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강원도, 여덟 살, 금진
엄마는 앉은자리에서 편지를 갈기갈기 찢었다. 내가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혹 맞지는 앉을까 불안에 떨던 사이 몇 초간의 정적이 있었고, 그 정적 덕분에 방심했던 사이 엄마의 손바닥이 내 양 볼을 세차게 쓸어버리고 난 후였다.
찐득거리는 콧물을 연신 체육복 소맷자락으로 훔치며 도착한 곳은 짝꿍이 살고 있는 태권도장이었다. 2층에 위치한 체육관에서는 아이들의 운동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3층은 산호의 집이고 2층은 산호 부모님이 운영하는 학원이었다. 나는 슬금슬금 계단을 올라 태권도장 문 틈 사이로 산호를 찾았다. 그런데 왠지 산호 엄마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아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왔다. 얼마 지나 1층 계단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내 앞으로 학원 봉고차가 섰고 아이들이 하나둘씩 내려왔다. 마지막으로 산호도 내려왔다. 내가 알은체를 하지 않자 산호가 먼저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니 뭐 하나?
-그냥.
산호는 내게 이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하며 앞장서서 걸었다. 우리는 근처 놀이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양손으로 모래를 쥐락펴락했다.
-배고프겠네?
산호가 물었다. 언젠가 나는 산호에게 체육관 앞에만 오면 힘이 없어진다고 했다. 맥이 빠지는 사람은 나인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작 모르겠다고 답하고 산호에게 왜 그런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산호는 그 이유가 체육관에서 새어 나오는 아이들의 소리 때문이거나 산호 자신이 사는 3층짜리 건물 때문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산호의 부모님 때문일 거라고 어른스럽게 설명했다.
-니네 엄마 니 데리고 화투 치러 댕긴다고 갸가 며칠 전부터 여기저기 노래를 부르고 댕기더라.
내 마음을 안다는 듯 산호가 먼저 말을 꺼냈다.
-니는 나한테 왜 말 안 해줬나? 울 엄마 화투 치러 다닌다는 소문.......
나는 산호가 더 미안하게끔 재주를 부려 더욱 몸을 웅크렸다.
-뭐 좋은 거라고 말하나, 선생님들한테까지 말할지 누가 알았나? 갸가 화투가 뭔지 알더나?
-왜 모르나? 갸 데리고 엄마 노는 데 한 번 데리구 갔을 적에 주변 아저씨 아줌마들 앞에서 홍단이요! 쓰리고요! 외치면서 개평까지 받아 챙겼다 갸가.
-개평? 그게 뭔데?
-아, 그런 게 있다 하여간.
-그래서 선생님이 니네 엄마한테 뭐라고 편지를 썼는데?
아침에 일어났을 때 시간은 이미 등교시간을 넘어섰다. 언제나 그렇듯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교실에 도착하자 나는 선생님이 보내는 어떤 묵직한 시선을 느꼈고 아니나 다를까 김금진, 하고 내 이름이 불렸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보는 가운데 나를 세워두고 너희 엄마 화투하러 다니느냐고 물었다. 나는 어떻게 그걸 알았을까 하는 궁금증에 말똥말똥 선생님을 쳐다만 보았다. 그러자 뒤에서 인경이가 소리 내어 말했다.
-자네 엄마 화투 치러 다녀요! 내가 봤어요.
선생님은 인경이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내게 확인사살을 했다.
-너희 엄마 노름하러 다니느냐고.
나는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꼈다. 선생님은 방과 후 나를 조용히 불러 앉히고 무언가를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끔 나를 올려다보며 혀를 찼고, 너희 엄마가 어려서 철이 덜 들어도 한참 덜 들었을 거라고 낮게 중얼거렸다. 나는 선생님이 쥐어주는 편지 봉투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무슨 내용인지 확인은 하지 않았다. 어른들끼리 무슨 할 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편지를 읽은 엄마의 얼굴색이 변한 걸로 봐서, 내게 무척 화가 난 걸로 봐서 분명 좋은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산호야! 빨리 안 들어오나!
산호는 잽싸게 일어나 엉덩이를 털면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라.
-니 먼저 가라.
-너무 오래 있지 마라, 컴컴해진다.
나는 일어나는 산호를 올려다보며 비 맞은 강아지 표정을 지었다.
-야, 나 내일 창피해서 학교 어떻게 가나?
산호는 제법 냉정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러게 니는 공부라도 잘해야 무시 안 당하는데, 간다!
나는 집을 향해 달려가는 산호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산호와 헤어진 그날 밤, 간밤에 찾아온 빚쟁이들이 엄마의 머리채를 거머잡고 밖으로 끌어냈다. 강제로 무릎이 꿇린 엄마를 향해 연신 ‘간판도 큰 것’이라고 지껄인 사람은 화투판에서 자주 보던 검은 드레스 아줌마였다. 검은 드레스는 지폐가 넉넉히 들어갈 만한 두툼한 손가방을 손목에 걸고 가려지지 않는 불룩한 배 위로 두 손을 포개고 있었다. 엄마가 마당에 질질 끌려 다니면서 남자들의 커다란 손바닥에 뺨과 머리 등을 내어줄 때도 검은 드레스는 제법 안정된 자세로 몇 걸음만 움직이며 통굽 위에 올라가 엄마를 내려다보았다. 사방이 컴컴한 뒷마당에서 분칠한 검은 드레스의 허연 얼굴만이 동동 떠다녔다. 검은 드레스는 마치 엄마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 같았다. 나는 뚱땡이 아줌마라고 크게 소리치고 싶었다. 옆집 아저씨에게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행동이 엄마에게 더욱 해가 되지 않을까 이내 불안해졌다. 엄마에게 가해지는 모욕이 어서 끝나기만을 바라며 이불속으로 숨어들었다. 나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더니 몸이 뜨거워진 것을 느꼈고, 이빨이 서로 맞닿을 정도로 덜덜덜 떨기까지 했다.
-엄마아, 내가 아픈가 보다.
빚쟁이들이 돌아가자 꽁꽁 잠겼던 주인집 미닫이문이 열렸다.
-보소, 이만 좀 나가 주소.
주인할아버지의 맥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벌떡 일어나 엄마 곁으로 갔다. 그리고 만신창이가 된 엄마의 얼굴에 슬퍼져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엄마의 엉킨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겼다.
-아, 아파, 저리 안 가?
엄마는 나를 밀쳐내고 방으로 들어가 내가 들어가고도 남을 만한 큰 가방을 꺼냈다. 엄마는 입을 꽉 다물고 옷가지들을 구겨 넣었다.
-엄마, 나 혼자 두고 밤에 어디 가나?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엄마에게 매달렸다.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 나 좀 아픈데, 나 마음 안에서 뭐가 막 뛰는데 엄마 어디 가나?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 금방 오나? 내일 아침에 오나?
-금진아, 코 자고 있어. 알겠지?
엄마는 애매모호한 대답으로 나를 적당히 안심시키고 문을 열었다. 나의 떼는 엄마를 아프게 한다. 나는 참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