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 지었나요, 대강빌라
대강빌라는 정말 대강(大綱) 지어진 집 같았다. 대강빌라 201호에 살림살이를 들여놓던 날, 나는 처음으로 환한 대낮에 우리 신혼집의 겉과 안을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었다. 그동안 아내만 혼자 들락날락했을 뿐 나는 새로 맡은 프로젝트도 있었거니와 신혼여행을 위해 일주일간 자리를 비우려면 더 열심히 야근해야 했다. 주말엔 피곤하다는 핑계로 잠만 잤고 남는 시간은 또 출근을 하거나 집에서 일을 했다. 사실 그즈음 나는 우울했다. 아내가 느꼈어야 할 감정 혹은 아내도 느꼈을 그 감정을 혼자서만 드러내놓고 표현했던 것이다. 아내는 잔바람에 흔들리는 가지가 아니었으므로 나에게 이말 저말 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고 기다리는 쪽에 있었다.
-그 부잣집에 시집간, 아니지 갔다는 표현 싫네. 경제적 여유가 되는 남자와 만나 동등하게 결혼한 내 친구가 그러더라고. 주택 대출이 없으니까 갚을 돈이 없더래. 그래서 둘이 합쳐 월 700만 원을 벌어도 100만 원밖에 저축을 못한다는 거야. 그 저축하는 100만 원도 모이기가 무섭게 충동 여행이나 소비를 할 때가 많다고 하고. 또 다른 친구를 예로 들면, 남편만 혼자 300만 원을 버는데 대출금을 갚으면서 100만 원도 넘게 저축한대. 돈도 꽤 많이 모았다나 봐. 얼마나 뿌듯하겠어?
나는 아내의 그런 말에 자주 속으로만 생각하고 혼잣말로 대꾸했다. 글쎄, 나는 굳이 뿌듯하지 않아도 될 거 같은데. 그렇게 집 걱정 안 해도 된다면 말이지.
겨울에 시작한 우리의 신혼생활은 역시 순탄치 못했다. 옛날식 빨간 벽돌들의 주택이 다 그렇다고는 하나 겨울은 정말이지 참기 힘들었다. 최전방 철원에서 극도의 한파를 겪으며 보초를 섰던 패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아무리 보일러를 돌려도 집안에서는 입김이 났다. 방 온도는 13도까지가 한계였다. 온갖 대비를 해도 한파엔 늘 수도계량기가 얼어 일당을 주고 녹여야 했는데 휴일엔 작업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도 고단했다. 자취방에서 전기장판을 틀고 잘 때 느끼던 온기조차 없어 유난히 추위를 타는 내 체질까지 원망스러웠다.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지내보고자 창문에 방풍비닐을 부착했다가 하루 만에 커튼에 가려진 벽부터 장롱이 들어가 있던 가려진 벽 자리까지 검고 푸르른 곰팡이로 득실거렸다. 우리 부부는 환기를 하지 않은 서로를 헐뜯기 바빴다. 단 하루 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아내는 며칠 인터넷을 뒤지더니 차라리 잘 됐다며 벽지를 모조리 뜯어냈다. 찬바람을 맞으며 곰팡이제거제를 뿌리고 철수세미로 닦아내는 고난도의 작업을 이틀 밤에 걸쳐 해내고야 말았다. 그리고 따듯한 느낌이 나는 노란색 친환경 페인트로 벽면을 색칠했다. 갑자기 계획에도 없던 인테리어 공사로 집안이 한층 더 밝아져서 곰팡이 사건은 그럭저럭 넘어갈 일이 되기도 했다.
외풍의 문제 말고도 골치를 썩인 문제는 또 있었다. 세탁실 물매는 또 어찌나 불량이었던지. 세탁기가 돌아갈 때면 물이 잘 빠지지 않아 아래층이나 안방으로 넘치진 않을까 걱정이었고 변기 수압이 낮아 볼일 보는 일까지 신경을 써야 했다. 결국 세탁실 물의 범람으로 나는 아랫집 아저씨와 다른 곳에 거주하시는 주인집 아저씨를 만나 서로 책임을 묻는, 해결되지 않을 감정적 소모를 겪어야 했다. 주인아저씨는 말했다. 대강빌라를 허물고 다시 지을 수는 없지 않으냐고.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가 우스갯소리로 명칭을 붙인 1차 대강빌라 벌레의 난에 앞서 세탁실 물의 범람으로 인한 만삭의 심신 고통도 대강빌라에 대한 마음이 변한 이유로 축적이 되었던 게 아닐까.
-무섭지 않아서 좋았어. 여기가.
대강빌라의 단점을 수시로 잡아내는 내게 그동안은 그냥 좋아, 그냥 아늑해, 그냥 푸근해 등으로 일관했던 아내는 여러 집들 중에 이곳을 선택했던 명확한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창문을 열어젖히고 자 아래 좀 봐봐, 하는 것이었다. 2층 아래는 지상이었다. 환한 가로등 아래로 늦은 귀가를 하는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시간은 자정을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그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두부가게와 간판이 없는 채소가게는 이제야 문을 닫는 중이었다.
-이 집에서 전철역은 걸어서 10분, 버스정류장은 걸어서 3분에서 5분 정도 되겠지? 아 택시 승차장도 있고. 그리고 반대편 위쪽으로 아파트들이 수두룩하고.
-그래서?
-우리보다 위쪽에 사는 사람들이 집에 가려면 우리 집을 지나쳐야 하지. 버스와 지하철은 12시가 넘어서도 다니니까 새벽까지도 사람들이 떼로 지나다니잖아.
-그래서 시끄럽잖아. 술 취한 사람들도 많고. 주거환경으로는 조금 아니지. 아기도 잘 깨고.
-그런 부대끼는 소리가 좋았다니까 나는.
-혹시 내담자가 될 생각은 안 해봤어? 그런 소리로 안정을 느낀다니 좀 이상한데.
대강빌라 201호에 사는 우리가 자유라던 아내는 뒤척이는 아기를 안고서 볼멘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싫어. 싫어졌어. 저 사람들 사는 데가 궁금하다고.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아내는 온 힘을 다해 내 등짝에 손바닥을 날렸다. 강인하기만 했던 아내의 말소리 끝에서 눈물 맺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갑작스러운 아내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했다. 그녀는 위로를 바란 게 아니었다. 대강빌라에 대한 애틋한 첫 마음이 변한 자신을 인문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합리화시키는 작업을 완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러한 시도마저도 아내가 정한 도덕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으므로 아내는 스스로가 도덕적으로 추락했다고 여기는 중이었다.
마치 아이를 위해 나와 결혼한 것처럼, 아내는 모든 기회를 마다하고 양육에 몰두했다. 내가 출근한 그 시간 동안 아내에게는 사소한 일들이 겹겹이 쌓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차 싶었지만 애매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 드러나게 하는지 알 방법도, 눈치도 부족했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벌레의 습격을 받은 후 대강빌라를 혐오하게 됐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갑작스레 집의 소유를 탐하는 아내의 변화는 설명되지 않는 의문이었다. 늘어나는 아기의 재롱에 저녁 먹는 시간도 아까워하던 그즈음, 나는 흐트러진 책상 위에서 끼적이기를 좋아하는 아내의 몇 가지 메모들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겨우 저기 담장 안으로 들어가 구경이나 하고 싶다니.
저기 윗동네 사는 사람들이라며 굳이 자신과 구별했던 아내였다. 언젠가는 고급 아파트에 살고자 했던 나의 열망은 편하게 살고 싶은 단순한 바람이었지만 아내에게는 늘 비난거리였다. 그야말로 나는 썩어 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에 사로잡힌 노예나 다름없었다. 그런 아내가 단계도 거치지 않고 고층 아파트 매매에 눈독을 들이다니, 차라리 이때를 기회라 여겨야 할지 그러다 매스컴에서 떠드는 하우스 푸어가 되는 건 아닌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내는 수시로 아파트 분양 정보를 공부했다. 청약 통장에 얼마가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몇 년 이상 저축을 했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아파트에 사는 지인들에게 모조리 연락을 해서 이것저것 캐물었다. 인터넷 지역카페나 민간분양, 공공분양 관련 카페에 들어가 분양과 공공전세, 임대에 관한 정보에도 열심이었다. 분양이든 전세든 월세든, 지금 너무 마음만 앞서 간 거 같으니 조금만 차분하게 몇 년 더 준비해 보자는 나의 말에 아내는 길길이 뛰며 성을 냈다. 어제는 문화센터에서 만나는 아기 친구의 아파트 내 놀이터에서 걸음마를 했고, 그제는 평일엔 사용하지 않는 승용차 트렁크에서 유모차를 매일 넣었다 뺐다 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라며 뒤죽박죽 이야기했다. 아파트에 사는 게 세상 편한 거라고 말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아파트에 살아보고 싶었던 어린 시절 소원을 들어주고자 자신은 이렇게 노력하는데 이제 와서 초를 친다는 막말까지 얹었다.
-그러니까 아기 데리고 어디 마땅히 산책할 곳도 없다니까.
-조금 걸으면 하천 있잖아. 그쪽에 곧 벚꽃도 만개할 거고. 여름에 수영장도 개장하고 가끔 벼룩시장이나 지역특산품 시장도 열리는데 뭐가 산책할 곳이 없다는 거야?
-미세먼지 없는 영상 20도 이상은 돼야 20분쯤 걸어서 하천 한 바퀴 도는 거지. 그게 얼마나 갈 거 같아? 줄곧 봄바람에 미세먼지 황사에 장마 지나면 금방 더워지고. 그러다 겨울 오고. 아파트 사는 사람들은 그럴 필요가 없더라니까. 내가 저번에 아는 엄마 따라 저기 위쪽 아파트에 한 번 가봤거든. 세상에나 아파트 단지 안에 숲이 있어. 아기 데리고 20분 30분을 하천 둑 입구까지 걸으면 그때 이미 진이 빠져. 아기는 울고 있고. 날씨가 어떻든 간에 바로 집 앞에 나가서 잠깐 산책하고 오면 얼마나 편하고 상쾌하겠어? 그뿐인 줄 알아? 아기가 유모차에서 잠들면 엘리베이터 타고 그대로 올라와서 현관문 안까지 아니 집 안까지 유모차를 이동시켜 놓고 그냥 재워. 우리 아기는 유모차에서 잠이라도 들면 큰일 나. 유모차를 차에 도로 넣고 들어와야 하니까.
-그것뿐이야?
고작 그게 다냐고 묻는 내게 아내는 보란 듯이 발을 동동 구르며 언성을 높였다.
-아니, 더 있어. 이제 걸음마해서 한참 움직이고 싶어 하는 애를 어디서 놀게 할 거야? 집 앞에 나가면 좁은 골목에 수시로 오토바이 지나다니잖아. 넘어지면 바로 무릎 까지는 거칠한 시멘트 바닥이잖아. 요즘 아파트는 안 그래. 푹신푹신하다고. 아기들이 흔들 말을 타다가 뒤로 자빠져도 머리가 크게 안 다칠 만큼!
나를 바라보던 상기된 아내의 표정은 마치 너도 몰랐지? 이제 알겠지? 하고 어른 흉내를 내는 유치한 어린아이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