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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일핑크 Dec 01. 2023

당신은 B급 인재입니다.

12월. 평가시즌이 돌아왔다.




12월. 평가시즌이 돌아왔다.
나는 나의 성과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동시에  팀원들에게 평가 점수를 부여해야 하는 이중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이 시기가 되면 자의든 타의든 한 해를 정리한다. 회사에서 하루도 쉬이 보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막상 이때가 오면 도대체 뭘 한 걸까? 질문하며 별게 없는 것 같기도, 정말 열심히 했는데 얼마나 알아봐 줄지 미지수가 된다.


다소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이 있더라도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구어 왔는지 최대한 설명해야 한다. 고이 간직해 둔 말 포장 기법을 꺼낼 때가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했던 상시 업무, 막연히 좋아질 것이라는 이유로 시작했던 개선 작업들에게도 명확한 목적과 기대효과 그리고 성과를 나열해 준다.





간단한 작업이라고 생각했진 무엇하나 쉽게 이루어지는 건 없다. 화면에 버튼 하나 넣는 것뿐인데도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민해야 하는 게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기획의 업무는 드러나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세세한 챙김의 것들에 비중이 큰 편이다.


우리가 매일 하는 일들을 평가자가 얼마나 알고 인정해 줄지 걱정되는 부분들은 드러나지 않지만 항상 하는 일들에서 대부분 시작된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매일 해도 티가 안 난다. 청소를 한동안 안 하면 바로 태만한 자를 탓하게 되지만 말끔한 집안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은 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마른걸레와 젖은 걸레로 닦아야 하는 물건의 구분, 옷장의 정리 기준, 물때 없이 관리하는 방법 등 세세하게 고려하고 있는 여러 가지의 것들은 다른 사람이 쉬이 알아차릴 수 없다. 다른 가족 구성원이 이런 수고로움을 알고 인정의 표현을 해주면 좋겠지만 당연하다고 여겨져 생각보다 그냥 지나치기 쉽다. 차라리 연말 보너스를 두둑이 받았을 때 고생했다는 말을 듣기가 더 쉬울 것이다.
  
회사의 바쁨은 중요한 프로젝트를 움직이는 동안에 이런 티도 안나는 일들이 촘촘하게 엮여있다.  운영 업무를 티도 안나는 집안일로 말할 수 있다면, 서비스 개선은 가구의 재배치나 트렌디한 소품으로 집을 꾸며주는 것, 신규 개발 프로젝트는 인테리어 대공사쯤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 그중에서 최고는 이 집을 엄청난 차익으로 판매했을 때이다. 매출이 높아지면 그 해 성과는 최고가 된다.


성과 점수는 S, A+ A, A-, B+, B, B-,C  이런 식으로 대학교 때 성적표 기준과 흡사하다. 예상대로 B는 80점 이상을 의미한다. 대학에서 B를 받게 되는 경우, 휴- C는 면했다 정도의 느낌으로 뭐 그렇게 잘한 것은 아닌 기분이 든다.


업무 평가에서 B는 주어진 업무를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는 사람, 기본적으로 잘했다의 기준이다. 그러니 학점 B와 동일시하는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 평가 분포도를 보면 B가 전체의 50%가 넘어야 한다. 그러니까 못했다가 아니라 대체적으로 잘했다는 기준인 것이다. B라는 점수가 꼭 유쾌하지만은 않지만  감히 인재라는 단어를 붙여보고자 한다. 우리 대부분은 보통의 사람들, B급 인재로 분류될 확률이 높지 않은가.


신규 개발 프로젝트나 매출 창출은 누가 봐도 보이는 것이라 좋은 성과로 판단하기 쉽다. 그렇지만 하던 일을 무리 없이 소화하고 일정도 잘 맞추어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했다 하여도 특별할 게 없는, 당연한 것들로 여겨질 때 결국 우리는 B급 인재가 된다. A급 이상의 인재가 되려면 매출이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 집을 높은 시세차익으로 잘 팔아야 가능한 것이니 전체의 5%~8% 안에 들어가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다. 결과는 성과로 판단되기에 열심히가 아닌 '아주 잘' 해야 하는 것이다.


곧 있을 평가에서 나는 여러 명에게 B를 줄 확률이 높다. 그리고 개인 성과에서는 B를 벗어나기 위해서 한해를 달렸고 내년에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B급 인재에서 시작하지만 결말은 더 나아지길 올해도 내년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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