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게 싸하다.
신혼부부라는 특별한 자격. 그것만이 우리의 무기였다. 분양공고에 준하는 신혼부부의 기간이 넘어가기 전에 아내는 소위 영혼을 끌어 모아서라도 분양을 받아야 했다. 일단 저질러. 저지르고 신용대출까지 쓰자고. 부모님한테도 조금 손은 벌려야지 뭐 어쩌겠어. 혼잣말로 구시렁대며 여기저기 청약을 하던 그 해 여름, 반년 전과는 사뭇 달라진 분양금액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무슨, 갑자기 억 소리가 바뀐다는 게 말이 되는 걸까. 아내가 눈독을 들이던 공공분양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당첨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진작 관심을 가졌더라면 조금 더 일찍 조건에 맞춰 준비할 수 있었을 거라는 후회의 말과 한숨만 늘어놓았다.
-신혼 특공이 뭐가 이렇게 비싸......?
커트라인이 조금 낮을 걸로 예상되는 곳이 하나 있긴 하나 그 또한 세대주인 나의 무주택기간이나 청약 기간도 애매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전형이나 다자녀 전형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서로의 직장과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는 무턱대고 신청해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분양은 우리 힘으로 힘든 금액이었잖아.
아무리 공공분양이라고 해도 직장생활 6년 동안 모은 돈이 전부인 우리 부부에게는 무리한 금액이었다. 공공분양이 이러한데 민간분양은 대출액수가 훨씬 더 늘어날 게 뻔했다. 나는 고작 이런 이유를 들며 아내를 단념시켰다.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될 수 없다고. 그러지 말고 우리 그 유명한 자산관리사 대표 말처럼, 집 사지 말고 투자하는 거 어때? 아내는 뭔가 결심했다는 듯이 다른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하고 말을 이었다. 투자하는 거야?
-분양은 아니지만 10년 이상 장기로 전세를 주는 게 있대. 신혼부부특별공급이라고. 신축아파트에 주변 시세보다 훨씬 저렴해서 경쟁이 치열한가 봐. 우리 이걸로 한 번 해보자. 10년이면 우리도 어느 정도 자리 잡지 않겠어? 그때 분양받으면 되지.
시무룩했던 아내는 주거 형태의 소망을 조금 하락시키면서 자신과 타협한 듯했다. 청약 신청을 하고 서류전형의 발표가 있던 날, 회사에 있던 나의 마음은 대학 합격 소식을 기다리던 초조함과 흡사했다. 서울로 가면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던 그때, 아버지는 내게 이제 됐다, 이제 됐어, 말씀하시며 눈물까지 훔쳤고 어머니는 사돈의 팔촌까지 전화를 걸어 자랑을 했다. 이 순간 나는 대학 합격의 순간에 느꼈던 대단했던 전율을 또다시 느껴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터넷 카페 열심 회원이 올린 가상 프로그램으로 확률을 확인했을 때는 해볼 만하다고 아내는 긴장했다. 카페 회원들만이 정보를 입력하고 결과를 출력하긴 하지만 공공전세를 알아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이 카페를 그냥 지나칠 리 만무하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의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한 명의 자녀수로는 넘볼 수 있는 경쟁이 아니었다.
그즈음 아내는 자주 멍하게 있느라 내 말을 잘 듣지 못했다. 아기의 기본 욕구만 채우면서 하루를 겨우 마감하곤 했다. 한동안 같이 다니던 문화센터 엄마들과 가끔 만나기도 하고 그중 한 두 명과는 집을 오가기도 했다는데 핸드폰도 수시로 꺼두면서 넋이 나간 사람처럼 구니 나도 짜증이 치밀었다. 그때 내 예감은 매일 저녁상에 올려놓던 그 모임 멤버들의 이야기가 끊겨서 젊은 여자들끼리 삼삼오오 모이더니 관계에 예민한 사건이 생긴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나의 아내가 그런 일들로 일상이 흔들리는 멘털은 아니었다. 나는 아내를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아내는 때때로 예전에 읽었던 입문자용 철학서 등을 다시 펼쳐 필사를 했다. 아내는 그런 시도를 책 제목과 같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 정의했지만 사람들이 소비하는 ‘행복의 기호’를 사실은 심히 열망하고 있다고, 그 열망을 인정하고 극복하기 위해 사유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신은 특별하게 다른 존재라 믿고 싶었다. 대강빌라를 선택한 것은 자유가 아닌 방어였다. 거짓으로 스스로를 높여 행복의 기호들을 철저히 외면하려던 부작용은 불필요한 죄책감과 우월감 사이를 극단적으로 오갔다. 그랬다. 아내에게 중간이란 없었다. 모 아니면 도. 내겐 없고 아내에게는 있는 장점이기도 했다.
-나는 도저히 안 되겠다. 나란 인간은 여기까지야.
책상에 얼굴을 묻고 숨죽여 울던 아내는 결국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말끔하게 포기했다. 이후 더 열심히 아파트에 매달렸다. 외곽으로 개발 중인 토지가 어디인지, 재개발이 유력한 지역의 빌라 매매는 어떠한지, 현재 조건에서는 프리미엄 가격을 조금 붙이더라도 신도시 신축아파트의 분양권을 사는 게 좋겠다는 의견 등을 제시했다. 그리고 아직 분양이 아니라면 오래되지 않은 아파트 급매물에 접근해 보자고 들뜨기도 했고, 지나가는 소리로 소형 오피스텔을 분양받아 매매를 하고 또다시 매매를 하고 그러다 보면 돈이 조금 불어나지 않겠는가 하는 셈까지 벌였다.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도덕적 객기란 무엇인지, 말로만 듣던 경매 공부를 제안했다가 사람 취급도 안 해줄 판이었다.
-하니 같은 아이가 담벼락 밖에서 가족들이 오붓하게 살던 집을 쳐다본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속상해?
이런 무슨...... 얼토당토않은 말인지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하니? 하니네 집은 경매로 넘어간 거 아닐 텐데?
거기다 대고 만화 스토리의 정확한 사실을 기억하려 애쓰는 내 모습도 우스웠다.
-아니, 경매로 좋은 집 싸게 사면 좋지 않아? 뭘, 그 집에 살던 사람들까지 생각해? 그럼 그 집에 살던 사람 전에 살던 사람들도 사연 있게?
아내는 입을 다물었고, 나는 다시 화제를 돌려놓았다.
-아주 그냥, 공인중개사 자격증부터 새로 따시지 그래?
그런 아내는 이상하게도 지도의 한정된 구역 안에서만 움직였다.
-왜 한두 군데 지역만 알아보는 거야?
-그게 뭐?
-왜 이렇게 집값이 전체적으로 비싼 곳이냐고.
내가 그럴 때마다 아내는 직장 핑계를 댔다. 곧 복직을 하면 서로의 직장이 알아보는 동네와 멀지 않다는 게 아내의 설명이었다. 아내가 선호하는 지역은 현재 살고 있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위치였다. 그러고 보니 아내가 잠시 분양의 꿈을 미뤄두고 신청했던 공공전세의 해당 아파트 또한 이 근방이었다.
-직상 선배가 그러는데 서울 변두리 쪽이 엄청난 대단지라 자녀가 적어도 희망이 있다고 들었거든.
-소문이지. 자녀수 1명으로는 지금까지 공공전세에 당첨된 역사가 없다고.
여기가 편하고 좋다고 하면 될 일을 아내는 다른 이유를 대지 않고 우겨댔다. 더군다나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을 겁낼 정도의 소심한 성격도 아니었다. 대강빌라는 서울은 아닌 서울 같은 그런 지역에 있었다. 지하철 역 한 두 정거장만 지나면 서울과 맞닿아 있어 대중교통이 편리하고 상업지구의 특성상 필요한 모든 것들이 현재 생활권 내에 있었다. 아내는 자가용 없이 외출도 못하는 외진 동네나 택시 잡기도 힘든 난코스의 아파트에 살며 등산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외곽 쪽으로 상권이 발달하려면 한참 멀었잖아.
-금방이야, 급하게 이용할 소아과나 편의시설은 몇 개월 안에 생길 테고.
-싫어 하여간.
-이상하다 너, 거기도 아파트야.
-아파트면 다 넙죽 받아들이고 가야 하는 거야?
-그게 아니고 거기도 우리가 가기엔 무리한 금액대의 아파트라고.
-그러니까 이왕 하는 거 좀 더 힘내서 욕심내야지. 자기 아파트 소유는 배짱이 반 대출이 반 이랬어. 외곽보다는 서울이 나아.
나는 더 이상 아내에게 맞서 대꾸할 재간이 모자랐다.
-고층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고 소원한 사람이 누군데, 지금 누가 누굴 가르치는 거야?
-고층 아파트 살고 싶지. 한강 보이는 로열층이면 더 좋지. 근데 우리 지금 목적도 순서도 없이 난리만 치는 거 같아서 그래. 늘 조바심이 나. 당신이 안정적이지 못하니까 내가 더욱 그렇게 돼. 가더라도 조금만 천천히 해보자.
-목적? 왜 목적이 없니? 괜찮은 입지에 이름 있는 아파트 들어가 꿰차고 있으면 집값은 노력하지 않아도 올라. 그러는 동안 우리는 맞벌이하면서 아기 키우며 돈 벌면 되고. 그만한 재테크도 없어. 네가 하는 그 잘난 주식보다 훨씬 낫지. 지금 거기 묶여있는 돈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현명할걸.
-어차피 전세잖아. 사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
_전세라도 서울이 낫다고, 이 등신아!
-그것뿐이야?
-그것뿐이겠어? 음식물 쓰레기 넣는 전용 기계도 있고 경비원들이 출입제한도 하니 안전하고. 단지 내에 초등학교까지 있고. 말하면 입 아픈 거 왜 또 물어봐?
나는 여자처럼 눈을 지그시 흘겨 아내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라니, 그동안 겪은 것들 다시 되새겨 줘야 해?
-아니, 우리 집에서 있었던 여러 불편한 일들 말고, 그것들이 쌓일 수는 있는데. 그 쌓인 부스럼을 긁은 뭔가가 있을 것 같아서 묻는 거야.
아내는 있긴 뭐가 있어, 하고 중얼거리고서는 아기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계단을 오르는 듯했다. 아내는 가끔 대강빌라 201호 바로 위에 층인 옥상을 좋아했다. 아래층에 사는 노부부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 쪼갠 마늘, 말린 무, 말린 호박 등의 농산물들을 주렁주렁 걸어놓았다. 김장 김치를 담글 정도의 커다란 대야들도 크기별로 세워져 있었다. 옥상에는 고추와 상추 방울토마토, 그리고 이름 모를 여러 종류의 꽃들이 계절마다 피어올랐다. 한 여름엔 너무 뜨거운 태양빛에 농작물들이 죽을까 봐 검은색 비닐로 천막을 치기도 했다. 아내는 선선한 날 아기를 데리고 옥상에 올라 비눗방울을 불고 옥상 전체를 메운 여러 채소들을 구경하고 천막 아래 깔린 돗자리에 앉아 시원한 커피를 마셨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대강빌라에 사는 일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일이었고 아파트의 꿈을 가진 이후에도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다고 초심을 회복하기도 했다.
노부부는 말이 없었다. 아기가 주물러놓은 물러진 열매에도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아내가 노부부와 친하게 지내거나 왕래를 한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아내가 며칠 후 대강빌라 입구 벽에 붙여진, ‘이번 주 토요일 오전 7시 이삿짐 트럭이 들어올 예정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대강빌라 101호 올림’이라는 문구를 보고 깊은 상실감에 빠질 거라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아내의 메모장은 기록하고 있었다. 노부부가 이사를 마친 토요일 오전 10시쯤 아내가 옥상에 들어가는 문을 열었을 때 대강빌라에는 더 이상 먼지다듬이 한 마리조차 살지 않을 것 같은 깊은 황량감이 밀려들었다. 아내는 그 자리에 기운을 잃고 주저앉았다. 노부부는 단 한 개의 낡은 화분도 남기지 않고 옥상을 말끔하게 비웠다. 나는 메모장을 덮었다. 이미 긁힌 아내의 부스럼은 어쩌면 잘려나갔을지도 몰랐다. 아내는 계속 아파트에 열중할 것이다.
나의 아기가 열 살이 되었을 때, 아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할 정도가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은 과연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도무지 그려지지 않았다. 외곽에서 작은 구축을 매매해서 살다가 3년마다 혹은 5년마다 이사를 진행한 친구를 보며 왜 저렇게 간단해 보이는 루트를 따라 할 수조차 없는지 의아했다. 집을 사지 못하는 유전자라도 있느냐 말이다.
외출 시에는 원격으로 집안 온도를 설정할 수 있고 각종 검침이 가능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를 수시로 cc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아파트. 그런 아파트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했다. 그건 사실, 너무나 기본적인 옵션일 뿐이며 앞으로는 더 편리한 생활이 가능한 시스템을 장착시킨 아파트가 곧 미래가 될 거라고. 그런 아파트는 우리의 노후를 더욱 안정적이고 빛나게 할 것이며 아이들에게도 손주들에게도 무언의 안정감을 허락할 거라고. 우리는 현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유재산을 늘리고자 하는 욕구에 삿대질하는 사람은 현실을 회피하는 것뿐이라고. 아내는 종종 아파트 분양 관련 유로 세미나에 다녀와 말 많은 참석자에게서 들은 것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나에게 아파트의 끈을 놓지 못하도록, 행여나 마음이 약해질까 연신 노후 생활을 미리 볼모로 삼았다.
-나중에 우리 자식들 결혼해서 우리 집에 오면 화장실 따로 쓸 수 있는 방 내주고 싶어.
아내는 고심 끝에 계획을 수정하고 한 번 더 공공전세에 도전했다. 서울 외곽에 물량이 많아 당첨자 기준이 완화될 것이라는 예상은 적중했지만 1년 사이 억 소리 나는 금액이 인상되었다. 민영아파트와 맞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인상된 금액은 출퇴근 거리의 기회비용과 바꿔야만 했다.
-서민을 위한다더니 이렇게 전세금을 높여서야 원......., 미안하다.
계약금을 입금해야 하는 마지막 날, 나는 처음으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무능하다거나 없는 집에 시집와서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말은 넣어 둬.
-아니거든? 그거 대출받을 만한 배짱이 부족해서 미안하다고. 난 네가 계속 밀어붙일 줄 알았지. 당신도 지레 겁먹고 도망가자고 할 줄은 몰랐어.
우리는 아이를 안고 대강빌라를 벗어나 상업지구로 들어갔다. 아내는 아무것도 아닌 미안하다는 내 말 한마디에 지난 시간 동안 곤두세워져 있던 날카로운 더듬이가 바로 사그라지는 듯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괜한 자존심을 좀 덜 부릴 것을, 아내에게 위로는커녕 중2병에 걸린 반항 청소년 같다고 놀리기만 했으니 아내가 되레 고집을 부리게 한 원인이 사실 내가 아니었을지 문득 반성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우리는 맥도널드에 잠시 멈추고 아이스크림콘을 하나씩 사들었다. 주말 오후 아내는 기분 좋을 만큼 적당히 비추는 해와 달달한 아이스크림 당분의 영향으로 오랜만에 내 팔에 손을 넣었다. 우리는 점심에 가성비 좋은 외식 메뉴를 고르며 시시덕거렸다. 요즘 말로 ‘꽁냥꽁냥’ 연인 같은 분위기에 오랜만에 예전 모습들이 겹치면서 많은 생각들이 스치기도 했다. 나는 아내와 거닐면서 적당한 시기에 맞춰 대강빌라에 몇 년 더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우리가 좋아하는 길거리 순대볶음과 기계에서 금방 나온 즉석 두부와 아직도 5000원에 반찬 세 가지를 주는 솜씨 좋은 반찬 가게, 단단하게 말리지 않아 늘 터지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느낀 소망김밥, 청년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행복마트 젊은 점원들......., 대강빌라가 있는 골목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들 아니겠냐고,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구구절절 말을 전할 참이었다. 다시 한번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도 함께.
상업 지구를 벗어나 하천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횡단보도 앞에서 갑자기 아내가 빨리 가자는 듯이 내 팔을 슬쩍 잡아끌고 방향을 틀었다. 신호등은 이미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우리 쪽을 향해 달리기를 하는 중년 남자와 빠른 걸음을 하는 중년 여자 두 명이 있었고 그 사람들 뒤쪽에 고급 유모차를 끄는 젊은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내가 피하는 쪽은 아기가 있는 여자라는 걸 이내 짐작할 수 있었다. 여자는 급히 등을 보인 아내를 보고도 애써 이름을 불렀다. 아내의 얼굴이 이내 굳었지만 여자는 환하게 웃을 뿐이었다. 아내를 보고 웃는 여자의 해맑은 모습에서 순수한 느낌이 묻어났다.
-오랜만이다, 선아씨!
왜 그런지 아내가 주뼛대는 게 느껴졌다. 목 언저리 쪽으로는 붉은 살이 올라왔다. 아내는 한쪽 손으로 자신의 볼을 서너 번 쓸어내렸다.
-애기 많이 컸네. 잘 지내지?
아내가 멋쩍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시 웃어 보였다. 나는 여자에게 짧은 눈인사를 하고 아내를 끌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신호가 바뀌어 우리가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할 때 여자가 아쉬운 듯 아내를 불렀다.
-아 맞다, 선아씨, 요즘도 우리 아파트에 산책하러 다녀? 다음에 오면 연락 줘, 커피 사줄게.
여자의 말에 악의라곤 없어 보였다. 분명 그랬다. 요즘 산책할 때 잘 못 본 거 같은데 언제 다시 오면 연락해 줘, 정도의 메시지로 가깝게 들렸다. 하지만 어떻게 듣느냐는 상대방의 환경과 가지고 있는 고민들 위주로 꽂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알던 당당하고, 멋진,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는 아내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남의 집 담을 넘어가 산책한 죄를 저지른 죄인. 아무도 잡아가지 않는, 규칙이나 규범을 어긴 경미한 일이 아내의 삶 전체를 흔들었단 말인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내가......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다. 원래, 사소한 원인이 싸하다는 것을.
이상적일 만큼 열정을 쏟아부었던 일도, 생각지 못한 사소한 이유로 손을 놓을 때가 있다. 그런 경우를 아주 가끔 간접 경험해 본 바, 사소한 이유가 싸하다는 것이다. 부서 일은 혼자 다 할 것처럼 나대다가도 근처에 스타벅스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퇴사를 한 사람이라든가, 인사를 잘 안 받는 열 명 중 단 한 사람 때문에 괴로워한다든가, 큰일에는 대범하고 작은 일에는 인생을 거는 그런 특이한 부류들을 볼 때가 있다. 아내를 보며 잠시 든 생각이라면, 삶 전체를 건드리는 작은 일은 자존심이었다. 참으로 복잡한데 허무했다. 지난 시간 우리 가정을 들들 볶았댔던 일들이 이렇게 해소되고 있었다.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아내는 다시 철학책을 뒤질지도 모른다.
내 등에 업혔던 아이가 다리를 곧게 펴고 내려달라는 표현을 했다. 아이가 아내에게 손을 뻗으며 자신의 손을 잡으라 했고, 또 한 손으로는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아기를 사이에 두고 한참을 걸었다.
나는 아내에게 아무것도 묻지 못했고,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