스위트하기는커녕 다 낡아빠진 옥색 싱크대와 곳곳의 체리색 몰딩을 신혼집으로 정하기엔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 창문이 달린 욕실 속에서의 샤워라니. 손을 대지 않아도 얼음판 같은 타일의 찬기가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선아야, 이건 아니지. 나는 아내의 두 손을 꼭 부여잡고 애원했다. 직장으로 대중교통이 용이하다는 장점 말고는 아무것도 볼 게 없다고. 차라리 오피스텔 월세로 들어갈까? 그게 훨씬 낫겠어. 아내는 눈을 한 번 흘기고선 핸드폰에 이것저것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방 구조를 그려 넣는 걸로 보아 나름 신접살림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구상할 모양새였다. 아내는 어두컴컴한 계단을 내려오면서 쇄기를 박았다.
-여기가 최고야.
-최고는 또 뭐야.
-하여간, 여기가 딱이라고. 대출을 받아야 대출금을 갚으면서 내 돈이 되는 거지,
나는 곧바로 입을 닫았다. 아내가 한 번 옳다고 생각하고 내린 결정에 반기를 들면 피곤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 언쟁을 시작하면 또 어떤 기사나 블로그나 책에서 본 내용들을 조합해서 날 공격할 터였다. 전자회로를 전공한 나는 세상에 이런저런 정보엔 취약했다. 오른 집값에 그저 나는 흙수저라서 손댈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아내는 달랐다. 진취적이고 늠름했다. 사회 이슈나 정치적 기사에 자신의 생각을 댓글로 달기도 했고 성향이 다른 네티즌과 밤새도록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아내는 피곤한 사람이었다.
가계약을 마치고 부동산을 나오면서 대강빌라가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나는 거듭 뒤를 돌아보았다. 대강? 대강? 큰 대자에 강할 강인가, 아니면 흐르는 강인가, 내참, 대강 지어 대강이겠지. 나는 아내와 따로 걸으며 3년째 손실 중인 주식 종목의 시세와 뉴스 등을 검색했다. 오래 버텨서 빠져나올 수 있는 우량주도, 기술주도 아니었다. 소위 돈 좀 굴리는 큰 세력들이 한 번 들러줘야 하는,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누군가의 친인척이나 지인 등이 사외이사쯤은 해줘야 본전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집값은 나날이 오르고 좁은 땅덩어리에 새로운 아파트는 언제나 올라오는데, 건설주를 잡았어야 했다. 주식에 관심도 없을 시기에 동료 따라 도박성으로 투자한 그때를 참회하며 하루빨리 남은 돈이라도 빼서 다른 곳에 투자하는... 상상을 했다. 순식간에 상상 상한가를 맞고 입꼬리를 올렸다. 아내가 바짝 다가와 핸드폰을 툭 치며 말했다. 다른 생각은 일절 하지도 말라고 못을 박았다. 단 돈 10원도 까먹을 수 없으니 그 종목도, 손실금액도 모두 잊고 묻어두라 했다. 물론, 주식 거래와 앱 사용까지 함께 잊어야 하는 조건이었다.
아내와 나는 둘 다 지방에서 올라와 직장을 다니며 대학원에 진학했다. 각자 노후한 주택의 방 한 칸을 얻어 자취를 하던 시절 우리는 자연스레 자주 얼굴을 마주치다 인연이 되었다. 우리는 자취방 앞에 있는 대학교에 서로 문외한인 전공을 심화 연구하고 있었고, 집은 다르지만 모양은 같은 오래된 주택의 방을 얻어 각자 살고 있었다. 아내가 퇴근을 하고 집을 들어갈 때나 출근을 할 때, 할 일 없는 주말 낮에 책을 끼고 도서관을 갈 때, 혹은 편의점에서 음료 한 캔을 살 때도 우리는 똑같이 생긴 주택 문을 열고 나와 서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주말에 화장을 하지 않은 아내는 얼핏 고등학생 같은 이미지를 풍기기도 했다. 주로 어두운 색 후드 티에 낡은 청바지를 입고 지저분한 슬리퍼나 운동화를 질질 끌면서 적당히 기름기 있는 콧등에 뿔테를 걸쳤다. 뭐 그렇다고 해서 풋풋하거나 화사하게 젊고 희디흰 10대의 느낌은 아니었다.
-나이를 먹어도 어려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 당신이 그런 과의 생김새지. 40대 50대가 되어도 ‘젊어’ 보인다기보다 ‘어려’ 보이는 쪽이라고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으려나.
그게 칭찬인지 험담인지 알려달라며 내 등짝을 때리면서 웃던 아내의 모습이 내가 아내에게 가장 반하게 된 지점이었을 것이다. 나보다 더 호탕한 성격의 아내가 먼저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의 결혼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즉시 우리는 오랜만에 찾아온 30대의 열정을 서로에게 쏟아부었다. 10월의 날 좋은 어느 날 자취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아내를 부둥켜안고 있던 나는 갑작스레 프러포즈를 했다.
-그냥 빨리 결혼하는 게 낫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